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징(南京)에서 황산까지는 7시간이 소요되는 참으로 먼 거리다. 넓은 평야 한가운데 놓인 길을 따라가다 무료해지면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을 반복했다. 출출한 배를 달래며 전형적인 중국 시골에서 우리네 시골 인심만큼 넉넉한 음식 인심도 느끼면서 느긋한 시골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중국 최고의 산, 황산

명대의 유명한 여행가인 서하객은 '오악(五岳)인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을 보면 웬만한 산들은 눈에 차지 않고, 황산을 보고 나면 그 오악까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혹자는 우리 나라의 금강산과 중국의 황산은 아름다움에 있어서 서로 필적할만 하다고도 했다. 바위가 어우러진 모양은 황산이 더 낫고 계곡은 금강산이 더 좋다고 한다. 아름다움 면에서는 두 산이 쌍벽을 이뤘다는 뜻이어서 일견 뿌듯했지만 금강산 자랑을 할 수 없어 내심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안휘성 남부에 위치한 황산은 중국 10대 명승지 중 하나다. 유네스코가 이것을 199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산에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 않다(無石不松, 無松不奇)'는 말마따나 '황산 사절'이라 일컬어지는 기송(奇松), 기암(奇岩), 운해(雲海), 온천(溫泉)이 황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다. 황산의 소나무는 일반적으로 해발 800m 이상에서 자라는데 가장 유명한 황산의 소나무는 영객송(迎客松), 송객송(送客松), 포단송(浦團松), 봉황송(鳳凰松) 등으로 황산의 십대 명송(名松)에 속하기도 한다. 황산의 소나무는 자태가 강인하고 꿋꿋해 생존을 위해 자연과 투쟁하며 강인하게 암석 위에서 비바람을 견디며 자라고 있다.

황산의 정상은 연화봉으로 높이는 1,864m이다. 약 5만개의 계단이 있는데 현재 관광객은 약 3만개의 계단을 이용하는 코스를 주로 하고 있다. 또 웅장한 남성미를 자랑하는 앞산 코스와 아기자기한 바위로 구성, 여성미를 표현하는 뒷산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앞산 코스는 연화봉으로 이르는 길고 험한 코스로 주로 1박을 하며, 뒷산 코스는 비래석, 배운정 등이 있는데 관광객의 경우 당일 코스인 뒷산 코스를 주로 이용한다. 운곡사에서는 백아령까지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2,804m에 달한다.

한번에 40여명을 태우고 8분여만에 오르게 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바로 앞에 보이는 계단을 통해 40여분을 가면 광명정에 도착한다. 봉우리 사이에 지어진 호텔의 풍경과 구름 위로 솟은 산봉우리 및 바위, 그리고 푸르름을 빛내는 소나무들이 절묘한 조화를 빚어낸다. 최근에 개발된 등산코스인 마환경구(魔幻景區)로 들어서면 버선을 거꾸로 세운 듯한 버선바위, 봉우리 끝에 개의 형상을 띤 진돗개바위, 남녀가 서서 키스를 하는 것 같은 키스바위 등을 볼 수 있다. 마환경구로 가는 길의 절벽난간에는 체인을 연결해 등산객들을 보호하는 곳이 많다. 각각의 체인에는 자물쇠들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연인들이 그들의 사랑이 자물쇠처럼 단단하게 연결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한 것이라 한다.

중국 경제를 움직이는 상하이

중국 최대의 공업도시이자 항구도시이며 베이징(北京), 톈진(天津)과 함께 3대 직할시 중의 하나인 상하이(上海)는 경제, 무역, 기술, 문화의 중심도시다. 중국 정치의 중심은 베이징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상하이가 으뜸 도시로 경제개방 이후 자본주의 방식을 도입했으며 중국 전체 세금의 16% 정도를 담당할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상하이는 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었으며, 황포강을 중심으로 신·구도시로 구분된다. 푸둥지구는 새로 건설된 도시로 십여차선은 될 정도의 쭉쭉 뻗은 도로와 수십층짜리 빌딩이 줄지어 서 있다.

상하이의 구경거리 중 하나는 고층건물이 즐비해 있는 중심시가지다. 상하이의 현대식 빌딩은 주로 외국자본 또는 화교자본의 손으로 건축됐다. 중국정부가 이들에게 최고의 건축기술과 최고의 디자인을 요구한 덕분에 상하이의 건축물은 아름다움과 독특한 개성이 살아있는 듯 하다.
불과 10년 새 이처럼 변모하는 중국을 보면서 두려워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한국인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 각국은 중국의 발전과 변화를 주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또 세계 최강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지목하기도 한다.

어쨌든 상하이는 다시 한 번 세계의 중심(中華)으로 뻗어가고자 하는 중국인의 포효를 들을 수 있는 곳임에 분명하다. 상하이에는 우리와 관련된 유적들도 있다. 일제시대의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와 윤봉길 의사가 일본의 전승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한 홍구공원 등이 그것이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는 작은 골목 안 보잘 것 없는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한 나라의 정부청사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에서도 오직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버틴 정신의 기백이 전해지는 것은 한국인이라는 뜨거운 피 때문일 것이다.

상하이는 600년이라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저명한 역사유적은 많지 않다. 그 가운데에서 유명한 역사유적을 꼽으라면 명대(明代)의 예원을 들 수 있다. 예원은 반윤단이 지은 정원으로, 정원 안의 작은 동산인 대가산이 유명하다. 예원의 가장 큰 특징은 담장에 커다란 용머리와 기와를 용비늘과 같이 만들고 담장 자체는 용의 몸통이 되어 머리와 연결되도록 꾸며놓은 점. 이를 보고 있으면 정원 전체가 용이 감아 돌고 모습으로 보인다.

알려지다시피 용은 황제를 지칭한다. 때문에 화를 입을 뻔 하다가 용과 발톱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 이를 모면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예원과 같은 여러 중국의 정원을 보면 규모와 화려함에 일견 감탄하는 한편 자연스럽게 가꾼 우리의 정원과는 달리, 조그만 동산이나 연못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편안한 정원보다는 화려함과 쾌락을 즐기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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