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기차여행의 천국. 대부분의 지역을 기차로 쾌적하고 빠르게 연결한다. 웅장한 알프스 산맥에서는 철도가 먼저 놓여 사람들을 곳곳으로 안내한다. 기차 종류도 수십가지. 하지만 스위스에서 기차는 단순히 목적지까지 도착하기 위한 교통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가 여행의 과정이다.

칙칙폭폭 순수속으로 떠나는 여정
스위스 취리히 중앙 기차역(Hauftbhan Hof). 스위스 전역은 물론 유럽 각 지역으로 연결되는 철도 라인의 집합지. 이른 아침, 큰 짐은 부치고 가벼운 배낭과 그보다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룰루 랄라” 흥얼거림. 어릴 적 잔뜩 먹을 걸 담은 가방을 메고 가족들과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기 위해 중앙선 기차를 즐겨 탔던 빛바랜 추억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짓게 만든다.
스위스 남동부에 위치한 쌩 모리츠(St. Moritz). 취리히에서 이곳까지 가기 위해선 그라우 뷘덴주의 철도 중심지인 쿠어에서 한번 열차를 갈아타고 굽이굽이 산구비를 3시간 남짓 올라간다.
취리히에서 시작된 늦가을비는 쿠어에서 베르니나(Bernina)특급을 갈아타고 해발 1,700m 고지에 오르니 하얀 눈으로 바뀐다. 올해 첫눈을 알프스 산속에서 맞이하는 셈이다. 세상이 이보다 더 순수할 수 있을까. 창 밖 풍경은 한편의 그림 엽서요, 일찌감치 띄우는 크리스마스 카드다.
영화 러브스토리와 러브레터, 닥터 지바고가 떠오른다. 창이 열리는 곳으로 뛰어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휙휙 스쳐지나가 버리는 풍경들을 담기에는 기차가 너무 빨라 아쉽기만 하다.

겨울 레포츠의 천국, 역동하는 쌩모리츠
베르니나 봉우리(4,049m) 아래 아늑한 골짜기에 위치한 쌩모리츠(1856m)에 도착하니 사위에 어둠이 막 내려앉고 있었다. 호수를 중심으로 한쪽 산기슭에는 마을이 가지런히 들어서 있으며 반대편은 깍아지른 듯한 험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가는 눈들이 어두워지자 굵은 눈송이로 바뀐다. 거리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 쇼윈도우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트리와 선물들로 한껏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어슴푸레한 하늘로 빨간 코의 루돌프 사슴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산타 할아버지가 내려올 것같다. 그림같은 풍경, 어디서 많이 보아온 것 같아 정겹다. 호수 건너편에서 쌩모리츠 마을을 바라보는 풍경은 더욱 일품. 기차역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돌아볼 수 있다.
쌩모리츠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고급 휴양지다. 이곳에서 고개를 하나 넘어 1시간 남짓 기차로 달리면 이탈리아 북부지방에 이른다. 오랜 옛날 한니발이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쳐들어갔던 길이 쌩모리츠에서 이웃해 있던 베르리나 계곡이다.
이곳의 관광 역사는 3,000년전 로마인들에게 휴양지로 각광받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가깝게는 1864년 4명의 영국 귀족들과 이곳의 한 호텔 매니저가 겨울 방문 내기를 걸었던 시절을 들 수 있다. 그 호텔 매니저는 영국인들에게 겨울에 한번 방문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 휴가 비용을 대신 지불하겠다고 했는데 영국인들이 아주 만족해 하며 몇 달을 그곳에서 휴가를 즐겼다고 한다.

참여하는 관광, 겨울이 더욱 매력
그만큼 쌩모리츠의 겨울은 매력적이다. 더욱 가깝게는 1928년과 1948년 두 번의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다는 이력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쌩모리츠는 현재 2003년 세계 알파인 챔피온 대회를 개최하며 2010년 동계 올림픽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해 여름엔 11만명이, 겨울엔 15만명의 관광객이 쌩모리츠를 찾았을 정도로 겨울에 더욱 인기있는 여행지로 꼽힌다. 체류일수를 비교해봐도 겨울엔 평균 6일을 머물지만 여름엔 2일밖에 안된다.
겨울에 더욱 인기있는 이유는 주변 빙하와 웅장한 산세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다양한 겨울 레포츠를 즐길 수 있기 때문. 자연산 눈위에서 신나는 감각을 즐길 수 있는 스키와 스노우보드는 매년 11월말에 리조트가 문을 열어 4월까지 즐길 수 있다. 눈위에서의 마라톤인 크로스컨트리, 자연 얼음으로 형성된 봅슬레이장, 새하얀 눈위에서 빨간색 골프공으로 하는 겨울 골프 등을 즐길 수 있다. 보는 관광이 아닌 참여하는 관광지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눈에 띄는 이벤트도 다채롭다. 눈덮힌 산위에서 열리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 얼음위에서 즐기는 말경주와 그레이하운드 경주 등이 흥을 북돋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전후한 기간과 많은 이벤트들이 즐비한 2월엔 방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고급 휴양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1박에 25달러 정도하는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숙소도 많아 들러볼 만한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연중 320여일은 화창한 기후로 쾌적한 분위기속에 각종 레포츠와 이벤트를 즐기기에 안성마춤이다.
쌩모리츠 글·사진=김남경 기자 nkkim@traveltimes.co.kr

‘차창이 그대로 한폭 스크린’베르니나 특급 파노라마 객차
스위스에서의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교통 수단이 아니다. 기차를 타는 과정 자체가 여행 과정 중의 하나이다. 기차의 객실 안에는 널찍한 응접 테이블도 있고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있고 따뜻한 차와 먹고 마실 것을 파는 식당차나 카페가 있다. 더군다나 창밖으로 보여지는 풍경은 스위스의 면모를 감상하고 알기에 충분하다.
그 중에서도 산간지방을 운항하는 열차들이 갖춘 파노라마는 기차밖 풍경을 감상하기에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파노라마 열차는 창의 세로 길이가 1.5m는 넘어 앉은 자리에서 천장까지 보이도록 큰 창을 단 열차의 객차를 지칭한다. 베르나니 특급의 경우 여름 성수기에는 9개의 객차가 모두 파노라마로 운영될 정도. 겨울엔 1등석은 파노라마 객차로 운항되며 향후 2등석까지도 파노라마 열차를 도입해 나갈 계획이다.
눈이 내리는 동안 비스듬히 의자 등에 기대 하늘을 쳐다보면 눈이 얼굴 위로 덮칠 것 같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대한 영화 스크린 같다.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한편의 영화와 같은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눈덮힌 풍경은 마치 흑백 무성영화처럼 기차가 움직이는 진동마저 느끼기 어렵다.
베르나니 특급은 스위스 남동부 알프스 지역을 운항하는 열차로 클래식, 알레그라, 하이디란트, 윈터 네가지가 있다. 세계에서 아름다운 10대의 기차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기차의 쾌적한 시설도 좋지만 창밖의 풍경도 ‘환상’이다.
웅장한 알프스의 산세가 그려내는 풍경은 기본이고 계곡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다리들이 절경을 만든다. 튜지스에서 쌩모리츠구간 사이에 기차는 42개의 터널과 122개의 다리를 지난다. 산구비를 도니 또 다른 풍경이, 굴하나를 통과하고 나면 다른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각 기착지 마다 호수와 마을들이 그려내는 풍경과 함께 산만 넘어가면 이탈리아와 가까워 색다른 지방색을 느끼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종착역인 티라노는 이탈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도시. 딱딱하고 꼼꼼한 인상을 한 독일풍은 산고개를 넘으면 낙천적인 웃음을 띤 이탈리아풍으로 바뀌어있다. 제일 높은 고개(2,253m)까지 톱니바퀴없이 올라가는 유일한 기차. 이 고개를 넘으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빙하 계곡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풍경이 사로잡는다. 바로 아래 폰트레지나(Pontresina·1774m)란 마을이 있는데 쌩모리츠와는 비슷한 레포츠를즐기고 풍광들을 감상할 수 있지만 저렴한 체재비용으로 인기를 더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독일계인 쌩모리츠와는 달리 이탈리아 풍의 푸근한 인심과 화려한 향신료를 가미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이 지역 풍경의 상징인 나선형으로 기차가 올라가는 브루지오 근교의 원형교가교를 가깝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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