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베이(湖北省)의 성도인 우한(武漢)은 중국 최장이자 세계에서 3번째로 긴 장강(長江, 양자강)과 한강이 휘몰아치는 곳에 위치한 유서 깊은 도시다. 중국 중원문화의 발원지이기도 한 우한은 북방에서 ‘용’과 ‘황금색’을 숭배하는 것과는 달리 ‘봉황’과 ‘붉은색’을 숭상하는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2001년 12월12일 대한항공 KE6881기는 역사의 도시 우한의 국제공항에 처음으로 착륙했다. 그리고 매주 2회(수, 일)에 걸쳐 역사의 강, 장강의 물줄기가 굽이쳐 흐르는 우한으로 취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취항 준비와 함께 우한과 인근 지역의 상품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후베이의 성도인 우한은 황학루, 동호와 모택동 별장, 후베이 역사박물관, 귀원사 등의 관광지가 있을 뿐 아니라 인근의 구이린, 항저우, 청두, 상하이 등 유명 관광지를 항공편으로 1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특히 후베이 서부에 위치한 이창(宜昌)은 장강삼협 크루즈가 시작되는 곳으로 올해 11월이면 영영 사라지고 마는 장강삼협과 신농계 골짜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우한을 비롯한 장강삼협의 인근에는 삼국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책으로, 만화로, 영화로, 심지어는 수업시간에까지 수 없이 들어왔던 삼국지가 드라마가 아닌 논픽션으로 재현되는 현장이다. 어떻게 이토록 넓은 땅을 통치하고 군사를 움직였을까? 저 단단하고 높은 성벽을 누구의 힘으로 쌓고 누구의 힘으로 또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형주의 고성과 백제성, 삼국지 박물관 등은 그런 의문의 답이 된다.

황학루

1,7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황학루(黃鶴樓)는 중국 40대 관광성지에 들 정도로 손꼽히는 명승지다. 우한 시내에 위치한 이 망루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손권이 축성한 이래 지금까지 왕조의 대를 이어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비록 원래의 목조 건물이 아니라 85년도에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된 시멘트 건물로 재건됐지만 그 아름다운 위용만큼은 변치 않았다. 입구에서는 잘 알 수 없지만 5층 높이의 누각 위에서 내려다보면 넓은 사각형의 대지와 우한 3진으로 불리는 한커우(漢口), 우창(武昌), 한양(漢陽) 세 지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황학루는 중국의 3대 명루각(강서성의 등왕각, 후난(湖南)성의 악양루, 후베이성의 황학루)안에 들 정도로 빼어난 위풍으로 인해 당나라 때부터 많은 문인들이 이 곳에 시를 남겼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인 최호가 남긴 명시 ‘황학루’도 힘이 넘치는 그림과 함께 벽에 새겨져 있다. 그 맞은편은 중국의 시선(詩仙) 이태백이 최호의 시를 보고 그 이상 훌륭한 시를 지을 수 없다며 붓을 내던진 현장이라고 전해진다. 나오는 길에 돌아보니 어느새 찬란한 금빛에 휩싸인 황학루는 그 자체로 한 마리 학의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후베이성 박물관

후베이 박물관은 당연히 후베이의 성도인 우한에 위치해 있다. 1978년 우한시에서 175km 떨어진 곳에서 유물들 발굴되었는데 2,400여년 전의 것이었다. 이 때 발견된 1만여점의 유물들은 고대 청동기, 칠기, 병장기, 장식품 등 특색 있고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무덤안에서 발견된 전국시기(기원전 5C) 편종과 관, 청동 그릇 등은 그 규모와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이 곳에서는 원형을 고스란히 본 따 만든 편종으로 직접 연주회를 갖는다. 크고 작은 64개의 육중한 편종은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편종과 각종 타악기와 현악기로 이루어진 궁중음악단의 연주는 붉은색 조명만큼이나 인상적이다.

펑제(奉節)펑제는 서릉협, 무협, 구당협으로 이어지는 장강삼협 크루즈의 마지막 코스에 위치해 있다. 배를 타고 올라오면서 보이는 모든 마을이 그렇듯이 이 곳 펑제도 올해 11부터 삼협땜의 저수가 시작되면 저지대는 물에 잠기게 된다. 비탈진 마을의 아래쪽은 낡은 집들이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높은 지역에는 사람들이 이주할 새로운 아파트들이 미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차피 사라질 곳이니 개발을 할 이유도 없다. 제대로 된 호텔은커녕 운이 나쁘면 온수도 나오지 않는 여관에서 자야하지만 그건 국가 원수가 온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상황이다.
그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펑제는 오랫동안 기억될만한 곳이다.

모든 것이 낡고 불편하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진다. 차선도 신호도 없는 도로에는 차와 사람들이 뒤엉키지만 혼란 속에도 질서가 있고, 싱싱한 재료들을 즉석에서 요리해주는 거리의 음식점은 만물상처럼 신기하기만 하다. 미용실을 겸한다는 발마사지집의 서비스는 어딘지 어설픈 구석이 많았지만 그래도 웃고 떠들며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다.

시계하나 없는 여관방의 아침은 모닝콜 대신 차들의 경적소리로 시작된다. 시골의 장터에서나 느낄 수 있는 분주함과 활기참이 공기 중에 가득하다. 선착장에는 어느새 장이 섰다. 바구니마다 샛노란 귤들이 가득하고 흥정하는 소리는 높아만 간다. 저 허물어져가는 마을 어디에 저 많은 사람들이 스며들어 살고 있는지, 새삼 여기가 인구 12억의 중국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펑제에서 배를 타고 조금 내려오면 백제성(白帝城)에 도착한다. 백제성이라는 이름은 공손술이 촉나라 왕으로 자칭하고 이 곳에 수도를 정했을 때 우물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용의 형상을 보여 준 것에서 유래했다. 공손술은 이를 좋은 징조로 왕 이름을 ‘백제’라고 했으며 성이름도 백제성이 됐다. 삼국시대에는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고 지금의 의창 부근에서 큰 싸움을 벌였다가 동오의 장군 육손에 대패하여 백제성으로 퇴각했다. 그리고 유비는 이 곳에서 병사하면서 두 아들은 재갈량에게 의탁했다.

중국 우한 = 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 = 대한항공 1588-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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