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늦가을 뉴질랜드에서 오전 아홉시에 출발하는 오클랜드 발 호주 시드니행 비행기에 탑승하여 이륙하기만을 기다릴 때였다. 비행기 차창 밖의 안개가 심상치 않았지만 곧 걷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물경 세 시간 가까이를 좌석에 앉아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기내 방송이 나왔다. 승객 모두 개인 짐을 갖고 항공기에서 내려서 지상 요원의 안내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탑승 게이트를 다시 빠져 나와 라운지로 향하면서 상황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았다. 새벽부터 공항 라운지에는 제 시간에 출발 못한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보통 정오쯤 되면 안개가 걷히는데 그날은 오후 두시 넘어서까지 안개가 활주로를 휘감고 있었다. 지상 직원들이 건네준 20불 짜리 쿠폰으로 커피나 간단한 스낵을 들거나 아예 자리를 펴고 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호주나 뉴질랜드 사람들로 보였으며 한국 사람은 물론 아시아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라운지에서, 말 그대로 이국 땅 공항에서 혼자 여행하는 사람의 고독을 한껏 맛보아야 했다.

하지만 새삼 놀라게 만드는 것은 공항의 게이트에 있는 카운터에 대고 큰소리치며 항의 하는 승객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후 늦게 안개가 걷혀 일부 항공편 운항이 재개되었을 때는 지상 직원이 예약 단말기를 보며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이나 높은 가격에 항공권을 구입한 승객을 순서대로 호명하여 대체 항공편으로 탑승권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 내 옆에 앉아 있던 마오리족 부부 한 쌍도 해가 기웃기웃 할 때까지 나처럼 탑승권을 받지 못하고 있기에 넌지시 물어 보았다. 그 부부의 티켓은 출발 몇 달 전 예약해야 하고 발권도 일찍 해야 하며 취소하면 제대로 환불금도 받지 못하는 값이 싼 항공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부부의 말을 들은 즉시 나는 지상 직원에게 도움을 청해 출국 심사대와 비행기 수하물칸에 실었던 짐을 되찾아 다시 공항 밖으로 나와 새벽에 배웅 나왔던 사람들과 다시 상봉했다.

내 항공권은 FOC 공짜 티켓이었기 때문에 그 날 어떤 수를 써도 오클랜드를 떠날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코노미 클래스라도 본인들이 싸게 티켓을 구입했기 때문에 대체 항공편의 수혜가 하염없이 늦어져도 누렁이 소의 순진한 큰 눈망울처럼 눈만 껌뻑껌뻑 거릴 뿐 도대체 자기 목소리 한번 크게 안 내는 그 부부. 내가 공항에 머무른 시간만 해도 아침 7시에 공항에 도착하여 오후 6시 반 까지 열 두시간 가까이였다.

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낮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안개 때문에 이착륙을 못하는 상황에 대해 불평을 할 논리적 근거가 없으며, 더 비싼 가격에 항공권을 산 사람들에게 우선 순위를 두려는 기업의 제도에 이의를 달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중순에 우리나라 전지역에 엄청난 눈이 내려 비행기 이착륙이 지연되었을 때 김포와 지방 공항에서 일부 승객들이 항공사 직원들의 멱살을 잡고 항의 하는 뉴스 내용과 화면을 접했다. 저렇게 항의하면 뭐라도 이루어지는 것이 있는가라고 반문해보고 싶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해외 여행 자율화 이후 운송 기관과 여행업계가 고객 우선주위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해 왔으며, 사용자이며 소비자인 고객의 의식 수준도 전반적인 문화 수준과 더불어 향상되어 왔다고 믿고 싶다.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2월 김포공항 폭설 때 항공기 제빙(deicing) 때문에 출국이 지연된 승객 및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금전적 손해는 물론 등줄기 흘러 내리는 식은 땀을 감수해야 했던 여행사 및 항공사 여러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격려를 보낸다.

호주정부관광청 한국지사 부장 schang@at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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