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연실 부채질을 해도 소용없고, 얼음과자를 먹어도 그때뿐이다. 이 혹서를 피해 휴가를 떠나야겠는데…. 가만히 일본을 생각해 본다. 섬나라인데, 여기보다 더 눅눅하고 후텁지근하지 않을까?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 일러준다. 일본이라고 다 같은 일본이 아니라고. 홋카이도는 상쾌한 여름을 보장해준다고.

민트향을 닮은 싱그러운 도시
‘설국(雪國).’ 그렇다 눈의 나라. 일본 열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 홋카이도(北海道)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바로 웅장한 백색의 정경이다.
홋카이도 최대 도시인 삿포로 시내의 오도리공원은 눈축제인 유키마쓰리가 열리면 거대한 눈조각들의 경연장으로 모습을 달리한다. 홋카이도 각지에는 스키 리조트가 산재, 스키 매니아들을 혹독한 겨울의 눈밭으로 유혹한다.
또 있다. 오타루를 배경으로 찍은 <러브레터>의 장면도 온통 하얗다. 그러고 보니 하덕규의 곡을 조성모가 다시 부른 <가시나무새>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도 오타루다.
이른 새벽, 눈덮인 대지에 가녀린 발목을 묻고 시린 공기를 가르며 ‘오겡끼데스까, 와다시와 오겡끼데스’를 반복하던 와타나베 히로코(꼭 와타나베 히로코여야 한다. 현실의 나카야마 미호는 안된다)의 애절한 마음은 새하얀 눈을 닮아 순정하고 또 아름답다. 이영애의 잘린 손가락을 싸매, 붉게 물든 붕대도 눈을 배경삼아 더욱 선명하고 처연한 느낌을 던진다.
그런데 영화는 영화고, 뮤직비디오는 뮤직비디오일뿐. 카메라를 통해 ‘걸러진’ 풍경은 드라마와 배우와 노래가락이 어울려 감동을, 회한을 증폭시킨다는 점을 유념할 일이다. <러브레터>의 유리세공 공장도 <가시나무새>의 오르고르(뮤직박스) 상점도 끌밋한 배우들과 도드라진 조명, 아득한 시선이 있었기에 한껏 눈부신 게다.
여름에 부는 상큼한 바람
여름의 홋카이도 역시 겨울 못지 않게 활기가 넘친다. 싱싱하다. 아직까지 인간의 손이 덜 탄 광대한 원생림과 들판, 불뚝한 화산들이 일본하면 떠오르는 ‘소소함, 치밀함, 꽉짜임’ 뭐 이런 것들을 한 방에 저 멀리로 날린다.
삿포로 시내에서 차로 30분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히쓰지가오카 전망대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다. 홋카이도를 찾은 6월 중순, 서울의 수은주는 이미 30도를 육박하며 염천을 방불케 하는데 이곳의 바람은 왠지 상큼하다. 여기라고 햇살이 쨍쨍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름의 한복판인 8월에 접어들어도 기온이 26도 언저리에 머무는데다 낮은 습도로 인해 때아닌 청량함을 준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30여분만에 만나는 호사스러움이다.
전망대 한켠의 목장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이 보인다. 그 틈에 섞여, 풀밭에 누워 오수나 즐기면 딱 좋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든다. 먼발치로 삿포로 시내의 전경이 죽 펼쳐지는데, 2002년 월드컵을 대비해 세워진 홋카이도돔이 배흘림 모양의 독특한 생김새로 유난히 눈길을 잡아맨다. 버스 정류장 가까운 곳에는 ‘Boy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고 일갈한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화산이 빚어낸 다양한 수질의 온천
인간의 손길이 닿은 지 100여년밖에 안되는 ‘젊은 대지’ 홋카이도의 참매력은 역시 3개의 화산대와 200개가 넘는 온천에 있다. 동쪽의 치시마 화산대, 남쪽의 나스 화산대와 츠우카 화산대 등이 곳곳에 풍부한 수질을 자랑하는 온천을 생성시키고, 이를 이용한 온천 여관 및 호텔들을 빼곡히 운집시킨 셈이다.
이름난 온천이 즐비한 홋카이도에서도 노보리베쓰 온천은 야타미, 벳푸와 함께 특히 명성이 높다. 일일 용출량이 1만톤에 이르고 11종류나 되는 수질을 자랑, 온천백화점이라 불린다. 노보리베쓰 온천가 북쪽에는 폭발화구의 흔적인 지옥계곡이 있어, 유황냄새로 천지를 진동시킨다. 막잡아 빚어진 듯한 그 독특한 지형과 험악한 생김새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몰린다.
우스산 분화, 새로운 관광명소로
지난 3월말 터진 남부 아부타쓰 호수 주변의 우스산 분화는 열도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화산과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에서 운젠 분화 이후 5년만에 찾아온 우스산 분화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고, 관광객 감소를 우려한 홋카이도 관광업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관광관련 업자들과 공무원들은 재빨리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안전성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노력이 가상했는지 분화는 조금씩 잦아들었고 대부분의 관광지역은 별 피해없이 복구돼, 지난달 중순부터 정상적인 관광이 가능한 상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번 우스산 분화가 홋카이도 관광업계에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다. 면밀한 관찰을 통해 더 이상 위험한 분화는 없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오히려 생생한 활화산을 보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몰릴 가능성이 짙다. 실제로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화산국립공원만 해도 화산폭발로 인한 분화구와 흘러 넘친 용암밭, 여전히 계속되는 분화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빛나고 있다.
풍부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또 먹거리
홋카이도는 남부지역만 해도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넘쳐난다. 그리고 그 범위도 자연친화적인 것부터 인공미가 가미된 것까지 넓고도 다양하다.
우스산의 분화와 원래 밭이었던 지역이 화산 폭발과 더불어 405m나 융기된 쇼와신산에서 대자연의 충만한 에너지를 접했다면, 오오누마공원의 호수에서 카누를 타며 살랑거리는 물결과 자연의 고즈넉함을 만끽할 수 있다. 가무잡잡한 피부, 곱슬거리는 눈썹, 동그란 눈의 지역 토착민 아이누족의 민속촌에 들러 신산스럽지만 강인함을 잃지 않았던 그네들의 역사와 독특한 미풍양식을 공부할 수도 있다.
아름다운 인공미를 갖춘 것들도 만만치 않은데 아찔한 경사의 스키점프대와 다양한 체험오락이 가능한 오오쿠라산 점프경기장, 승마와 마차를 탈 수 있는 노잔호스파크, 각종 수중 생물의 신비를 보여주는 머린 파크 닉스 등이 그것이다.
개항도시로 유명한 하코다테를 방문하면 서구와의 교류를 웅변하는 하리스토스 정교회 및 구 하코다테공화당 건물 등을 만날 수 있다. 하코다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야경. 케이블카를 타고 하코다테산에 올라 내려보면 촘촘한 불빛들에 두 눈이 아찔한데, 샌프란시스코 및 홍콩의 그것과 견줄만하다.
도쿄에서 비행기로 불과 90분 거리에 위치한 홋카이도를 두고 일본인들조차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표현한다. 쾌적한 기후와 날 것 그대로의 아름다움, 다양한 명소들이 잔뜩 모여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하나 더. 아이스크림과 맥주, 라면으로 대표되는 ‘홋카이도의 맛’이 관광객들을 강하게 유혹한다.
취재협조 : 일본국제관광진흥회 02-732-7525
홋카이도 = 노중훈 기자 wi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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