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는 다양한 수식어를 지닌다. 세계 4대 휴양지, 지상 최후의 낙원, 신들의 섬, 제물의 섬, 원시와 문명의 공존지 그리고 예술의 섬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진정한 의미를 몇 일의 여행으로 만끽하기란 애초에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같은 매력을 발리는 뿜어내고 있다.

영혼의 갈증 적시는 단비 같은 곳
발리는 섬 중앙부의 낀따마니 화산지대, 그 기슭에 자리한 농경지대와 수공예 마을들 그리고 남부 해안을 타고 번성한 관광지대로 크게 구분 지을 수 있다.
발리를 찾는 여행객이 먼저 보게 되는 것은 바로 남부 해변이다.
‘북쪽 시장’이라는 뜻을 가진 발리의 수도 덴 파사르 지역을 중심으로 남서쪽에는 쿠타와 레기안 비치, 동쪽에는 사누르 비치가 잘 알려져 있으며 동남쪽 해변에는 누사두아 비치가 펼쳐져 있다. 그 중 비교적 동양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누사두아 지역. 이 곳은 가장 나중에 개발된 곳이자 제일 평화롭고 깨끗한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에 쿠타 비치는 이를테면 ‘발리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쇼핑 지대, 저렴한 숙소, 쉬파리처럼 모여드는 각종 호객꾼과 매춘부 그리고 전통 문신을 새긴 채 장난스레 거리를 활보하는 유럽의 젊은이들에 이르기까지 사뭇 광란의 도가니로 이어질 듯한 그 자유로운 분위기에 젖어들다 보면 어느덧 지루한 일상을 뛰어넘는 일탈의 흥분을 느끼게 된다. 바람난 10대와 천방지축 히피족의 해변이라고 할까. 하지만 50~60대 노부부들의 모습도 적잖이 밤거리를 메우고 있으니 그보다는 차라리 모든 여행객들의 해방구라고 하는 편이 마땅할 것이다.
동쪽 사누르 비치는 주로 서양의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각광받는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은빛 해변과 푸른 산호초 그리고 간조 시의 해돋이는 발리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다. 사누르 비치 인근에는 세라간 섬이 있는데 이곳은 바다 거북의 산란지로서 유명하며 동시에 드넓은 모래 사장을 배경으로 스노클링과 카누, 윈드서핑 등 각종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 하나. 사누르 비치에는 발리에서 가장 높은 10층짜리 그랜드 발리 비치 호텔이 위치해 있다. 원래 발리는 힌두교도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섬이라 건축물에 대해 엄격한 고도 제한 규정을 두고 있으며 실제로 발리 비치 호텔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그 높이가 야자수의 키를 넘지 않는다. 인간의 건축물이 신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는 믿음이 그 배경.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1966년 발리 최초의 국제 리조트를 건설하면서 구미인들에게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안배로서 고도 제한 규정을 단 한차례 무시했는데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그랜드 발리 비치 호텔이다. 신심이 강한 발리인들이 항의 소동을 벌일 법도 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정부의 의도대로 발리 비치 호텔은 성공적이었고 오늘날까지 주로 서구 관광객들이 찾는 사누르 비치의 대표적 리조트로 남아 있다.
한편 섬 중앙부의 각종 수공예 마을을 찾으면 발리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다. 발리가 하나의 예술이라면 발리인들은 그야말로 지상 최고의 예술인들이다. 목각 마을 마스에서는 흑단과 티크로 조각된 신화 속의 독수리 가루다를 비롯해 여러 힌두신들을 만날 수 있는데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 올 듯한 그 생동감은 보는 이의 숨을 가쁘게 한다.
마스의 북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부드 지역은 발리 회화의 산실이다.양식미와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발리 회화기법은 이미 우부드 스타일이란 이름으로 세계 미술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일찍이 발리 회화에 취한 서유럽의 화가들이 정착하여 다양한 그림들을 제작하면서 더욱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 주제와 양식은 고전적인 것에서 현대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는 네카 미술관, 르 메이르 미술관 등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화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도 있다.
해안지역에서 차로 약 한 시간을 달리면 화산지대의 기슭에 이르게 된다. 산악지대의 장관도 발리에서는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이지만 그 중간에서 발리 특유의 계단식 논이며 사람들의 제례 행렬 등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운이 좋다면 장례식 행렬을 볼 수 있는데 각종 동물의 형상을 한 발리 고유의 상여들과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행렬은 좀처럼 보기 힘든 또 다른 장관이다.
낀따마니 화산지대는 해발 1,400여m 고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날씨가 좋으면 3천여m에 이르는 아궁산도 볼 수 있다. 특히 아궁산은 발리인들에게 있어 성스러운 산이자 인도네시아의 중심으로 여겨지고 있다. 바뚜르산에 오르면 유럽풍의 화산호 바뚜르 호수를 굽어 볼 수 있다. 특히 이 호수 주변은 발리 원주민인 ‘발리아가’들의 거주 지역으로 유명하며 아직도 풍장, 즉 바람에 시체를 맡기는 장례 풍습으로 또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을 모두 보았다해도 여전히 발길을 멈출 수는 없다. 섬 전체를 뒤덮다시피 하고 있는 2만여개의 전통 힌두 사원들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아 끌기 때문이다. 발리의 힌두 사원과 그곳을 찾는 이들의 끝없는 행렬속에서 비로소 신들의 섬이라는 발리의 또 다른 이름을 진실로 이해하게 된다. 모든 사원의 어머니로 일컬어지는 브사키 사원과 서쪽 해안에 자리잡은 따나롯 해상 사원 그리고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을루왓뚜 절벽 사원이 그 중 특히 유명하다.
영화 엠마뉴엘 부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따나롯 해상 사원은 바다 위에 자리한 신들의 궁전이다. 만조 시에는 사원이 있는 절벽이 바다에 잠겨 마치 사원 전체가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장관을 볼 수 있으며 특히 사원의 첨탑 사이로 가라앉는 낙조는 영원히 잊지 못할 낭만과 추억을 제공해준다.
하긴 어찌 따나롯의 낙조 뿐일까. 발리가 지상최후의 낙원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길거리의 반얀트리에서, 기나긴 제례 행렬에서 그리고 사원에서 만나는 어린 아이들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발리 = 이동진 기자 eastji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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