"늦은 가을비가 대지를 적신다. 투명해진 시야 안으로 한층 가깝게 들어서는 마을. 산들이 둘
러싸고 있는 오목한 분지에 전통 양식을 본 딴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여유로운 휴
일 아침, 집집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차가운 공기와 달리 따뜻해지는 마음. 옛 추
억이 조용히 밀려든다.
유후인(Yufuin)은 일본 오이타 현 내에 위치한 작은 마을. 누구나 이곳에 도착하면 내뱉는
한마디는 “참, 예쁜 동네네”하는 감탄. 1만명이 조금 넘는 주민들이 꾸며놓은 아기자기한
삶의 모양새들이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기는 고장이다. “주민들이 살기 편한 고장이 관광
객들에게도 편안함을 줄 것”이라는 모토답게 편안하고 아늑한 이미지를 오래 남기는 곳이
다.
작지만 아름다운 주변 경치와 어우러진 옛 정취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혹한다. 미술관이
많아 들러볼 곳도 많다. 아는 사람들만 다녀가는, 그러나 이미 소문날대로 소문난 곳. 주민
수보다도 300배가 넘는 연간 380만명의 관광객들이 유후인을 방문한다.
유후인 시내에서 제일 먼저 찾는 곳은 ‘JR 큐슈’ 기차역이다. 유럽 중세시대의 예배당을
이미지화시킨 이 건물엔 총 2억엔이 투자됐다. 처음 문을 연 때는 91년 12월. 이 역을 설계
한 이소자기 아라따 씨는 유후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 설계사. 바르셀로나 올림픽 체육관
을 설계하기도 했다.
목재로 지어진 역사는 검은 색으로 단장돼 세련된 이미지와 함께 전통적인 멋을 느낄 수 있
도록 꾸며졌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안에 미술전시실도 갖춰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인 공간
으로서의 역할도 해내고 있다는 점. 일반적으로 전시기간은 한달, 전시비용을 따로 받지 않
는다. 신진이든 기성작가든 구분도 하지 않는다. 1년치의 스케줄을 유후인 군청과 JR큐슈에
서 짠다.
유후인은 온천지역으로도 유명하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이곳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주변의 다른 지역보다 좀 춥지만 온천열을 이용한 난방이 발달,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온천열을 이용해 열대 식물까지 재배하는 온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은
‘플로라 하우스(Flora House)’와 ‘허브 월드(Herb World)’.
플로라 하우스는 각종 양난과 꽃을 재배해서 판매한다. 꽃이나 식물을 응용한 각종 소품들
도 생산해 낸다. 취사가 가능한 숙박 시설도 갖추었다. 허브월드는 넓은 대지위에 각종 식물
들을 온천열을 이용해 한겨울에도 재배한다. 여성들만을 위한 허브 온천욕(성인 1인 600엔)
을 할 수도 있다.
미술관이 많은 유후인에서도 이름만큼 멋진 ‘공상의 숲 미술관’은 내외국인들이 즐겨 찾
는 곳이다.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는데 본관에서는 주 전시품인 가면과 함께 도자기, 회화,
섬유를 전시한다. 포토 갤러리라 불리우는 별관은 신진작가들의 발표장으로 이용되기도 한
다.
가면전시실에는 700년전부터 규슈 각지에서 이용된 가면이 전시돼 있다. 소장품은 총 400점,
그중 180점 정도가 돌아가면서 전시된다. 공상의 숲이란 이름은 자연을 사랑하자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전시관 부관장은 말한다. 숲속에 폭 안겨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발산하고 있는
미술관은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는 훌륭한 사색의 공간이다.
하일라이트는 ‘규슈 유후인 민예촌’. 현대사회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일본의 전통 공예
를 보존, 계승하기 위해 지난 80년에 만들어졌다. 흙과 불, 나무, 종이를 테마로 죽공예, 팽
이제작, 도예, 유리 공예, 전통 회지 제작, 온천물을 이용한 염색 제작 과정 등을 생생하게
들러볼 수 있다. 주변에는 온천물이 흐르는 호수와 계곡물이 늦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아련
한 향수를 남기고 각종 기념품과 먹거리를 만들어 판매하는 상점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사먹
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저녁에는 호텔 ‘산수관’에서 손꼽히는 수질을 자랑하는 온천에 목욕 후 호텔 내에서 운
영하는 ‘맥주관’에서 푸짐한 일본식 뷔페와 함께 직접 만든 맥주를 마신다. 부드러운 맛
에서부터 쌉살하지만 고소한 뒷맛을 남기는 흑맥주까지 다양하다. 같이 온 일행들과 밤이
깊은 줄 모르고 두런두런 나누는 삶의 얘기들. 시간이 너무 짧아 아깝기만 하다.
유후인에서는 지는 가을만큼 더욱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 유후인 = 김남경 기자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