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일본인 요시다씨. 어느날 술자리에서 ""교토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교토는 수학여행지로서 많은 학생들이 찾는 곳""이라고 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토의 아라시야마에 갔더니 까르르 웃어젖히는 일본 학생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도처에서 번지고 있었다.

◆ 아라시야마 대나무숲길

교토 라쿠사이(洛西)지역에 위치한 아라시야마(風山)의 지명은 단풍잎이나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모습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생각해보시라. 살랑거리는 바람에 결고운 플레어 스커트를 펄럭이며 분망히 내리는 화우(花雨) 속에 서있는 눈부신 그녀를. 로맨틱한 감정이 스스로 툭하고 떨어질 게고 메마른 성정일지라도 촉촉해지지 않을 까닭이 없다. 황홀경이 따로 있을까. 어쨌든 아라시야마는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운치를 전하는 셈이다.

특히 아라시야마에서 오이카와강의 오른쪽 강변이 '천하의 경승지'로 불린단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우거진 녹음과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강바람이,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단풍이, 겨울에는 세상 모든 찌꺼기를 삼키는 설경이 번갈아가며 빼어난 풍광을 선사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3월 중순에 방문한 탓에 만개한 봄꽃들의 유려한 자태를 볼 수는 없었다. 일왕의 말마따나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을 뿐.

끝없이 곧고 푸른 기운을 쏟아내다

그렇다고 해서 고스란히 절망할 필요는 없었다. 바로 봄꽃의 향연 대신 울울창창한 대나무숲의 풍채가 눈과 마음을 시원스레 닦아주었기 때문. 목조로 된 토게츠교를 지나 좁은 길로 들어서면 텐류지(天龍寺)가 있고 이 사찰의 근처에 대나무숲이 형성돼 있다. 사실 아라시야마 인근에는 텐류지 이외에도 오코치산장, 조작코지, 니손인, 라쿠시샤 등 오래된 절과 에도시대의 고옥들이 산재해 있다. 또 인근의 사가노로 향하면 기오지, 타키구치데라, 아다시노넨부츠 데라, 아이카쿠지 등의 사찰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아라시야마에서 권하고 싶은 관광은 이러한 절이나 신사를 방문해 둘러보는 것보다는 온전한 산책이다. 이쪽저쪽으로 이어진 샛길과 산책로를, 깨끗한 공기 그리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반주삼아 타박타박 걷다보면 세상 시름이 어느새 저만치 물러서고 정갈한 기운만이 폐부에 가득할 뿐이다.

특히 대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발꿈치 눌러가며 느긋이 걷노라면 대나무의 올곧음과 청청한 기상이 삽시간에 제 것이 된다. 세상 풍파에 초발심이 훼절되고 무릎이 꺾이고 쉽사리 근묵자흑(近墨者黑)되는 인간들에 비해 대나무들은 어찌 저리 꼬장꼬장 곧기만 한지. 그 헙헙한 의기와 헌걸찬 기세에 조금이라도 물들길 바랄지어다.

잊혀지지 않는 걸작을 기리며

사실 이번 간사이지방 방문길에 내심 가장 기대가 컸던 곳은 '우즈마사 에이가무라'라는 영화촬영소였다. 일본영화에 대한 경도가 만만치 않은 터에 일본영화의 천황으로 불리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걸작 '라쇼몬(羅生門)' 등을 '생산한' 곳에 대한 기대감이 없을 수 없었다.

2만2,000여평의 대지에 19개의 촬영세트장을 갖추고 있는 우즈마사 에이가무라는 일본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큼의 규모를 자랑한다. 거대한 규모의 에도(江戶)시대 야외 오픈세트가 지어져 있는 이곳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시대극 촬영현장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하루 4회에 걸쳐 닌자공연도 이뤄진다.

그러나 한때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의 촬영장소로 군림하던 이곳은 이제 TV드라마를 위한 전용장소로 그 성격이 다소 변화했다. 이곳의 한 관계자는 ""연간 드라마 제작편수는 250여편인데 반해 영화는 고작 2편정도를 촬영할 뿐""이라고 말했다. ""관광객들을 위한 참가형, 체험형 코스를 개발중""이라는 이 관계자의 계속된 전언에서 멈추지 않는 세월의 흐름이 읽힌다. 더불어 예전의 화려했던 영화(榮華)에 대한 잔잔한 향수도 언뜻언뜻 비친다.

교토 글·사진 = 노중훈 기자 win@traveltimes.co.kr
취재협조 = 일본항공 02-757-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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