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공원이 있다는 것은 긴장이 가득 찬 삶 속에 유머가 있는 경우와 같다. 병든 환자에게 산소 마스크를 씌우는 것과도 같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의 경우가 그렇다. 완벽한 인공공원으로서 맨하탄의 심장부를 네모로 도려내어 그 곳에 녹지를 앉히고 물을 들여놓았다. 도시의 산소공급원으로서 자연경관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던 사람들의 표정은 공원의 숲 속까지 내리 쬐는 햇빛처럼 밝았다.
런던의 공원은 센트럴 파크와 같이 계획된 공원과는 거리가 있다. 왕실이나 귀족 소유의 숲을 시민들을 위해 내어놓은 하이드 파크는 런던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어느 날 오전에 들렸었던 하이드 파크의 잔디는 유난히 푸르게 보였었다. 그 위에 내리앉아 있는 촉촉한 이슬처럼 삶을 마르지 않게 하는 부드러운 여유가 공원 내를 거닐거나 승마를 하거나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파리는 룩셈부르그 공원이 떠오른다. 크진 않지만 도심 어느 곳이던 공원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공원 내의 중심 분수대 가까이 작은 의자들이 무수히 놓여 있었다. 정해진 위치, 그래서 움직일 수 없는 벤치가 아니라 자유로이 이동이 가능한 나무의자들. 그 의자에 앉아 오후 9시가 되어도 어두워지지 않는 하늘 아래서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연인들은 사랑의 시선을 나누고 있었다.
서울에도 남산, 올림픽 공원 그 외에도 아름다운 녹지가 많다. 외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오픈 스페이스가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최근 올림픽 공원을 들러 보고 나서‘공원'이 아닌 공원에서 만나게 되는 우리들의‘표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올림픽 공원에서 만난 얼굴들은 한결같이 휴식의 표정보다는 긴장이 감도는 얼굴들이었다. 산책로를 오가다 만나도 웃음이 없는 굳은 얼굴들뿐이다. 조깅을 해도 전투적으로 하고 나무에 등을 비벼도 필사적으로 비벼댔다. 여가의 공간에 안겨 있으면서 모두 심각한 얼굴들이었다.
한국에서 아주 오랫동안 근무해온 일본인 특파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신의 한국 근무기한을 그는 몇 번이나 연장했다. 더 이상 연장할 수 없는 시점이 오자 아예 그는 한국에 남아 살기로 결정했다.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인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애정은 컸다. 그 큰 애정만큼 그가 보는 한국인에 대한 생각도 투명하고 정확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의 얼굴에 대해 그는 한국 사람의 표정에는 그 동안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묻어 있다는 말을 했다.
외침을 통한 핍박과 고통, 전쟁으로 인한 폐허에서 살아남아 우뚝 서기까지 우리가 인내해왔던 어려움이 그런 한국인의 표정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서 그런 부분까지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 굳은 표정을 풀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택시 측면 광고처럼 우리들의 미소가 관광수입 65억불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소한 여유와 웃음이 우리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희대 관광학부 부교수 taehee@nms.kyunghe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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