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막으면 구름위로 간다. 안개가 막으면 안개를 뚫고 간다. 산은 오지 말라는데, 비행기를 타고 그만 산위에 올라가 버렸다. 아니 산을 아예 발밑에 두었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모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보고 말았다. 히말라야를 통채로.

네팔을 찾는 배낭족들 가운데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다. 길고 긴 인도여행을 다녀온 후 푸근한 네팔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다음 목적지를 향한 재충전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낭족들의 휴식처 네팔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휴양지는 어디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반의 마을 포카라를 꼽을 것이다. 카페와 리조트도 풍부하지만 포카라의 자연이 완벽한 휴식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카라는 한마디로 평화다. 그리고 한 장의 그림엽서다. 날씨만 허락한다면이란 단서가 붙긴 하지만, 들에는 꽃이 피어있고 호수는 거울 같다. 눈 덮힌 봉우리 마차푸차레는 수면에 비추어 호수는 하늘이 돼버린다.

포카라에서의 첫날밤. 아쉽지만 잠을 일찍 청했다. 새벽같이 사랑곳에 올라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서다. 사랑곳까지는 차로 이동한 후 걸어서 올라간다. 드디어 일출과 함께 히말라야의 전경을 고대해보지만 또다시 자욱한 안개와 구름.

허탈한 마음으로 한 10여분 땀을 식히다 보니 물고기 꼬리를 닮은 마차푸차레가 구름속에서 그림처럼 나타난다. 또다시 저편 끝에서 봉우리 하나가 살짝 보이더니 금새 숨어버린다. 상황 끝. 이른 새벽 산 공기로 아쉬운 맘을 달랠뿐이다.

산밑을 내려다보니 눈 녹은 물들이 만들어 낸 강줄기들이 보이고 개미만한 사람들이 열심히 걷고 있다. 포카라는 트래킹의 출발지로도 유명하다. 일반인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것 같지만 전문 가이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사람들도 만나고 차도 마시고 하다보면 해발 5,000미터도 불가능하지 않다.

물론 코스에 따라 3일에서 30일까지 소요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초보자들은 포카라를 출발, 푼힐 전망대에 올라 안나푸르나 히말라야의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3일 짜리 고라파 니 코스가 적당하다.

사랑곳을 내려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깜짝쇼가 벌어졌다. 산구비를 하나 돌아서는데 차창밖으로 산들이 온통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모두들 급한 마음에 차를 내려 사진들을 찍어댄다. 변덕 많은 설산의 자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위로 유유히 절반의 장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포카라를 떠나기 전 호수에서 나룻배를 탔다. 잔잔한 물결에 맘도 편하다.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평화로움이 어색했을까. 배에서 강물로 직접 뛰어드는 박력파도 있다. 친근한 호수에 배는 떠 다니고 손님은 뱃머리에 기대어 호수 저편 구름뒤의 히말라야를 다시 기다려 본다. 물론 포카라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하지만.

다음 목적지를 향하다 보니 간밤에 내린 비로 산길이 무너져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급한 맘이 없다. 일행들도 어느새 네팔에 동화됐는지 장기전에 돌입할 채비를 한다. “네팔에선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잖아...” 맘 편한 말 한마디들 던져놓고 창문에 기대 잠을 청하고, 책을 읽고, 누구는 카드패도 돌리고 네팔의 구전가요 ‘닛산 삐리리’를 따라 부른다.

마운틴 플라이트는 히말라야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의 마지막 시도다. 붓다항공에서 운행하는 마운틴 플라이트는 에베레스트 위까지 올라간다. 이착륙 포함해서 약 1시간에 100달러의 요금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20인승 비행기는 만원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히말라야는 왼쪽 창가에서 나타나서 선회와 함께 오른 쪽으로 사라진다. 스튜어디스가 히말라야의 안내도와 함께 각 봉우리의 이름을 가르쳐 주지만 사람들은 창가에 매달려 눈을 떼지 못한다. 한사람씩 조종석에 들어가 앞의 전망도 볼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억지로 올라간 히말라야. 대자연이란 단어가 예전부터 자기 것 같은 장관이 오히려 허무감마저 자아낸다. 자신의 발로 올라서지 못한 에베레스트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영혼은 미처 따라오지 못하고 비행기에 몸만 실어 힐끗 보고 지나는 히말라야가 얼마나 기억에 남을까.

그래도 눈앞에 가득한 설산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 말도,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찌됐든 하얗고 선명한 히말라야를 시야 가득히 포개 넣었으니까. 산밑으로는 만년설이 만들어 낸 역사의 강물 자국이 보이고 저너머 티벳이 보인다. 그렇다면 저쯤이…

국경을 헤아리는 인간의 티끌 같은 생각에 히말라야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자기 자리를 지킬 뿐이다.

네팔 글·사진 = 한정훈 기자 hahn@traveltimes.co.kr
취재협조=(주)예일로얄네팔에어라인 02-2648-8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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