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수족관이라는 오사카 해유관(海遊官)에서의 일이다. 한 떼의 고기와 함께 움직이던 눈동자는 착각에, 나는 환상에 빠지고 말았다.

어디 해유관 뿐일까. 당신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 수많은 것들이 오사카와 고베 곳곳에 숨겨져 있다. 스스로를 감상(感想)에만 가둔다면 그때부터 환상여행은 시작된다.

‘물을 보지 않은 날은 없었다. 강이건 바다건. 물은 햇빛에 반사돼 은빛으로 반짝였고, 화려한 반짝임은 눈을 타게 했다. 사물이 검어졌다. 오사카성의 피지 못한 벚나무도, 고베 항의 커다란 유람선도 검게 물들었다. 눈은 밝음과 어두움으로 세상을 나누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심해로 빠지는가 하면, 번화가를 거닐고, 유럽의 어딘가를 배회하기도 했다. 깨어나지 않았다면, 앨리스가 되어 그곳을 헤맸을 터였다.

심지어는 태평양 한 가운데에 놓여졌다. 가오리가 눈을 정면으로 맞추며 지나가더니, 조그만 고기떼가 머리 위를 질주한다. 상어 한 마리가 뒤를 따르고, 이름도 모르는 각종 바다 생물들이 엉금엉금 발 아래를 긴다. 이대로 있다가는 몸뚱아리 전체를 그들에게 내어 줄 것만 같은데.

꽃잎으로 뒤덮일 오사카

꽃눈이 휘날리는 4월이 되면 오사카성은 꽃잎으로 뒤덮인다. 사람들은 봄에 내리는 눈을 맞으러 오사카성을 찾고, 성은 환상의 나들이 장소를 제공한다. 4월은 얼마 남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을 기념해 지은 오사카성은 도심 속 공원이며 최적의 나들이 장소다. 오사카 시민들은 자신들의 희망과 같은 성을 지키기 위해 성 주변에 인공의 강을 만들었으며, 주변 시내 건물의 고도를 제한했다. 그리하여 성에서는 오사카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됐다.

막 따뜻해지기 시작한 햇살을 받으러 모인 이들은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기를 나누며 군것질을 해댄다. 그들은 단지 나들이를 할 뿐, 문화재 답사따위를 운운하지 않았다. 여유로운 낮 시간을 오사카성에서 보낼 뿐.

그렇다면 오사카의 밤은 어떻게 즐길 것인가. 일단 오사카 최대의 쇼핑 거리인 신사이바시를 거닌다. 상가와 백화점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정신을 놓으면 어마어마한 돈을 쓰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눈으로 즐기는 것에 일단 만족이다.

신사이바시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오사카 최대의 유흥가인 도톤보리다. 다리 위, 삼삼오오 모인 예쁘장한 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자들을 유심히도 바라본다. 시쳇말로 무도회장으로 안내하는 삐끼는 아닌 듯 한데. 이들의 정체는 도심 속의 사냥꾼, 일명 난파였다. 짐승을 사냥하려거든 산으로 가고, 여자를 사냥하려거든 도톤보리의 다리 위로 모이라 했던가.

이러한 도톤보리의 거리에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집이 있다. 북 치는 피에로 상이 인상적인 구이다오레는 유일을 강조하며 체인점조차 내지 않은 오래된 음식점이다. 사람들은 창업자의 얼굴을 본 따 만든 피에로 앞에서 사진을 찍고, 피에로가 달린 휴대폰 줄을 사 간다.

골목 안을 돌아 자리한 부동존 역시 색다른 볼거리다. 물 두 바가지를 불상에 끼얹고 옆의 팥죽 집에서 팥죽 한 그릇을 먹으면 행복해 진다 하니, 지나칠 것이 없다.

일본 속의 유럽-고베

여태껏 그리 알아왔듯이 일본은 섬나라였다. 헌데 비행기가 아닌 버스에서 내린 곳, 내가 서 있는 곳은 일본이 아니었다. 또 다시 착각이고 환상인가.

서구인들은 외항이 형성된 고베를 100여년 전부터 들락댔다. 그들은 살 집이 필요했고, 고베 북부 산이 있는 곳에 부락을 형성했다. 높은 곳에 지은 집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정말 좋았다. 여가로는 그만인 골프를 쳐야 했고, 그러자면 필드가 필요했다. 100여년도 훨씬 전에 고베에는 골프장이 생겼다.

영국인, 독일인,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흰 피부에 파란 눈을 지닌 그들이 일본인에게는 이상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곳을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인관, 異人館)이라 불렀다.

이상한 사람들이 다 떠나 텅 빈 집을 지금은 손님들이 채운다. 그들의 거실과 침실을 구경하고, 정원도 구경한다. 골목을 돌아 다른 집을 가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 이인관은 일본 속의 유럽이다.

소학교를 개조해 만든 양과점과 맛있기로 소문난 고베의 쇠고기 집도 들러 볼만하다.
이상한 사람들이 드나들던 항구는 고베의 남쪽이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바다에 정박해 있는 유람선의 풍경, 이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평화롭다.

항구 주변 공원에는 일본 최초의 영화관이 자리했다. 명치 29년, 1896년의 일이다. 커다란 돌멩이를 뻥 뚫어 놓은 스크린에, 의자라고는 조그만 돌멩이를 바닥에 박아 놓은 게 전부다. 영화 고인돌 플린스톤에나 나옴 직한 모습에 ‘메이지 시대?’ 하고 물음표를 그린다.

어찌 되었건, 일본 최초의 영화관이 자리한 공원의 이름은 메이켄이다. 일본인의 입을 거친 아메리칸이라 한다.
메이켄 공원 바로 옆에는 1995년 당시 고베 지진의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메모리얼 파크가 자리했다. 복구하지 않은 것은 일부지만, 당시의 참사는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평화로운 항구의 모습이 거짓인 듯하다.

오사카=이진경 객원기자 jingy21@hanmail.net
취재협조 : 대한항공 02-1588-2001, 린카이 02-319-5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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