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몇 지역을 방문하고선 그곳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상하이, 선전 같은 곳이 있는가하면 서북 지방의 황토길까지 말 그대로 중국은 '천 가지 얼굴'이다. 서구와 같은 세련됨이 덜 가미된 우시와 난징은 중국 현대와 옛것을 가공하지 않고 담백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상하이에서 우시(無錫), 난징(南京)으로 뻗은 고속도로로 가다보면 눈에 익은 중국 농촌이 우리네의 그것과 중첩돼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해 보인다. 멀리 산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동양의 피사탑' 운황사탑을 지나면서 2시간 가까이 달려가면 강소성의 동남부에 자리 잡은 우시에 다다르게 된다. 우시는 강소성에서 난징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 그래서 '작은 상하이'로 불릴 정도로 경제규모도 크고 꽤 발달한 도시다.

500만명 인구를 자랑하는 이곳은 예로부터 물자 교류도 활발하고 경공업과 섬유공업이 발달했으며 최근에는 중국에서 3번째로 큰 태호(太湖)와 삼국지를 재현한 삼국성, 매원 등에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관광도시로도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우시(無錫)라는 이름이 쓰이게 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본래 이곳에서 주석이 많이 생산되었다가 한나라 초기에 모두 파낸 결과 주석이 없는 곳, 즉 우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매년 2월 무렵이면 30여종의 총 1만6,000여 그루의 나무에서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펴 눈이 내리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는 매원. 꽃 구경온 인파 역시 구경거리라는 이 곳은 태호를 내려다볼 수 있어 더욱 이름 높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태호 한가운데로 20여분을 나가면 물안개가 은은히 내려앉은 호수 위로 떠 있는 듯 자태 고운 여러 섬들을 볼 수 있다. 큰 거북이의 머리와 모양이 비슷한 용두자공원이나 해질 무렵 석양이 호수를 금빛으로 물들여 사람을 호수 속으로 빨아들이는 듯한 아름다운 자태를 연출하기도 한다.

태호 인근에 위치한, TV 드라마로 제작돼 인기를 끈 '삼국지' 촬영장인 삼국성에 도착하자 어린 시절 읽었던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을 실제로 만나보는 양 일행들 사이엔 흥분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삼국성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등을 비롯한 위, 촉, 오의 대표적인 영웅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삼국성에는 삼국지 촬영 당시의 여러 성과 배 등을 재현해 놓고 있으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무술 공연이 벌어지고 있어 관람객들로 하여금 '역시 삼국지의 고장답다'는 감탄사를 연발하게끔 한다.

난징대학살. 중국의 7대 고도(古都)이자 역사·문화 도시로 이름이 높건만 난징은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으로 우리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된 것이 사실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숙소 창문에서 양쯔강이 유유히 흐르는 시내를 바라보면서 우리 민족과 같은 아픔을 지닌 도시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숙연해졌다. 양쯔강가에 자리 잡은 난징은 강소성의 성도이자 중국 7대 고도 중의 하나로 동오, 동진을 거쳐 남북조시대와 송·명대 초기 도읍지로 중국 역사의 중심이었으니 그 역사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근대사 속에서는 열강(列强)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치욕적인 사건을 여러 번 경험한 비운의 도시이기도 하다. 1842년 1차 아편전쟁에 패한 청나라가 외국 열강에 중국 본토를 개방한 곳이며, 1937년에는 당시 이곳을 점령하고 있는 일본이 30만명을 학살한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곳으로 중국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래서 난징 관광의 첫번째 코스는 대학살 기념관으로 정하게 마련. 기념관을 들어서면 3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탑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 탑은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한 30만명을 의미한다.

기념관에는 입구 정면의 탑을 비롯하여, 일본 제국주의와 힘을 상징하는 잘라진 배를 만들어 놓았으며, 기념관의 중앙부에는 많은 자갈이 있는데 이는 당시에 학살당한 사람의 숫자와 당시 황량한 난징을 의미한다고. 대학살기념관을 관람하면서 무거웠던 마음을 풀기 위해 난징역과 시 북동쪽의 성벽 사이에 펼쳐진 호수공원인 현무호로 향한다.

난징은 여름에는 섭씨 40도를 넘는 것이 예사로 우한(武漢), 충칭(重慶)과 함께 '3대 화로(火爐)'로 불린다. 현무호공원에 가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난징 시내가 두루 보이는 높이 30미터의 고루 광장이 있어 난징의 뜨거운 열기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다. 또 수석조각상과 어우러진 연꽃이 장관을 이뤄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산책을 겸한 공원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현무호에서 볼 수 있었던 난징의 큰 특징은 현대적인 것과 옛것의 조화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등하다는 점이다. 고층빌딩으로 대표되는 중국 신경제의 발전상과 손문, 주원장의 능이 있는 자금산은 이 두 면모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던 곳이다.

중국에 민주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중국인의 국부로서 숭배를 받고 있는 손문선생의 묘인 중산릉. 중산릉은 난징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1926년부터 3년에 걸쳐 장개석이 만든 곳으로 자금산 남쪽 해발 158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종 모양으로 설계된 이곳에는 392개의 계단과 5미터 높이의 돌입상이 손문의 무덤을 지키고 있다. 특히 392개의 계단은 손문 서거 당시 중국 인구 3억9,200만명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계단을 오르면 녹색 유리 기와와 하얀 벽의 제당에 도착한다. 당내에는 손문의 좌상이, 안의 묘실에는 손문의 와상이 안치되어 있고 그 아래 관이 있다고 한다. 또한 건물 뒤편에는 125미터의 비석이 있는데, 위에는 손문 선생의 '삼민주의' 전문이 씌여 있다.

이 밖에도 난징박물관과 영곡사, 명의 초대황제인 주원장의 묘 명효릉도 난징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중국이 자랑하는 화려한 중국예술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중국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난징박물관은 명·청조의 자기, 옥, 금불 등 진기한 유물이 전시돼 현대에 와서도 재현키 어려운 기묘한 세공기술에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300년 된 진품 오리알, 금풍뎅이를 비롯해 서기 229년부터 589년까지의 난징의 모습을 담은 지도 등도 눈길을 끈다.

양무제 때 축조된 후 명조에 재건축된 영곡사는 삼장법사의 사리를 모셔 놓은 절로 국민당 신해혁명의 기념관으로 꾸며져 민족의식 고취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명효릉은 현재까지 완전하게 발굴되지 않고 있고 능의 흔적만 남아 있다. 지금까지 발굴돼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작 12마리의 동물을 상징하는 12지신상과 4명의 승려상 정도. 또 문무관의 석상과 능으로 향하는 길인 신도가 있고 그 끝에는 주원장의 비석인 사방성이 있을 뿐이다. 명효릉의 발굴이 이처럼 어려운 것은 주원장이 자신이 죽은 후에 후한이 두려워 자신이 묻혀지는 곳을 비밀로 했다는 말 때문이라고 한다.

취재협조=아시아나항공 1588-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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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10일부터 중국 난징(南京)에 취항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152석 규모의 B737-400이 투입되는 난징은 강소성의 성도로 양쯔강 하류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다. 직항편 취항 전에는 상하이(上海)를 거쳐 난징으로 들어가야 했던 불편이 해소돼 중국여행객 유치와 편의도모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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