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의 영어발음으로 한국의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가 될 수 없듯이 프랑스 샹파뉴 이외 지역의 스파클링 와인을 삼페인이라고 부르면 곤란하다.

샴페인 기행의 시작 랭스

샴페인의 고장 샹파뉴 아르덴느 지방으로 가는 시발점은 파리의 동역이다. 동역을 출발해 2시간여를 지났을까 예술과 역사의 도시로 지칭되는 랭스(Remis)에 도착했다. 샹파뉴 지방의 주 도시인 랭스는 샴페인의 몇몇 고급상표를 소유하고 있는 고장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샴페인 보다는 노틀담 대성당으로 더욱 유명해진 곳으로 11세기 이후에 프랑스의 왕들은 이 훌륭한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랭스로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폭탄투하로 랭스에 있는 많은 건축물들이 붕괴되었으나 전쟁 종료후 새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그래도 기념할 만한 역사적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샴페인 관광을 온 이들에게 문화적인 체험까지 아울러 경험케 한다.

샴페인의 모태 포도밭

잠시동안의 랭스체험을 마치고 시골 도로 위를 달려 샴페인의 발견자라고 불리우는 돔 피에르 페리뇽(Dom Pierre Perignon)이 살던 오빌리에(Hautvilliers)를 찾아갔다. 오빌리에 수도원으로 가는 길 내내 널리 퍼져 있는 포도밭, 산의 경사 지역인 구릉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포도밭 사이사이로 아담한 집들이 둘러 쌓여 농가의 아름다운 정취를 느끼게 한다.

프랑스의 작은 소도시가 다 그렇듯이 수확이 다 끝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포도밭의 대평원은 초겨울로 들어서는 계절적 영향 때문인지 조금 삭막하긴 했지만 낮은 구릉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로움과 장관을 느끼게 한다. 그곳의 아름다움이란 어느 농가 마을들과는 또다른 샴페인의 모태가 주는 세련된 아름다움 그것이다.

산등성이 언덕에 자리잡은 오빌리에 사원이 있는 마을은 그냥 아무데나 찍어도 그림엽서 같은 곳이었다. 포도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로 높게 형성된 마을, 포도 수확철이 끝나 행인을 발견하기 힘들 정도의 고즈넉한 마을의 분위기, 간혹 날아 다니는 새와 멀리 보이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자동차들을 보고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느낄뿐이다.

수도원에 다다랐을 무렵 돔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에 들어서면서 몇 백년간 쌓인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축축하게 전해져 오는 느낌이 들었다. 안내원으로부터 돔 피에르 페리뇽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사람은 가더라도 그의 명성이 샴페인을 통해 길이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속을 스쳐갔다.

28km나 되는 지하저장창고 백미

모엣 샹동의 본사가 있는 에페르네로 향했다. 사실 일반인들은 샹파뉴 지방을 방문해서도 유명한 샴페인 회사들을 방문해 보지 못하고 돌아가기 쉽지만 프랑스관광성의 도움으로 모엣 샹동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기회를 가졌다. 모엣 샹동 관계자 환대가 마냥 놀라울 뿐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한 부분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고풍스런 분위기에 우아한 테이블 셋팅과 최고급 식기류, 훌륭한 음식, 세련된 매너를 가진 나이가 지긋한 정장차림의 웨이터들의 엄숙한 서비스로 모엣 샹동에서의 식사는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다.

식사를 마치고 모엣 샹동의 지하저장창고를 찾았다. 샴페인 지방의 지하창고는 통로의 길이가 수십 킬로미터 되는 경우도 있는데 모엣 샹동의 지하창고는 28km되는 어두운 미로속에 차곡차곡 보관된 와인이 수만병에 달한다. 샴페인은 최소 3년 이상 숙성시켜야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장량이 많아 지하통로가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상퍄뉴 지방은 매년 생산량이 불규칙하지만 연간 수억병의 샴페인을 생산한다. 기계수확이 금지돼 있는 샴페인의 포도재배업자들은 포도를 생산해 유명 샴페인 회사에 판매하고 각 회사들은 포도를 양조·숙성을 시켜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매년 불규칙한 수확에 따라 포도값을 정하고 품질에 따라 등급도 정해진다.

한편 대규모의 생산방식을 거부하고 포도재배농가에서 자신이 수확한 포도로 별도의 상표를 갖고 샴페인을 생산하기도 한다. 오히려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진 샴페인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주조회사에서 만들어낸 샴페인은 여러 농가의 포도가 섞여 만들어지는 이유때문이라고 한다.

몇 번씩 마셔봐도 물리지 않은 샴페인의 특징은 역시 거품에 있다. 효모, 오래된 와인, 설탕을 와인과 섞어 병에 넣으면 효모가 설탕을 알콜로 변화 시키면서 탄산가스가 발생한다. 포도 주스의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변하지 않고 좀 남아 있다가 술에 있는 효모가 2차로 발효를 시작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갈곳이 없어진 이산화탄소가 포도주 속에 가라앉기 때문이다. 이러한 2차 발효를 병 또는 탱크에서 시키게 되는데 그 방법에 따라 맛과 가격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상퍄뉴 글·사진=김헌주 기자 hippo@traveltimes.co.kr
취재협조=프랑스 관광성 02-776-9142


모엣 샹동 250년 전통의 샴페인 주조사

모엣 샹동사는 250년 이상 프랑스의 최고 샴페인을 생산해온 생산자로서 높은 명성을 이어온 샴페인 주조사로 포도를 자연에서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칭송을 얻고 있다.

1743년 메종 모엣(Masion Moёt)사를 연원으로 시작한 모엣 샹동사는 창시자의 손자인 장-레미 모엣에 의해 상업적 확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그의 아들 빅또르 모엣과 사위였던 삐에르 가브리엘 샹동에게 물려 주면서 모엣 샹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세계에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모엣샹동사는 오랜 전통과 최상의 품질을 창조하려는 완벽에 가까운 영감을 통해 혼합기술의 균형과 조화를 이뤄 유연한 실크 같은 샴페인을 만들어냈다고 칭송받는다.

나폴레옹은 모엣가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799년 모엣가는 나폴레옹에게 샴페인을 보내기 시작했고 나폴레옹은 이 지역을 지나갈 때마다 장 레미 모엣을 방문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이들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 ‘모엣 샹동 브루트 임페리얼’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특히 나폴레옹이 전쟁이 나갈 때마다 모엣 샹동사에서 샴페인을 가져갔고 그 때마다 전쟁에서 연전연승했으나 워터루 전쟁 때는 미처 샴페인을 준비하지 못해 전쟁에서 패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오늘날에도 모엣 샹동은 유럽의 왕실 샴페인 공식 공급업체로 남아 있으며 대관식, 결혼식 그리고 국가 축제일 등 역사적인 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모엣 샹동 샴페인의 성공은 포도 재배에서부터 포도주의 숙성까지 매 생산단계마다 포도주 생산자들의 엄격한 통제에서 나온 결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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