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통이다. 베트남의 거리는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분주하다. 베트남 거리의 주인공은 단연 오토바이. 자동차는 이미 주인이 아니다. 하지만 베트남 중부 도시 후에를 가로지르는 향수의 강(Perfume River)에서는 세속의 혼잡을 잊을 수 있다.

향수의 강을 지나 티엔무사로

후에는 프랑스의 침략과 식민통치라는 오욕의 역사를 정면에서 경험한 구엔 왕조의 오랜 수도였다. 지금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한 후에에 도착하면 오랜 시간이 쌓아놓은 위엄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시내에는 1901년 프랑스인이 세운 모린호텔(Morin Hotel)이 100년 세월을 뛰어넘어 관광객을 맞고 있으며 과거의 영화를 간직한 성과 황제의 무덤 등 관광지도 다양하다.

후에의 관광은 향수의 강(Perfume River)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옛날 강과 주위의 아름다움에 반한 구엔왕조의 공주가 강가에 나와 세수를 하면서 공주의 이름이 붙었다는 향수의 강은 서울의 한강을 닮았다. 야자수가 늘어선 강둑을 따라 금새 물에 잠길 듯이 찰랑찰랑하게 줄 이은 가옥들과 향수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오가는 오토바이 등이 이국적이지만 기본적인 정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유람선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다보면 한편에서는 낚시를 한편에서는 빨래를 하는 모습이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혀 낯설지 않다.

향수의 강을 거슬러 가다보면 팔각형의 칠층석탑이 반기는 티엔무사에 도착한다. 선녀의 절을 뜻하는 티엔무사는 디엠 정권에 항거해 분신자살한 턱광덕 스님이 수도하던 절로 베트남 불교계의 많은 인사들을 배출한 400년 역사의 고찰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경건함은 많이 사라졌지만 20명의 스님과 12명의 동자승이 밥 짓고 수도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1962년부터 이곳에서 생활했다는 주지스님은 베트남 스님들도 채식을 한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기도 한다. 중국 영화에서나 보았던 머리를 모두 깍지 않고 일부분을 남겨 놓은 동자승의 천진스런 모습도 사찰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황제의 숨결을 따라

후에의 매력을 더하는 또 하나의 명소는 구엔 왕조의 왕궁이다. 연못에 둘러 쌓인 왕궁의 기본 모양은 중국의 성을 닮았지만 속살은 조금 차이가 있다. 특히, 왕궁이라고는 하지만 예상 밖으로 많은 곳이 개방돼 있어 멀찍이서 바라보는 데 만족하는 고궁 산책과는 느낌이 틀리다. 왕궁을 정면으로 보고 들어가면 가지런히 돌을 쌓아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2층으로 건물을 세운 왕궁문을 지나게 된다. 왕궁의 경계 등에 이용되었을 2층 전망대는 관광객에게도 개방돼 있으므로 반드시 올라가 보자. 황제의 즉위식 등이 열렸던 태화전을 비롯해 왕궁의 모습을 내려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황제만이 전용으로 출입한 지엄한 왕궁문이지만 지금은 사진을 찍고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등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왕궁문을 지나 구엔 왕조 시절 신하들이 줄지어 왕을 맞았을 배전을 지나면 태화전이다. 왕궁의 정면 중앙에 위치한 붉은 지붕만으로도 담박에 황제의 공간임을 알 수 있는 태화전의 외부는 용이 휘감은 기둥이 버티고 있고 내부 중앙에는 황제가 앉아 있었을 금빛 번쩍이는 옥좌가 놓여 있다.

영웅은 간데없고 덩그라니 홀로 남아 관광객에게 포위된 황제의 옥좌가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세월의 무게를 절감할 수도 있다. 사진은 찍지 못하지만 신발을 벗지 않고도 태화전 안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황제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고 뒤편으로는 지금은 폐허가 돼 잡초만이 무성한 왕궁의 옛 정원과 건물의 잔해를 만날 수 있다.

후에의 주요 매력이 시간의 이끼가 묻은 베트남의 체취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후에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어느 곳을 가도 사람살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역시 시장. 후에의 동바 시장은 현지인들에게는 삶의 현장이요, 관광객에게는 21세기의 베트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활기 가득한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시장 곳곳에서는 사탕수수를 짜서 만든 음료수(설탕물과 비슷하다)나 쌀국수를 파는 노점을 비롯해 각종 농산물과 공산품, 전자제품 등이 판매된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공산품은 대부분 수입품이며 흥정이 가능하다. 시장에서는 열대 과일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고 삿갓 모양의 베트남 전통 모자인 롱이나 아오자이를 맞추는 외국인도 종종 있다.

후에 글·사진=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취재협조=베트남항공 02-757-8920

⊙ 여행노트
① 베트남 전기는 220볼트지만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코드 모양이 국내와 다르다. 국내 가전제품을 이용하려면 어댑터는 발이 세 개인 것을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② 아직 통신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하노이와 호치민의 일부 대형 호텔을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구입한 전화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 물론, 호텔이나 우체국에서 국제 전화를 할 수는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③ 베트남의 경우 공항 도착 후 환전하는 경우가 많은 데 동남아국가들과 달리 호텔이나 공항, 상점마다 환율에 별 차이가 없고 환전 규모에 따라 적용되는 환율도 큰 차이가 없다. 잔돈이 아니면 달러로도 계산이 가능하다. 8월말 기준으로 1달러에 1만4,950동 정도를 예상하면 된다.

● 가는 길 : 다낭을 중심으로 하는 베트남 중부 도시에 가기 위해서는 하노이나 호치민에 도착한 후 베트남 항공의 국내선을 이용해 다낭으로 가야한다. 기차나 차량을 이용할 경우는 이동에만 2~3일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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