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한국적인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곳. 그래서 영국 여왕도 찾았던 곳. 경북 안동시 풍천면의 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인 하회마을이다. 지난 주말 이곳을 찾은 나는 마을 곳곳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수막에는 '생존권 보장하라''우리 옛 터전을 보전하라''우리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씌어 있었다. 안동시가 10월 세계유교문화축제 등 행사를 앞두고 무허가 기념품 가게와 식당 등 상업시설에 대한 일제 철거방침을 내리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하회탈, 별신굿놀이, 양반, 선비, 전통 등등 하회마을을 얘기할 때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회마을은 빼어난 풍광과 전통이 살아 있는 민속마을로 우리 것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충분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 하회에는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하회를 만날 수 없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듯이. 식당과 기념품점이 난립해 있고 어지러운 간판과 커피자판기가 도드라져 보인다. 한 집 건너 자리잡은 민박은 서로 손님 유치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회사람들이 돈맛을 알게 되었다고, 지나치게 상업화되었다고 비난한다. 속내를 모르는 방문객들은 불친절과 천박한 상업화에 적지 않은 실망을 안고 떠난다.

지난 84년 민속마을로 지정된 이후 하회사람들은 생업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불편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농사만 지어서는 살수 없는 것이 우리 농촌의 사정이고 보면 하회마을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자녀교육을 위해, 생활을 위해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판을 펼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민들은 보존도 좋지만 먹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항변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관리를 맡은 지자체도 지금까지 주민들의 개발요구를 일방적으로 억누르기만 했지 문화재 보전과 주민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대안을 찾지 못했다. 주민들의 삶의 질은 최소한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강제 및 금지조항이 대부분인 법·제도로 인해 주민들간에 그리고 주민들과 지자체간에 불신과 갈등이 팽배해 있는 상태이다. 날이 갈수록 양반마을이라는 자긍심과 인정은 사라지고 피해의식만 커지고 있다.

현상과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파악하기 쉬워도 본질을 꿰뚫기는 어려운 법이다. 언제나 현상만 문제삼지 본질의 개선은 외면하게 되고 10년이 지나도 늘 같은 일이 반복된다. 눈에 거슬리는 건물과 간판을 철거한다고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강제 철거된 그 자리에는 곧 노점이 들어서고 다시 눌러 앉아 터를 잡을 것이다. 하회마을이 더 이상 망가지기 전에 대책없는 철거와 개발의 고리를 끊고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시도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관광개발의 목표아래 하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가치를 발굴하여 치밀하게 연출해야 한다. 하회마을 브랜드의 특산물을 판매하고, 주민들의 손으로 관광상품과 이벤트를 만들어 경제적인 이익과 새로운 문화를 확대 재생산해 나가야 한다.

하회를 온전히 지켜내는 것은 하회사람들의 몫이다. 주민 스스로에게 마을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여 궁극적으로는 마을보전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튼실한 삶의 기반을 만든 다음 그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살려 내야 한다. 그래서 하회마을다움을 지켜낸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건물과 경관을 보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연구원 serieco@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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