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일이었다. 짜여진 일정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두 발을 ‘꽉꽉’ 디뎌가며 다른 나라 땅을 누벼본 것이. 태어나 처음 국토 종단이란 것도 경험해 보았다. 버스를 타고 북쪽 국경지대로 올라간 후 타박타박 남쪽 끝까지 걸어 내려왔다. 그곳은 마카오였다.

주어진 이틀은 너무 짧았다. 여정의 끝에서 돌아본 모든 곳은 애잔하다고 했던가. 마카오도 꼭 그랬다. 건물을 찬찬히 뜯어가며, 사람들의 얼굴을 세밀히 응시하며, 골목골목 난 길을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보낸 48시간은 따가운 볕 아래 놓인 아이스크림처럼 너무도 빨리 녹아내렸다.

마카오로 향하기 전 뭇 사람들에게 들었던 반나절도 못돼 지루할 것이라는 충고 아닌 충고는 모두 허공에 뜬 메아리였다. 그들은 마카오에 대해 무지하거나 모든 목적지는 상호 비교 불가라는 여행의 금기를 망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마카오는 홍콩을 비롯한 다른 여행지와 묶어서 상품화되는 그야말로 곁다리 신세지만 직접 가보면 그것이 얼마나 부당한 처우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세상 모든 곳은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다는 췌언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유럽식도 그렇다고 중국식도 아닌 독특한 마카오 스타일은 폄훼될 만한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마카오는 무엇보다 도보여행으로 참 알맞은 곳이다. 종로구만한 크기에 주요 볼거리들이 멀지 않은 곳에 서로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차량을 이용해 반나절만에 마카오를 휙 흘려버리고 말지만 느긋하게 시간을 갖고 길동무와 수런수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땀한땀 짚어나가는 것이 정석이다.

영토는 작지만 여러 가지 주제로 묶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카오인데, 우선 박물관 투어를 빼놓을 수 없다. 여러 박물관 중에 좌장격은 역시 마카오 박물관. 450여 년에 걸쳐 동서양의 문물을 융화시키고 새로운 것으로 뽑아낸 마카오의 역사를 한눈에 꿸 수 있다.

역사적인 아마 사원의 맞은 편에 자리한 해사 박물관은 포르투갈과 중국간의 해양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근 제1번 부두에는 정크선이 크루즈 관광객들에게 손짓한다. 그랑프리 박물관과 와인 박물관은 관광정보센터에 함께 들어있는데, 전자는 아시아 최고의 자동차 경주인 마카오 그랑프리 40주년을 기념하기 세워진 것이다.

과거 우승을 차지했던 경주용 자동차들과 오토바이가 전시돼 있다. 와인 박물관에서는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마카오에 들어온 와인이 아시아에 전파되는 과정을 볼 수 있고 와인 시음도 할 수 있다.

역사 유적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성 바울 성당이다. 17세기 초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설계되었 고 종교 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피난 온 일본인들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전해진다. 1835년 성당과 인접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 정면과 계단, 일부 벽 및 지하실을 제외하고는 소실되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시각적 독특함을 제공한다.

마치 로마에 있는 옛 건축물을 떠올리게 한다. 네덜란드의 침입을 격퇴한 대포를 보존하고 있는 몬테요새, 중국 국경지대가 내려다보이는 몽하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주변 조망이 활달한 몽하요새, 중국과 서양의 문화적 특징들이 융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기아요새 등 요새 투어도 마카오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볼 만한 정원들도 여럿이다. 포르투갈의 민족 시인이자 군인 루이스 데 카모에스가 마카오로 추방되었을 때 머물던 카모에스 정원 한켠에는 김대건 신부의 상이 서있다. 루임옥 정원은 마카오에서 가장 중국적인 것으로 쑤저우(蘇州) 스타일을 모방했다 한다.

시 중심인 세나도 광장은 희고 검은 돌을 물결 무늬로 박아 넣어 이국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이곳에서 성 바울 성당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골동품 상점에서 주로 청나라 이후의 목가구와 도자기들이 진열돼 있다.

성 바울 성당이 전통의 상징물이라면 얼마 전 완공된 높이 338m의 마카오 관광탑은 마카오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야외 전망대에 오르면 마카오와 남지나해는 물론이고 64km 떨어진 홍콩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카오가 좁은 영토 하나로 이뤄진 줄 알지만 이 나라에는 두 개의 부속 섬이 있다. 타이파와 꼴로안 섬이 그것으로 마카오를 방문했다면 이 두 섬도 꼭 둘러보길 바란다. 검은 모래로 유명한 꼴로안의 핵사비치도 좋지만 타이파의 타이파 빌리지 만큼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포르투갈 양식의 성당과 도서관, 갤러리, 각 국의 주택 전시관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야경이 특히 압권이다. 건물 여기저기에 설치되 은은한 조명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 계단인 까르모 코스웨이(Carmo Causeway)의 일렁이는 조명을 보는 순간 유럽의 어느 마을로 불려 온 듯한 착각이 시작된다.

마카오 글·사진=노중훈 여행 칼럼니스트
취재협조=마카오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8-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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