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태국 방콕에서 130km 정도 떨어진 칸차나부리를 여행할 때 꼭 가슴에 품어야 하는 말이다. 칸차나부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로 전쟁과 관련한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는 곳. 너무 감정적으로 관광하다보면 그 역사의 무게 앞에 여행의 즐거움이 반감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역사를 무시한 채 단순한 조형물과 자연만을 감상한다면 칸차나부리 여행의 진수를 놓친 것이 될 터.

‘콰이강의 다리’를 따라서

콰이강을 따라 유유히 미끄러지던 햇살이 처마에 매달린 풍경에 부딪치는 한낮의 시골, ‘탐 크라세(Thamkrasae)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철도변 바로옆에 위치해 열차를 기다리면서 맥주한잔 마시기에 그만인 이곳은 레스토랑이라지만 시야가 뻥 뚫린 누각같은 느낌으로, 도도하게 펼쳐진 콰이강과 그 옆으로 뻗은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국내에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소개된 칸차나부리의 이 다리는 2차 세계대전당시 일본군이 버마로 군수품을 이동할 철도가 필요해지면서 급하게 만들어졌다. 4년 정도 걸린다는 다리를 일본국은 1만6,000여명의 포로와 4만9,000여명의 강제 노동자들을 동원해 13개월만에 완성,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이들이 목숨을 잃어 ‘죽음의 철도’라는 악명으로 불리게 됐다.

다리는 전쟁중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됐으나 복원돼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절벽을 휘감아 뻗은 철로를 걷다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당시 이정도 규모의 산을 깎아 선로를 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이 필요했는지를.

열차는 하루 6편이다. 보통은 칸차나부리에서 버마행 기차를 타는 코스를 이용하지만 숙소가 시내인지라 버마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칸차나부리행 열차를 탔다. 탐크라세를 지나는 열차 시간표는 버마행일 경우 오전 5시53분, 오후1시25분, 오후4시2분이며, 칸차나부리행 차편은 오전6시11분, 오전11시1분, 오후4시35분이다. ‘칼’처럼 지켜지는 열차시간이 아니니 미리 도착해 주변을 돌아보는 편이 좋다.

열차가 오기전 철도 위를 걸어 제법 멀리까지 나갔다. 굽이굽이 뻗은 철로위에서는 콰이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유럽인들을 꽤 많이 만난다. 풍경도 일품이지만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는 나무판을 하나씩 이어놓은 다리바닥을 보고 있으면 ‘과연 기차가 다니기는 하는거야’라는 아찔한 생각도 든다.

기차는 2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마주보게 배치돼 있는데 이미 현지인과 학생들,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학생들의 통학버스 및 교통수단으로도 톡톡히 자리잡고 있는 듯 중간중간의 간이역마다 현지인과 아이들이 모래알 빠지듯 빠져나간다. 어렵지 않게 자리에 앉아 차장 밖 풍경에 눈을 맡겼다.

촌스럽게도 보이는 풍경 하나가 다 신기하고 새롭다. 아슬아슬하다고 느껴지는 절벽 바로옆 다리 위에서는 조금만 비켜나도 콰이강으로 추락할 것만 같다. 서로 창밖으로 머리를 길게 빼고 사진들을 찍느라 정신없다. 평지로 안전하게 내려온 열차는 다시 휙휙 바람의 속도를 낸다.

평소라면 90여분의 기차여행이겠지만 의외의 사태가 발생했다. 가변철도의 문제로 지체됐던 연착이 처음 예상했던 20분을 훌쩍 넘어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다행이 일정을 다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던 터라 여유롭게 자리를 털고 나와 마을 탐방도 하고, 주변에서 파는 과일과 과자들로 배를 채웠다. 특히 입맛을 당겼던 것은 녹두빛깔의 밀가루를 종이처럼 얇게 부쳐 그 안에 꿀을 넣은 한국호떡식의 음식. 가격은 하나에 5바트(150원 상당)다.

다음날 숙소에서 나와 콰이강의 다리를 직접 건넜다. 이른 아침인데도 다리가 인산인해다. 아이를 앞세우고 철로를 건너는 일본인과 삼삼오오 무리를 짓고 있는 태국 현지인들, 천천히 다리를 건너는 유럽인들은 각각 어떤 심경으로 다리를 바라보는 것일까.

Forgive, But Not Forget

콰이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제스(JEATH) 전쟁박물관’과 ‘연합군 공동묘지’가 있다. 나무막사를 개조해 ‘ㄷ(디귿)’자 형태로 만들어진 제스 박물관에는 포로들의 옷과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제스(JEATH)라는 단어는 전쟁에 참가했던 일본, 영국, 호주, 태국, 네덜란드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 지금은 남아 있지 않으나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예전에는 ‘Forgive, But Not Forget(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마라!)’는 문구가 새겨 있었다고 한다. 매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6시까지 입장가능하다. 입장료는 20바트.

연합군 공동묘지에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의 전쟁중 숨진 4,000여명의 묘지가 한눈에 들어오기 힘들만큼 너른 평지에 길게 누워있다. 비석에는 국적과 이름, 나이 등이 적혀있는데 대부분 20대들이 많아 보는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준다. 자신의 나라 젊은이들의 묘비를 찾아 묵념하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태국 칸차나부리 글·사진=박은경 기자 eunkyung@traveltimes.co.kr
취재협조=하나투어 02-212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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