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좋게 이글거리던 남국의 태양이 시나브로 수평선 위에 내려앉으면 해변엔 어느새 설핏한 기운만이 가득하다. 다정스레 손을 맞잡은 커플과 가족들은 주섬주섬 비치의자에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세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석양과 일몰의 순간을.

필리핀 세부 섬은 리조트 여행의 천국이다.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수많은 리조트가 여행객에게 끊임없이 유혹의 몸짓을 한다. 선뜻 어느 리조트를 택해야 할지 적지 않게 고민되는 게 사실이지만 좀 더 새롭고 낯선 은밀함을 원한다면 ‘바디안 리조트(Badian Island Resort)’가 제격이다. 낯설고 새로움 속에 세부 최고의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헤어짐의 발걸음을 한없이 무겁게 만드는 가슴 ‘쨍’한 정감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필리핀 세부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3시간 가량을 달려 도착한 곳은 조그마한 시골 선착장. 선착장은 손에 잡힐 듯 지척의 거리에 있는 바디안 섬을 바라보고 있다. 바디안 리조트는 그 섬 속 싱그러운 야자수 잎 사이에 다소곳이 모습을 숨기고 있다. 선착장에서 보트로 5분 가량, 섬 바로 코앞까지 다가갔지만 보이는 것은 고작 야자나무 위로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 몇 개의 지붕들뿐. 무엇을 감추고 있는 걸까.

그 설렘의 떨림을 더욱 방망이질하는 것은 환영파티를 위해 내내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의 그 순박한 미소. 한 낮 남국의 뜨거운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리핀 전통의 환영노래를 부르며 정성스레 환영 꽃다발을 걸어주는 그네들의 모습 속에 가식의 흔적이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 진정성은 급기야 리조트를 떠나는 순간 아쉬움의 눈물로 변하고 만다.

섬에 두고온 따뜻한 인정

바디안 리조트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년 전. 몇몇 허니문 커플들이 알음알음 발걸음 해왔을 뿐이지만 사실 리조트 자체의 역사는 매우 깊다. 지난 1982년에 들어섰으니 지금까지 20년 넘는 세월 동안 섬 속의 또 다른 섬 안에서 그 은밀함을 키워왔던 셈이다. 필리핀을 여행하던 도중 바디안 섬의 풍광에 매료된 독일인 하르비그 슈월츠씨가 리조트를 개발한 주인공이다. 82년 리조트 개발에 착수할 때만 해도 타인을 의식한 것이라기보다는 별장 개념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바디안 리조트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대여섯개의 객실밖에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독일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인들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규모도 자연스레 커져 현재는 50개의 독립 별장형 객실과 야외수영장, 스파, 바, 레스토랑 등을 갖춘 유명 휴양리조트가 됐다.

하지만 바디안 리조트의 매력은 물리적 시설의 크고 작음,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진정한 가치는 바로 꾸밈없는 친절함과 정성이다. 처음엔 업무상의 인위적인 친근함으로 지레 결정하고 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아님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섬을 떠나야할 순간에 가슴이 싸∼아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항상 대륙을 그리워하는 섬은 고독하다. 그러나 섬은 변함없는 대륙의 꿈이자 이상향. 대륙의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이 섬에는 없다. 하물며 섬 속의 또 다른 섬은 말해 무엇하랴. 바디안 섬은 그런 곳이다. 고독한 섬에서조차 또 한번 동떨어진 섬 속의 섬이어서 아옹다옹 성가신 일이 없다. 그래서 ‘바디안 섬에서는 시간이 통째로 멈춰 버린다’는 평이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디안 리조트는 개별 코티지 형식으로 꾸며져 있어 휴식의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많이 알려지지도 않아 왁자지껄한 분위기보다는 호젓한 분위기가 물씬하다.

바다·해변·석양이 모두 내것

또 리조트 측에서도 이에 초점을 맞춘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선상디너는 허니문 커플이라면 반드시 즐겨봐야 할 서비스다. 바다 위에 띄운 조그마한 선박 위에서 철렁이는 파도소리와 시원한 바다바람, 그리고 은은한 촛불과 함께 둘만의 오붓한 저녁을 즐길 수 있다. 낮에는 섬 주변의 해변으로 배를 타고 나가볼 일이다.

‘코럴 비치’라는 외딴 산호비치에서 둘만의 식사와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세부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바디안 리조트의 일몰광경은 또 어떤가. 비치의자에서 혹은 바다를 가로질러 얕게 형성된 사구에서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 속에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 수도 있다.

바디안 섬에서라면 바다와 해변과 석양이 모두 나의 것인 셈이다. 허니문 커플들은 별도로 마련된 정원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코코넛 나무를 심어 기념할 수 있다. 지금도 십 수년 전의 허니문 커들들이 아이들과 함께 다시 방문해 훌쩍 자란 코코넛 나무를 보고 즐거워한다고 한다.

역동적인 즐거움도 다채롭다. 빼 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해양 스포츠다. 스노클링에서부터 스쿠버다이빙, 제트스키, 윈드서핑, 카약, 바나나보트 등 원하는 모든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이곳 바닷속은 각종 열대어와 산호가 또 다른 세상을 펼쳐 보이고 있어 스쿠버 다이빙의 인기가 매우 높다. 바디안 리조트에서만 20년 가까이 전문강사로 일해 온 미국인 토니씨의 지도로 쉽고 안전하게 배울 수 있다.

섬 주변에만 십 여 군데의 다이빙 장소가 있어 전문 다이버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있으며, 초보자도 약간의 교육을 통해 10m 안팎까지 잠수할 수 있다. 각종 산호와 열대어가 연출하는 물 속 세상은 환상 그 자체다. 다이빙이 두렵다면 스노클링을 통해서도 쉽게 울긋불긋 현란한 색채의 물 속 세상과 만날 수 있으며, 그도 아니면 바닥이 유리로 된 보트를 이용해 배 위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주변 지역으로의 나들이도 놓쳐서는 안 될 즐거움이다. 바디안 시에서 현지인들이 벌이는 닭싸움을 구경할 수도 있으며, 때 묻지 않은 맑디 맑은 물과 야자수가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는 ‘가와산 폭포’로 반일 소풍을 나갈 수도 있다. 가와산 폭포까지는 약 20분 동안 산행해야 하는데 산새와 물, 그리고 그림 같은 풍경이 3중주 오케스트라 협연을 펼쳐 그야말로 둘만의 천국을 만들어 준다.

필리핀 세부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취재협조=필리핀항공 한국지점 02-774-0088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