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와지시마

고베 대지진의 아픔이 전세계를 뒤흔든 것이 엊그제 같다. 인간은 자연의 큰 힘 앞에서 무력했고 그저 당할 밖에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아와지시마 지진박물관의 안내원은 ‘평소에 마음을 곱게 쓰고 살라’고 한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도 커다란 재앙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며.

아이러니하게도 고베 대지진 이후 도시는 더욱 튼튼해졌고 사람들은 여유를 갖게 됐다. 여유를 넘어서 평화롭기까지 한 지진의 진앙 아와지시마를 찾았다.

고베와 아와지시마를 잇는 아카시대교를 건넌다. 한국의 서해대교와 같이 아카시대교는 자체로도 볼거리다. 마스호노 사토에서라면 감동은 더하다.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큰 섬과 작은 섬을 잇는 다리를 바라보는 재미란. 허나 아와지시마의 평화로움에 비하면 맛보기에 불과했다.

‘이렇게 평화로운 마을이!’
아와지하나사지키, 일명 꽃의 언덕에 서서 탄성을 뱉었다. 저 멀리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봄을 맞아 얼굴을 내민 꽃들, 푸릇푸릇 싹을 돋아낸 밭, 정지한 듯 흐르며 반짝이는 바다. 산책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가볍고 향기롭다. 누구든 풍경에 묻히자면 여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지진의 진앙이 있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리도 평화로운 마을에서 그리도 엄청난 일이 시작됐다니. 보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당시의 일을 잊지 않았다.

만화에서나 나오는 과장된 사실이라 생각했다. 살아오며 느낀 지진이라고는 그저 땅이 가볍게 요동해 ‘흔들렸구나’ 하는 정도였다. 땅이 갈라지고 그곳에 선 모든 것들이 어긋난다는 것이 어디 상상으로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었던 일이지만 고베 대지진은 그랬다.

지진박물관은 지진 당시 어긋난 땅 140m를 복구하지 않고 세운 박물관이다. 당시의 참사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진이 발생하는 원리, 일본 지진의 역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계해 교육적인 효과를 높였다.

도쿠시마

비가 좀 온다 하면 범람하기 일쑤인 강가에서 논농사를 하기에는 너무나 벅찼다. 다른 작물의 농사를 궁리하던 도쿠시마의 농민들은 옷을 만드는 작물이 환경에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물이 생산되자 따라서 기모노를 만드는 산업이 발전했고 많은 직물장인이 배출됐다. 기모노를 입고 춤을 추는 아와오도리의 문화는 요시노강과 함께 자연스레 형성됐다.

높은 둑을 방패로 삼은 강은 더 이상 범람하지 않는다. 잔디로 조성된 강 주변은 범람의 걱정은 커녕 마냥 뛰어 놀기에 딱 맞는 장소로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아와오도리는 도쿠시마를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로프웨이의 통유리 창가에 앉아 우동을 먹었다. 요시노강은 바다로 뻗었고 마을과 마을을 갈라 놓은 강에는 수많은 다리가 놓였다. 발 아래 언덕에는 동백이 발갛게 피었고 도쿠시마 시내는 강 그리고 바다와 함께 파랗게 물들었다.

로프웨이에서 케이블카로 이동하면 아와오도리 체험관이다. 발과 손을 엇갈리게 해 추는 아와오도리는 단순한 듯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춤이다. 박자를 한 번만 놓쳐도 따라 가기가 힘들다. 나의 춤 감각이 떨어지는 겐가.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나게 추는 춤을 구경할 때는 어깨까지 들썩였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쑥스러움에 더딘 몸 동작에 얼굴까지 화끈거린다. 헌데 그 옛날에는 춤이라는 것을 천박하게 여겨 쑥스러워 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한다.

아와오도리를 추는 남자들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한국의 개다리 춤과 유사한 남성용 아와오도리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진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웃음을 참으려면 마음속으로 애국가라도 불러야 할 듯.

매년 8월,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아와오도리 축제가 도쿠시마에서 열린다.
아와오도리를 만들어낸 요시노강의 유람선에 올랐다. 유람선을 타고 한가로이 흐르는 물을 감상하는 멋진 포즈는 제발 상상하지 말라.

물은 더럽고 유람선은 형편없으며 햇볕은 따갑다. 역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상책이란 말인가. 지나는 이들마다 반갑게 손을 흔들고 웃어주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도쿠시마의 사람들은 물보다 더 예쁘고 유람선보다 더 낭만적이다.

아와오도리를 체험하고 요시노강을 보았으니, 도쿠시마의 여정은 끝인가. 대답은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아기자기하고 조그마했다면 이제는 웅장한 볼거리가 남았다.

일본이 루브르미술관을 통째로 도쿠시마로 옮긴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 유명한 포카리스웨트를 만든 오츠카 사의 회장이 세운 미술관이라니 혐의는 더욱 짙다. 무슨 소리냐고 하시는 분들, 아무 말 않고 오츠카미술관으로 가보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또한 그러하지 못한 분들이 계시니 내막을 설명하겠다.

오츠카미술관에는 1,070점이나 되는 세계 유명의 미술 작품들이 들어차 있다. 다녀간 이들의 낙서까지 그대로 재현해 가짜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그런 작품들은 그저 놀랍고 놀라울 뿐. 게다가 만져보는 것까지 허용하며 자상히 배려한다. 그리고 느낀다. 가짜다.

육안으로는 절대 구별할 수 없는 진짜 같은 가짜 작품으로 미술관은 채워져 있다. 오츠카 사장은 자신의 고향인 도쿠시마를 위해 미술관을 세웠다 한다. 볼거리가 있으면 여행객이 찾을 테고 그러하면 도쿠시마는 당연히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단다. 미술관도 그의 생각도 놀랍다.

웅장하고 놀라운 볼거리 하나 더. 태평양과 세토내해가 만나는 바다에서는 날마다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만조, 간조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자연현상으로 너무나 거센 바다의 흐름은 아찔하기만 하다.

위로 차가 다니는 다리, 우즈노미치에서 조그맣게 뚫어놓은 유리 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심장이 졸아든다. 그리하여 모두들 창을 밟지 않고 피해가지만 진정한 묘미는 그 위에 서보는 것. 빨아들일 것만 같은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와지시마 글·사진=이진경 jingy21@hanmail.net
취재협조=대한항공 02-1588-2001 린카이 02-319-5876

여행메모
인천~간사이공항 간 대한항공이 하루 3회 운행된다. 간사이 공항에서 차나 배를 이용해 오사카, 고베, 아와지시마, 도쿠시마를 갈 수 있다.
JR은 도쿠시마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고토쿠혼센, 서쪽으로 도쿠시마혼센, 남쪽으로 무기센이 뻗어있다. 도쿠시마 역 앞의 버스터미널에서 시내,외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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