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이 3일인데 부족하지 않을까요?” “3일이면 충분합니다.”
그의 말은 충분히 빗나갔다. ‘천가지 표정이 있는 곳’, 홍콩은 72시간 내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줄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란타우 섬에서 구룡반도로 넘어가는 칭마다리를 건너면, 그때부터 우리는 ‘홍콩’이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중독된다.

천가지 표정과 즐거움이 화산(花山)처럼…
홍콩은 옛 송(宋)나라의 소년 황제가 주변 여덟 산과 함께 아홉 마리의 용(龍)을 이뤘다는 구룡반도와 세계 상업·금융의 중심지 홍콩섬, 그리고 235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섬을 포함한 신계지로 이뤄져 있다. 면적으로 보면 란타우, 펭차우, 청차우 등 외곽섬과 신계지를 합쳐 전체 면적의 88%가 할당되고, 관광객들의 주요 코스가 포함된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합쳐 약 127km, 총 면적의 12%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Size does not matter.’ 어떤 영화 카피는 등장하는 괴수의 크기를 강조했지만, 홍콩에서는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고층빌딩이 쭉쭉 솟은 초현대적인 공간에서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싸구려 쪽방 골목에 이르는 시간은 불과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빠른 환경의 변화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을 정도로. 하지만 이내 관광객들은 빠른 시야의 변화에 익숙해진다. 어느덧 그들은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네온사인의 물결 -나단로드
페닌슐라, 샹그리라, 리젠트 호텔 등 고급 호텔들이 즐비한 구룡반도에서는 휘황한 네온사인 물결에 몸을 맡겨도 좋다. 밤이면 구룡공원에서 페닌슐라호텔까지 거의 1마일에 이르는 나단로드(Nathan Road)를 찾아 호텔을 나서본다. 홍콩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의류브랜드 중 하나인 ‘GIORDANO’ 매장을 기억하면 이곳 나단로드, 일명 골든마일에서 내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고 어디쯤 와있는지 알 수 있다. 시계, 선글라스, 의류, 전자제품 등 가게마다 빅 세일을 외치는 문구가 쇼윈도우를 장식한 상점가가 바로 이곳 나단로드이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꼭 쇼핑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비싼 물건을 사도 맘에 꼭 들어 어쩔 줄 모르는 관광객을 만나기도 하는 곳. 침사추이의 밤거리가 점점 무르익는다.

아직도 영국식 표지판이 남아있는 지하철
홍콩의 지하철 MTR(Mass Transfer Railway)을 타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지하철이 운행하는 세계의 도시들마다 나름대로의 멋과 향이 있기 때문. 흔히 단체여행을 오게되면 지하철이나 버스 등 그 나라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기회가 적지만, 자유시간에 짬을 내서 한번씩 경험해보자. 관광버스에서만 보던 거리의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 같이 타고 있다는 경험은 관광객을 좀더 그 나라에 친숙하게 해주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영국이 157년간 통치해온 나라답게 지하철 자동문에는 ‘Mind the gap(지하철과 승차장 사이의 간격을 주의하세요)’이라는 영국식 안전표지판이 그대로다. MTR은 머리가 천장에 달듯말듯한 영국의 낡은 Underground와는 달리 덩치가 크고 잘 빠졌지만 가장 독특한 점은 지하철 한량 한량을 잇는 통로의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뻥뚫린 뱀의 몸통속에 있는 듯한 야릇함을 느꼈다.
조단(Jordan)역에서 침사추이역까지는 한 정거장. 다음 역은 바다를 건너 홍콩섬의 센트럴 역이다. 란콰이퐁, 소호 등 젊은이들의 거리가 밀집한 센트럴의 유혹을 뿌리치고 침사추이에서 내려 ‘연인의 거리’라는 해안 산책길로 향한다.

홍콩섬 야경의 백미 ‘연인의 거리’
‘연인의 거리’는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땅밑으로 잇는 해저터널 입구에서부터 이 둘 사이를 해로로 연결하는 스타페리 부두까지의 긴 거리이다. 어느 지점에 있든 관광객들은 홍콩섬의 근사한 야경을 바라볼 수 있다. 맨 오른쪽의 ‘The Centre’ 건물은 마치 카멜레온의 변색을 보는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라-남색-파랑-초록-노랑-주황-빨강 순의 역(逆) 무지개빛이다. 또 SONY, NEC, SAMSUNG 등 다국적 기업들의 옥외 광고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곳에, 조금이라도 더 튀는 색과 디자인을 쓰려한 노력이 관광객들 눈에는 그저 가상하게 보일 따름이다. 덕분에 바다색깔도 푸르고 빨갛고 현란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속삭임이 한층 낭만적일 수밖에 없는 곳. 천상 ‘연인의 거리’는 밤이면 솔로들이 피해가야 할 독특한 관광지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먹거리 볼거리 많은 몽콕야시장
침사추이에서 관광객들이 빼놓지 말아야 할 또 다른 한 곳은 몽콕지역의 야시장들이다. 물론 밤(夜)에만 여는 곳도 있고 낮부터 밤까지 계속 상점이 나와있는 곳도 있지만 이 곳은 밤에 가야 제격이라니 야시장이라 부르도록 한다. 침사추이에서 MTR을 타고 가다보면 첫 번째 정류장인 조단을 지나 야마테역과 몽콕역을 차례로 만난다. 아쿠아리움스 마켓과 레이디스 마켓은 몽콕역에서, 템플 스트리트와 제이드 마켓은 야마테역에서 가깝다. 흡사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모습의 노점과 상점이 가득하지만 규모는 훨씬 작다. 기껏해야 200m나 될까 하는 한 블록씩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 틈에 몸을 섞어본다. 가짜인 줄 알지만 진짜 같은 가짜의 유혹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관광객들. 그들은 주머니가 점점 얇아져도 마냥 즐거운 모습들이다. “홍콩, 너의 거짓말이 나를 속여도, 나 기꺼이 속아줄게“라고 말하는 듯한 그들의 표정. 이미 그들은 홍콩이 이런 곳이란 걸 알아버렸으니까.
취재협조 : 홍콩관광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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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성철 기자 ruke@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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