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공사 진흥부 특수계획과장으로 한국전 참전용사 재방문 유치업무를 직접 맡고 있던 李光熙씨(관광공사 본부장 역임, 에코마케팅 에이전시 사장)의 회고.
 『참전용사 유치사업은 그 전해인 74년 8월경에 구상되어 다각적인 검토를 거쳐 이뤄졌습
니다. 미국 등 참전 우방국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구미(歐美)관광시장 개척을 목적으로
추진된 이 사업은 국가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유치사업이 활발해
진 것은 직접 한국에 와 보고 느낀 소감과 발전된 모습을 이웃 사람들에게 선전하거나 지방
신문에 기고한 홍보효과도 컸지만 관계 재향군인회 조직을 통해 호의적인 여론이 형성됐지
요. 朴 대통령도 관심이 커 주요대표자와 전상자들을 청와대에 초청, 다과회를 베풀어 위로
격려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관광공사의 위상도 높아졌지요. 국내 핸들링 여행사를 처음엔
73년과 74년의 구미지역 유치 실적 순위에 따라 5개 여행사를 선정, 배정하려고 했으나 특
정업체에 대한 특혜라는 반대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투어 오퍼레이션 센터를 설치 공동운영
케 했습니다. 참전용사들의 국내 체재(5박6일)비는 관광공사가 부담하고 연장 기간의 경비는
본인이 부담키로 했는데 1주일 또는 2주일씩 연장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연장하는 경우 호
텔측의 협조로 할인혜택을 주었 윱求麟&27856
 참전용사유치위원회 사무국장직을 겸하고 있던 국제관광공사 진흥부장 金鍾七씨(관광공사
본부장 역임, Spa plaza Hotel Tianjin 사장)는 1976년 5월31일 필리핀을 방문, 필리핀 계엄
사령관으로 필리핀 한국전참전전우회(Philippine Expeditionary Force To Korea) 회장직을
맡고 있던 라모스 육군소장이 공항영접을 하는 등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분에 넘치는 환영
행사였다.
 라모스 장군은 6.25 한국전쟁 때 필리핀 군 소대장(소위)으로 참전했다. 필리핀 군부대는
1950년 9월부터 1954년 5월까지 연병력 7천명(휴전전 3교대, 휴전후 2교대)이 참전, 전사 1
백12명·실종 10명·그리고 5백여명이 부상했다. 필리핀 부대는 평양까지 진격하고 주로 화
천지구 전투에 참전, 전공을 세웠다.
 다음은 金鍾七씨의 얘기.
  『76년 6월1일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10차 EATA 총회에 참가하는 기회에 참전용사유
치위원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필리핀한국전참전전우회 측과 참전용사 유치에 관한 협의도 가
질 계획으로 EATA 총회 전날, KAL기 편으로 서울을 떠났습니다. 비행기가 마닐라 공항
상공에 이르자 기내 방송으로 「이 비행기에 VIP 한 분이 타고 있는데 공항에 도착해서 이
분이 내릴 때까지 5분간만 기다렸다가 내려달라」며 양해해 달라고 해 누군가 특별한 승객
이 타고 있구나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어요. 비행기가 멈추고 출입문에 트랩이 붙
여지자 장교 두사람이 뛰어 올라와 「김종칠이 누구냐」며 두리번거리더군요. 순간, 뭔가 잘
못됐구나 싶어 몹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라고 말하자 앞에 다가와 거수경례를
붙이고 「제네랄 라모스가 저 아래서 기다리고 있다」며 짐표를 달라고 해서 손가방을 가리
키며 이것밖에 없다고 했더니 출입문을 가리키며 먼저 내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트랩 밑에 모여서 일제히 내게 시선을 주고 있는
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었어요. 어쨌든 이때부터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습니
다. 나와 먼저 인사를 나눈 라모스 장군이 출영객을 일일이 소개해 주는데 참모총장 아바트
(Abat) 준장, 정보부장 디아즈(Diaz) 준장 등 모두가 쟁쟁한 사람들이었어요. 그 뿐만 아니
라 한국대사관에서 이기주 공사와 국방무관 한봉규 대령,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참사관 한 분이 나왔어요. 나로선 깜짝 놀랄 일이지요. 마침 장지량 대사께서는 본국에 가
계셨어요. 어찌나 미안했던지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꼭 그
런 마음이었어요. 이기주 공사도 내 명함을 받아 보고는 몹시 의아해 하는 표정이더군요. 그
도 그럴 것이 관광공사 진흥부장이라면 일개 국영기업체 부장인데 라모스 장군이 공항 영접
을 하고 대사관에서도 공항에 나왔으니 이해가 되겠습니까. 미안하게 생각한 것은 그것뿐만
아닙니다. 환영행사장으로 쓰고 있는 콘세트 건물에 안내되어 들어갔더니 한 편에 의자 세
개가 놓여 있고 라모스 장군이 오른쪽 의자에 앉으면서 나에게도 앉으라고 해 이기주 공사
에게 가운데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시지요」했더니 라모스 장군이 눈치를 채고 「No. You
sit」하면서 나보고 가운데 의자에 앉으라는 겁니다. 그러니 바늘 방석에 앉은 기분이 아니
겠어요. 그 ? 나서 라모스 장군이 일어서 「한국 참전용사유치위원회 사무국장이다」고 소
개하면서 잔뜩 치켜세우더니 나보고 한마디하라고 하지 않겠어요.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이
런 환영행사가 전혀 뜻밖이었으니 어디 인사말이나 준비했겠습니까. 그렇다고 하지 않겠다
고 할 수도 없고 언뜻 「훌륭한 연설은 짧은 연설」이라는 말이 생각나 간단하게 인사말을
했지요. 「우리가 국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우리를 도와 자유를 지켜준 필리핀 국민
에게 감사하며 혈맹관계에 있는 양국간의 우의와 친선을 더욱 다져 갑시다」는 내용이었어
요. 공항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데 옆에 있던 이 공사가 「같이 가면서 얘기나 합시다」고
그래요. 내게 궁금증을 느껴 자기 차로 같이 가자는 것인데 라모스 장군은 그도 안된다는
겁니다. 입구에 대기시켜놓은 군용세단차를 가리키며 그걸 타라고 하더군요. 앞좌석에 운전
병과 장교 한 사람이 타고 공항을 빠져 나오는 데 그때가 오후4시가 조금 지났기 때문에 교
통체증으로 차가 아주 서행을 하고 있었어요. 앞 좌석에 앉은 장교가 비상등을 꺼내 차량
지붕 위에 올려놓고 「앵」하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중앙분리대를 마구 달리더군요. 「내가
뭔데 이렇게 가야하나」하고 생각하니 도저히 안되겠어요. 그래서 시간도 충분해 빨리 갈
필요가 없다고 사정하다시피 해서 내려놓게 했지요. 내가 묵을 호텔은 서울에서 마닐라호텔
로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그리로 갔는데 호텔 지배인 등 간부들이 호텔 현관에 나와 기다렸
다가 체크 인이 됐다면서 곧바로 5층인가로 안내해 줬는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객실 앞에
헌병 한 사람이 서 있지 않겠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경호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공항에서 라모스 장군이 저녁7시에 환영연이 있다며 거기서 만나자고 해 시간
에 맞춰 호텔로비에 내려갔더니 필리핀 한국전 참전전우회 사무국장으로 있는 현역 대령이
기다리고 있다가 「아기날도 계엄사령부 장교 클럽에서 환영연 있다」며 안내했는데 연회
장소엔 태극기와 필리핀 국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고맙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도 괜찮은지 몰라 걱정이 더 많았습니다. 그곳에 가서야 이기주 공사
와 얘기를 나눌 시간을 갖게 됐는데 나를 보더니 궁금증을 한꺼번에 쏟아 놓기라도 하듯 대
뜸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하고 묻기에 「저도 모르겠습니다」그랬지요. 그리고 나서 관
광공사 진흥부 揚 해외진흥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참전용사유치위원회 사무국장직을 겸
하고 있는데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참전국 대사관 무관들과는 업무관계로 자주 만나게 되고
필리핀 대사관의 무관 가비노(Gavino) 중령과도 몇 번 접촉을 가져 잘 알고 있는 사이라서
EATA총회에 참가하는 기회에 필리핀 한국전참전전우회를 방문, 참전용사 유치에 관해 협
의하겠다고 했더니 이 사람이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더
니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됐는지 「아 그래요. 그럴 수 있겠군요」하더군요. 그래서 공사님
께서는 어떻게 공항에 나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본국이나 관광공 玲【 통보를 받은
게 없고 라모스 장군이 직접 전화를 했더군요. 한국에서 참전용사유치위원회 사무국장이 오
게 돼 나도 공항에 나가려고 하는데 당신은 안 나가느냐고 해서 나왔습니다」면서 「라모스
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필리핀 제2인자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막강한 실력자입니
다」하더군요』
 참전용사 유치사업은 당초엔 75년 6월부터 1년간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76년 6월30
일에 개최된 제14차 참전용사유치위원회 회의에서 그 동안의 실적을 분석, 국가안보의식을
고취하고 해외홍보 활동에 성과가 컸다고 평가되어 77년까지 연장키로 했다가 다시 79년으
로 변경 실시하고 80년부터 재향군인회 단독으로 실시하고 있다.
 79년까지 재향군인회와 관광공사가 공동으로 추진한 5년간 참전16개국 및 의료지원 5개국
등 21개국에서 모두 4천8백11명의 참전용사가 한국을 재방문했다.
 전쟁고아들을 전투기로 제주에 후송시킨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를 영화로 제작한 전송가
(戰頌歌)의 주인공 「헤스」 대령, 미지상군 선발대 스미스 특공대장(참전 당시 중령) 스미
스 장군, 인천상륙작전의 선발대 「쉬어파티」해병 소대장 「올니」 중령(참전당시 소위),
미2사단연대장(대령)으로 흥남 철수작전을 총지휘한 「존.H.찰스」소장, 그리고 미육군 일등
병으로 참전했다가 실명(失明)한 「루페」씨도 특별히 초청됐다.
 이들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재방문하고 돌아가 참전용사유치위원회에 보내온 감사서신은
모두 1천4백여건(75∼79년)에 이르고 있다.
 관광공사가 참전용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방문소감은 ①매우 훌륭하고 교육적이며
특히 한국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역경속에서 일어나 보기 드문 기적을
이룩한 한국인의 신념, 용기, 근면성 그리고 지혜를 보여줘 그들로 하여금 한국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②훌륭한 계획으로 한국과 미국을 좀더 가깝게 해주었다.
③매우 감동적인 계획이다. ④가장 빛나고 가치 있는 일이다. ⑤따뜻한 국민성에 경의와 사
랑을 느껴 한국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⑥더 한층 한국을 사랑하고 깊은 이
해관계를 느끼게 했다. ⑦기대이상으로 이룩한 한국의 기적적인 발전상에 놀랐다. 〈특별취
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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