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사람들이 말하는 나가사키의 매력 중 하나는 동·서양의 어울림이다. 16세기 해외와의 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본의 나가사키는 공식적 통로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일본의 고유한 토대 위에 유럽과 중국문화 등이 얹어진 독특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작은 어촌 마을이던 나가사키는 국제 도시로 거듭났다. 활발한 교류로 인해 이 지역 사람들에게서는 외국 문물에 대한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감지해 낼 수 있다. 나가사키에 있는 공자 사당에서 만난 한 화교는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면모를 갖고 있는 일본이지만 나가사키는 예외”라며 “오래된 개방 역사 탓인지 외국인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도시”라고 전했다.

이 같은 역사 때문에 서양인들이 머물렀던 여러 장소들은 나가사키의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2010년까지 복원을 마칠 예정인 데지마는 나가사키의 근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데지마는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자리 잡았던 곳이자, 포르투갈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또한 에도 시대 쇄국 정책을 실시하던 중에도 유일한 서양 교류의 공식적인 창구 역할을 했다.

에도 시대의 서양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데지마가 전통 일본 거리인 반면 메이지 시대의 서양인들의 가옥을 모아 놓은 글로버 공원은 자유분방한 서양 스타일 그대로다. 시내에 있던 6채의 메이지 시대 서양 가옥을 모아놓은 곳으로 3만 3,000여평 정도의 부지에 현재의 그로바엔이 만들어졌다. 이 중 토마스 글로버의 자택은 일본 사적으로 등재돼 있다.

이 곳은 당시 동인도 회사 등 일본과 서양과의 무역에 종사하던 서양인들의 주택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주택 스타일은 당시 유럽인이 선호하던 방갈로 스타일이지만 외부 장식 면에서 완벽한 서양 스타일은 아니다. 기와 등 외부 장식에서 일본 매력이 가미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나가사키 시내에 산재돼 있던 서양인 링커, 토마스 글로버, 월트씨 등의 가옥을 모아 놓은 이 곳은 나가사키 부두와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어 전망이 유독 뛰어나다.

역시 사적으로 보전되고 있는 오우라 성당과 글로버 공원 주변의 오란다(네덜란드) 거리 등은 나가사키의 이국적 도시 이미지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천주교를 받아들인 곳답게 성지가 곳곳에 있다.

유독 일본에서 만큼은 기독교의 위세가 크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나가사키는 천주교 신자도 제법 많은 편이라고 한다.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는 일본 최고(最古)의 교회인 오우라 성당과 교회, 거리 곳곳에 있는 세인트(聖)라는 상호는 나가사키 시가 새삼 개항 일번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나가사키 음식에도 일본 고유의 요리 형태에 네덜란드, 포르투갈과 중국 등 외래문화가 배어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일본 특산 요리에 포르투갈에서 전래, 일본식으로 변형된 카스테라와 나가사끼 짬뽕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외국문화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유연한 태도에 대해 새삼 놀라워진다.

나가사키는 이국적 매력이 숨쉬는 곳이라고 거듭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나가사키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양과의 교류로 만들어진 나가사키 시를 가감없이 사랑한다고 할까. 물론 서양에서 전래된 풍습, 문화가 지금의 나가사키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이고, 일본이라는 단단한 껍질 위에 덧입혀진 이국적 풍습은 외국인에게 생소하기도 하다.

일본 전통 축제인 나가사키 군치 마쯔리(축제)에도 ‘일본과 서양 문화의 융화’라는 나가사키시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군치 마쯔리는 일본 고유의 골조에 울긋불긋한 용의 춤이며 네덜란드 만담 등 풍성한 이국적 축제가 더해진다.

이 기간 중 열리는 페이론 축제 역시 중국 문화가 덧입혀진 축제다. 300여 년 전 중국에서 난파한 선박 선원이 바다의 신에게 바치기 위해 매년 여름 열리고 있는 이 경기는 나가사키 현 사람들이 마을 단위로 참여하는 등 널리 즐기고 직접 참여하는 축제라고 한다.

요코하마, 고베에 이어 일본 내 3번째 차이나타운이 소재하고 있는 나가사키의 중국 문화를 언급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신치중화거리를 중심으로 중국 요리점을 나타내는 빨간 간판이 단촐한 시내 풍경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중국 설 축제인 랜턴 페스티벌이 음력 1월1일부터 15일까지 도시 곳곳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패루 아래로 중국 잡기단 등의 공연이 시민과 관광객들을 손짓한다. 시내 곳곳에 1만2,000여개의 랜턴 불이 밝혀진 나가사키시는 일본 전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보름 남짓한 랜턴 페스티벌 기간은 거리 곳곳에 홍등이 가장 먼저 알린다. ‘남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무서운 적응력인 가진 나라’라는 어구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나가사키 글·사진=임송희 기자 saesongi@traveltimes.co.kr
취재협조=나가사키 현 서울 사무소 02-399-2190

숨어 있는 닮은꼴 찾기

나가사키에 대한 친숙한 이미지는 1시간 내외의 가까운 거리 탓도 있지만 부산 이미지가 강하게 풍겨 나온다는 점이다. 이나사야마에서 바라보는 나가사키의 야경은 여러 면에서 부산시의 그것과 닮아 있다.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한일 간의 밀접했던 고대 교류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일본 남부인 큐슈 지역의 억양과 우리네 특히 부산의 그것이 참 많이도 닮아 있다는 것은 억지스러운 끼어 맞추기는 아닌 듯 싶다.

나가사키를 찾은 한국 사람들은 한결같이 독특한 항구 도시 이미지와 언덕배기에 조성된 주택가를 떠올리며 부산을 나가사키에 중첩시킨다. 사람들이 말하는 닮은 모습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대략 70%의 주택가가 구릉에 위치해 있고 약간 높은 지대에서라면 시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부두가 그렇다고 한다.

나가사키시가 부산과 차별화된 점은 대도시에서 풍겨나오는 부산함은 없고 단촐하고 정갈한 분위기라는 점이다. 일례로 나가사키 시의 수산 시장에서도 새벽을 가르는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지만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느껴지는 대도시(민)만이 갖는 치열함은 덜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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