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요 항공사들이 여행사에 지급하던 항공권 발권 대행 수수료를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에서도 이를 둘러싼 관심이 다시 한 번 고조되고 있다.

한국 여행업계의 시장 구조 및 특성상 당장 미국에서와 같은 ‘수수료 제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강 건너 불’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사안임에 틀림없다.

■ 피할 수 없는 대세의 결말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여행사에 10% 이상의 수수료를 지급해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항공권 판매 과정에서의 여행사 역할은 지속적으로 축소돼 왔고 그만큼 수수료도 하락했다. 앞으로도 추가 하락의 여지는 많이 남아 있으며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생각한다.”

모 항공사 지점장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표현했던 항공권 판매 수수료율 하락 추세의 최종 단계가 지난달 중순 결국 미국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수수료 전면 폐지 조치다.

지난달 14일 델타항공이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 여행사를 통해 발권되는 항공권 판매분에 대해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뒤 다른 주요 항공사들도 차례대로 델타항공의 뒤를 따랐다.

18일에는 아메리칸항공과 컨티넨탈항공이 같은 결정을 내림으로써 커미션 제로 시대의 도래에 힘을 실었고 이 때까지 확실한 입장 표명을 거부했던 노스웨스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도 결국에는 수수료 폐지 대열에 합류했다. 이로써 미국의 주요 5대 항공사는 수수료 전면 폐지라는 ‘합작품’을 완성시키게 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미국 및 캐나다 지역 여행사들의 반발 또한 만만치는 않다. 전미여행업협회(ASTA)는 항공사들의 수수료 폐지 결정에 대해 “여행업계를 분열시키는 행위이며 항공권 유통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부 업체들은 주요 공항에서 비판 시위까지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델타항공을 비롯한 수수료 전면 폐지에 동참한 항공사들은 “기술의 진보는 항공권 배포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전자 티켓(e-Ticket)과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으로 소비자들은 직접 항공권을 선택하고 구입하고 전달받을 수 있게 됐으며 비용 또한 전통적인 방식보다 훨씬 낮다”며 수수료 폐지의 정당함을 설명하고 있다.

바로 항공사가 부담하는 수수료 비용의 절감이 이번 결정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것이다. 만약 미국의 주요 8개 항공사가 수수료를 폐지한다면 연간 약 10억 달러 규모의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 외국의 얘기일 뿐인가?

미국 주요 항공사들의 수수료 폐지 조치를 바라보는 한국 여행업계의 심정은 그다지 착잡하거나 심각하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그저 바다 건너 먼 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십거리’ 정도로 밖에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국의 항공권 유통 채널 및 구조가 미국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수수료 폐지는 결국 여행사와의 협력관계 혹은 동반자 관계의 중단을 의미하는데 한국의 여행사는 항공사로부터 ‘절교’ 당할 정도로 무력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배경이다. 현재 양 국적 항공사의 경우 여행사를 통한 항공권 판매 비율이 70∼80%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항공사 입장에서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원활한 영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또 델타항공 등의 수수료 전면 폐지 조치에는 ‘인센티브 수수료’ 지급이라는 단서를 달고 여행사와의 연결고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 여행업계에 미치는 심리적 파고를 낮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도 이미 미국의 여행업계가 걸었던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995년 델타항공을 필두로 미국의 항공사들이 본격적으로 수수료율 조정에 나선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수수료 전면 폐지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여행사가 항공권 판매의 70∼80%를 차지한다고 느긋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미국의 여행사들 역시 전체 항공권 판매물량의 50%를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결코 느긋한 상황은 아니다”라는 업계 한 종사자의 언급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항공사들이 할인혜택과 유통채널 다양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터넷 판매 강화에 나서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불안요소’다.

비록 항공사들은 “항공사 카운터로 몰리는 수요를 인터넷으로 전환하기 위한 것일 뿐 여행사의 수요를 인터넷으로 끌어오려는 게 아니다”라며 여행사의 반발을 무마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인터넷 보급 및 확대 속도 등을 감안하면 결국엔 여행사 수요까지 인터넷으로 향할 것이란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여행사의 비중이 줄어들면 들수록 항공사들의 ‘행동’ 결정 시기도 앞당겨 지는 것이다.

모 항공관련 단체 관계자는 “지난해 말 ATR발권 대리점에 대해서만 수수료율을 7%로 하향 조정했지만 원래는 BSP발권 여행사에 대해서는 7%를, ATR발권 여행사에 대해서는 5%를 적용하기로 국내취항 항공사들이 의견을 모았었다”며 “결국 9·11 테러사건으로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안정된 만큼 언제라도 그와 같은 조치가 내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항공사들이 어느 정도로 수수료율 인하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지 암시하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직접적인 수수료율 인하 조치보다는 신용카드 수수료 분담이라는 간접적인 방안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항공사들의 내부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는 실정이다. 신용카드를 통한 항공권 판매의 경우 여행사가 지급받는 항공권 판매 수수료만큼 여행사가 신용카드 수수료를 부담하도록 한다는 것이 신용카드 수수료 분담설의 골자다 <3월4일자 커버스토리 보도>.

이와 같은 상황을 두고 볼 때 현재 미국의 여행업계가 처한 현실은 결코 남의 얘기라고 할 수 없다. 시기상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한국에도 이와 똑같은, 혹은 비슷한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항공권 판매는 수입의 원천이라기보다는 수입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마인드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꾸준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이유이다.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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