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떠나는 장강삼협(長江三峽) 유람은 사실 인내심과의 투쟁에 가깝다. 오전 9시에 이창(宜昌)에서 시작된 협곡 기행은 신농계 래프팅 코스를 포함해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펑제(奉節)에서 끝이 났다. 아니 실은 그게 끝이 아니다. 그 다음날에는 거꾸로 펑제를 출발해 백제성(白帝城)을 거쳐 출발지인 이창으로 돌아오니 또 다시 해가 뉘엇 저물고 있었다.

꼬박 이틀을 난방도 되지 않는 배 안에서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두어 시간 분량으로 편집한 드라마 ‘가을사랑’의 엑기스판 비디오 시사회가 없었더라면 아마 잠을 청하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지금과 같은 장강삼협의 겨울은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장강삼협 크루즈

장강삼협은 총길이 193km에 달하는 협곡이다. ‘장강(長江)’은 우리가 양자강이라고 알고 있는 그 강이고, ‘삼협’은 이 기나긴 협곡의 이루고 있는 세 개의 ‘협(峽)’을 말하는 것이다. 상상 이상으로 길고 넓은 강을 따라 쑥쑥 솟은 좌우의 봉우리와 절벽으로 이어지는 코스,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것이 바로 장강삼협 크루즈다.

장감삼협 크루즈의 출발점은 이창의 갈주(葛洲)댐이다. 최대 연간 157억KW를 생산할 수 있는 수력발전소이자 수문 조절을 통해 항운, 관개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창의 선착장에서 러시아제 쾌속정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서릉협-무협-구당협의 ‘삼협’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어서 서릉협은 병서보건협, 공영협, 우간마패협 등이 유명하고, 무협에는 12개의 기이한 봉우리가 있으며, 구당협은 제일 짧지만 가장 웅장하고 멋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의 댐을 건설하는 대역사(大力士), 삼협댐 공사가 진행되는 곳은 서릉협 코스다. 높이 185m, 연간 857억KW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댐을 만들기 위한 어마어마한 공사는 그 자체로 신기한 구경거리다. 흙더미 속에서 거대한 기계들이 팔을 이리 저리 휘젓고 있는 모습은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처럼 괴기스럽다.

장강의 황톳물을 뒤집어 쓴 쾌속정의 뿌연 창으로는 삼협의 장관이 투사되지 않는다. 모자를 잡아먹는 강풍과 추위를 무릅쓰고 선실바깥으로 나가야만 지나치는 풍경들을 잡을 수 있다. 흐린 날씨 속에서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삼협의 골짜기는 신비로움마저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아기자기, 오밀조밀한 산수에 길들여져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끝없이 이어지는 골짜기의 풍경이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역사와 관련이 있을 지명들도 낯설고 가끔 ‘선녀봉’처럼 특이한 모양을 강조한 곳에 눈길을 돌려보지만 아무래도 ‘미적 감각’이 다르지 않겠는가.

그래도 자꾸 선실 밖으로 종종 걸음을 쳐보는 이유는 올해 11월에 삼협댐의 저수가 시작되면 지금 우리가 보는 장감삼협의 풍경과는 영영 이별을 해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워낙 깊은 골짜기여서 여전히 봉우리들은 살아 있겠지만 수위가 80여m 이상 높아지고 나면 그 웅장한 맛은 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어떤 곳은 빙산의 일각을 보는 듯 밋밋해질 것을 생각하니 한없이 아까운 마음이 든다.

신농계 래프팅

장강삼협 크루즈의 하이라이트는 신농계(神農溪) 래프팅이다. 신농계는 장강삼협 코스 중에서 무협이 시작되는 파동(巴童)에 위치해 있다. ‘화중의 제일 봉우리’라고 불리는 신농가의 남쪽기슭에서 발원한 물이 60km를 달려 양자강으로 흘러든다.

그 물을 따라 거슬러 내려오는 것이 바로 신농계 래프팅이다. 거슬러 내려오려면 그 전에 올라가는 것이 먼저다. 배를 타고 파동에 도착한 일행은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기름 냄새에 찌든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내내 창문 흔들리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아준다. 길은 점점 좁아져 굽이굽이 비탈 진다.

역시 냉방이 되지 않는 낡은 버스. 위험천만한 낭떠러지를 곁에 두고도 베테랑 기사의 곡예운전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커브를 돌때마다 눈앞에 나타나는 수려한 장관에 자꾸 넋을 빼앗긴다.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살지 않을 것 같은 첩첩골짜기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을 경작지로 바꾸어 놓은 사람들은 ‘토가족’이라는 이 지역 고유의 부족이다.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를 구사하며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만든 마을은 누추하지만 그림처럼 아름답다. 가로 세로 고랑을 내어 놓은 밭에는 붉은 적토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푸른 야채들이 가지런히 자라고, 맑고 고요히 흘러내리는 신농계의 청수는 뱀처럼 길게 마을을 돌고 언덕을 돌아 장강으로 내닫고 있었다.

자갈이 훤히 비치는 신농계의 물보다 맑은 것은 토가족 사람들의 눈이다. 드디어 버스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모과처럼 생긴 머리통만한 과일이나, 과자 같은 것을 사라고 졸졸 뒤를 쫓아오는 이들은 사실 장사속보다 우리 일행을 구경하는데 더욱 열중인 것 같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몹시 수줍어하면서도 생긋 웃어주는 아낙들과 앙증맞은 어린 것들을 위해 한국의 아버지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낯선 손님들을 위해 토가족의 공연단이 선사한 춤과 노래는 상당히 흥미롭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강렬한 대조를 이룬 복장을 입은 소년, 소년들은 주제가 ‘연애’와 관련된 것이 분명한 공연을 펼쳤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변화무쌍한 성조와 남학생들의 가는 고음 처리에 감탄을 할 뿐이다.

점심을 먹고 시작된 래프팅은 장장 2시간이나 이어졌다. 휘잉, 휘잉, 바람부는 소리만 웅웅거리던 쾌속정 탑승에 비하면 래프팅은 참으로 고요하다. 나무로 만든 13m의 배에는 10명의 승객과 6명의 사공이 탄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급류타기식의 재미는 없지만 주위의 풍광은 태고적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앵무협-면죽협-용창협을 거치는 동안 기암괴석들과 아름다운 관목림, 야생 원숭이 등의 풍경들이 지나간다. 코스마다 친절한 설명을 마다 않는 가이드는 폭이 깊고 좁은 곳에 접어들자 소리가 맑은 노래까지 불러준다.

그렇게 2시간을 내려오자 우리는 어느새 버스를 타고 출발했던 파동에 도착했다. 으슬으슬한 추위 때문에 몸이 꽁꽁 얼었지만 쉽사리 불평을 할 처지는 아니다. 토가족의 사공들은 우리가 내려왔던 코스를 고스란히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추운 겨울에 반바지 하나를 달랑 걸치고 차가운 물속에 꼬박 8시간 배를 끌어야 다시 출발점에 도착한다고 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이미 경험했던 아슬아슬한 0차선 도로와 열악한 교통수단들을 생각하면 달리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삼협댐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해 신농계의 수위가 높아지면 이들의 ‘노동집약적’ 래프팅 사업에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오리라.

장강삼협 글·사진=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대한항공 1588-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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