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자연현상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신의 존재를 느낀다고 한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이 세상 어디에나 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자도 신앙인도 아닌 보통 사람들도 호주 빅토리아 주의 남동쪽 해안, 200Km가 훌쩍 넘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달리는 동안만큼은 신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는 해안선을 따라 200km가 넘게 이어지는 멋진(그러나 고된) 드라이브 코스다. 포트 페어리(Port Fairy)에서 시작된 길은 토키(Torquay)까지 장장 5시간이상 이어진다. 한쪽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푸른 바다, 그 반대쪽은 드넓은 들판이다.

소금기 섞인 공기와 강한 바람에 적응하느라 키가 작아진 나무들이 해변을 온통 덮고 있고, 그 끝은 낭떠러지다. 사람들은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마다 산책로를 만들고 전망대를 만들어 ‘12사도’니, ‘런던 브릿지’니 하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륙쪽으로 조금만 들어오면 아늑한 숙소와 해수욕장, 조류 관찰지 등 아기자기한 방문지들이 포진해 있다.

영어가 더 익숙했다면 그 풍경을 보면서 ‘그레이트, 그레이트’를 연발했겠지만, 표현에 인색한 한국 사람들인지라 고작 ‘멋지다’ 한 마디가 바다에 던지는 최고의 찬사다. 하지만 기념품점에서 구입한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사진을 모두들 보물 단지 다루듯 내내 들고 다니더니 돌아와 멋진 액자로 만들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곡예 운전에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던 것이 곤혹스러웠지만 덕분에 머릿속에 고스란히 담아왔던 차창밖 풍경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 곳의 경이로운 풍경은 야생 펭귄들의 퍼레이드를 볼 수 있는 필립 아일랜드와 함께 단연, 빅토리아주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멜버른을 호주 여행 1번지로 꼽는 사람들이 많듯이,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빅토리아 여행 1번지로 꼽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레이트 오션 로드가 있는 바스 해협(Bass Strait)은 많은 이들이 수장당한 참혹한 현장이기도 하다. 강한 바람과 파도, 그리고 짙은 안개에 선장들은 배를 통제할 힘을 잃어버리기 일쑤인데 온통 깍아지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이 해안은 마음편히 비빌 언덕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관광객들에게는 마냥 ‘그레이트’한 풍경이지만 초기의 이민자들에게는 ‘테러블(terrible)’의 대명사였을지도 모르겠다. 잘 못 건드리면 터지는 뇌관처럼 바람에 밀려 ‘쾅’하고 부딪치고 나면 그대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난파선의 해안(Shipwreck Coast)이라는 별칭을 얻었겠는가.

포트 캠벨 국립 공원(Port Campbell National Park)에는 12층 빌딩의 높이와 맞먹는 봉우리들이 해안선에서 불과 몇십, 혹은 몇백미터 거리에 줄지어 있다. 아마 대한민국의 다도해쯤에 위치했다면 ‘사자바위’‘독수리 바위’ 같은 이름이나 무슨 무슨 ‘망부석’이라고 불렸을지도 모를 이 석회암 봉우리들이 빅토리아에서는 ‘12사도(Twelve Apostles)’라고 불리고 있다.

어느 것이 베드로이고 어느 것이 바오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신이 아니고서는 누가 이런 걸작을 만들어 내겠는가. 오늘도 바다와 비와 하늘과 바람은 신의 뜻에 따라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바다를 향해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대신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색다르게 감상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포트 캠벨에서 배를 타거나 12사도가 있는 곳에서 헬기를 타는 것. 하지만 일행이 빅토리아를 찾았던 날에도 이민선들을 절벽에 내리 꽂았던 그 바람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배는 운행이 전면 중단됐지만, 다행이 헬리콥터는 웬만한 악천후에도 끄덕 없단다. 출발하기 전에는 성호경까지 그으며 두려워하던 사람들은 내리고 나서 10여분의 비행이 너무 짧다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너무 멋져서 비현실적인 그런 경험. 그래서 모두들 어리벙벙한 표정이다.

12사도에서 불과 몇분 거리에 위치한 ‘로치 아드 고지(Loch Ard Gorge)’는 1878년 ‘로치 아드’호가 난파된 곳이다. 계곡처럼 내륙쪽으로 깊숙이 파인 해안선은 작은 만을 형성하고 있다. 둥글게 파여 들어온 계곡의 가장 안쪽은 부드러운 모래가 최적의 해수욕장을 형성하고 있고 그 뒤에는 시커먼 동굴이 비밀요새인양 엉큼하게 들어서 있다.

한여름인데도 만만치 않은 바람에 추위를 느끼는 참인데 신혼부부 한쌍과 파란 드레스, 검은 정장을 세트로 맞춰 입은 들러리 친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손에 쥔 노란 해바라기가 파란 하늘, 파란 드레스를 배경으로 눈부시게 하늘거린다.

난파된 배들이 생존자 없이 한꺼번에 수장되곤 했던 것에 비해 로치 아드 호는 18세의 선원 톰(Tom)과 가족과 함께 여행 중이던 18세의 소녀 에바(Eva)라는 두 명의 생존자를 남겼다. 톰은 목숨을 걸고 에바를 구해냈지만 그 후 둘 사이에는 아무런 ‘사건·사고’도 일어나지 않아 영화 타이타닉의 러브스토리를 비껴갔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은 공연되고 있다.

아치형으로 이루어진 실제의 런던 브리지를 닮았던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는 이제 새로운 이름을 찾아야 할 모양이다. 몇해전 아치를 이루던 윗부분이 무너져 내리면서 다리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당시 그 곳에 올라가 있던 관광객들을 헬기를 동원해 인명피해 없이 모두 구출됐고, 무너지기 이전의 사진들만 순식간에 희소가치를 얻었다.

빅토리아주의 남쪽 해안에서 사라진 배는 무려 700여척, 그 중에서도 ‘난파선의 해안’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왈남불, 포트 캠벨 인근의 바다에서 가라앉은 배가 163척이다. 작은 도시 왈남불(Warrnambool)에는 그 배들이 남긴 잔해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해양 박물관(Flagstaff Hill Maritime Museum & Village)이 건설됐다.

건물 뒤편 언덕에는 우리의 민속촌처럼 1800년대 당시의 항구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빌리지가 비스듬히 자리잡고 있다. 레스토랑, 은행, 선착장, 교회, 배 등이 실제와 같은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고 사람들이 당시의 생활도구를 제작해 보이기도 한다.

글·사진=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호주빅토리아주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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