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바라의 상징인 시마바라 성은 1691년 축조된 성이다. 일본의 여러 성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는 매화로 둘러싸인 시마바라성은 일본 성 특유의 비둘기색 누각과 흰색 벽면이 인상적인 편이다.

박물관으로 쓰이는 천수각에는 천주교 전래사를 보여주는 1층에서부터 서양전래 문물관, 향토자료관, 민속전, 전망대로 구성돼 있다. 5층 전망대에서 동쪽으로는 과거 시마바라 시의 다운타운이었던 시마바라 역과 통통배가 띄어져 있는 바다가, 서쪽으로는 운젠이 보인다. 날씨가 흐렸던 탓에 아쉽게도 운젠의 후켄다케와 헤이세이신잔의 장관을 볼 수 없었지만 시마바라의 경관을 보는 데 부족함은 없다.

이 밖에도 시마바라 성내에는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평화 기념상을 만든 조각가 기타무라 세이부오 기념관과 그의 작품들이 곳곳에 진열돼 있다.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

1792년 화산 폭발이 인해 지각변동이 있는 이후 일일 4만 톤의 깨끗한 지하수가 나오고 있어서 시마바라 시내의 수질은 깨끗하고 식음도 가능하다고 한다. 시마바라의 깨끗한 수질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이다.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은 말 그대로 폭이 2m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운하에 잉어를 방목해 놓고 있다. 잉어들이 이 곳을 벗어나지 않도록 마을 어귀 무렵 그물을 쳐놓았을 뿐 잉어들이 마을 내에서 마음껏 유영(遊泳)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작은 운하는 물이 맑은데다가 수심이 낮아 잉어의 화려한 무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잉어의 먹이를 주기 때문에 혹여 물이 오염되지 않았을까하는 걱정이 언뜻 들지만 이는 단지 기우일 뿐이다. 수질이 좋은 이유는 물이 흐르고 있는 탓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물을 정화하고 있다고 한다.

무사마을

옛 무사들의 집을 복원해 놓은 무사마을은 몇 채의 집을 개방해 놓았다. 가히 작은 민속촌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의 특이한 점은 쭉 뻗어 있는 개울이다.

물이 깨끗한 시마바라답게 개울물을 식수로 사용해도 무방해 보이지만 상수도가 들어온 이후에는 이 공동 개울은 더 이상 식수로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시마바라의 향토음식

시마바라에서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으로는 구조니와 칸자라시가 대표적이다. 구조니는 시마바라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남은 떡과 야채를 이용해 만든 음식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어묵과 닭고기로 국물 맛을 우려낸 다음 찹쌀 경단을 살짝 끓여낸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시원하고 조청 국물에 찹쌀 경단을 띄운 칸자라시도 시마바라의 주요 관광지에서 맛볼 수 있다.

시마바라 글=임송희 기자 saesongi@traveltimes.co.kr
취재 협조=나가사키 현 서울사무소 02-399-2190

■ 화산폭발 자료관

일본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목욕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온천 여행이 가능한 천혜의 혜택 뒤에는 화산이라는 반갑지 않은 복병이 숨어 있다.

은근한 향내가 퍼지고 있는 화산 폭발 자료관은 죽은 자를 위한 위령탑이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곳은 화산 폭발의 참상을 담담하게 전해준다. 화산재로 반 이상 잠겨버린 집터, 쓰러진 전봇대와 자동차, 2층 내지 3층의 다락방까지 올라온 지반 등이 당시의 참상을 전해 준다. 관광객이 많이 집어가서 지금은 별로 없다고 하지만 소실 가옥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화산암 역시 역사의 상흔처럼 보인다.

시마바라 반도는 근대에 이르러서도 2차례의 화산 폭발을 겪은 바 있다. 1792년 화산 폭발에 이어 그로부터 200년 후인 1991년(평성 4년)에도 화산 폭발이 있었다. 이로 인해 4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218동이 소실되고 1만1,000여 세대가 집을 잃었던 대규모 참사였다.

인간은 자연의 횡포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지만 시마바라 사람들은 전국에서 모금한 돈으로 피해를 입은 그 자리에 화산 폭발 자료관을 세웠다. 지진과 화산 폭발이라는 엄청난 자연 재해 앞에 노출되온 일본인들의 강인한 정신력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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