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라…. 거리 상으로도 시간상으로도 결코 만만치는 않은 여정이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시작해 오리건주를 거쳐 캘리포니아주에 이르는 대장정이니 말이다.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무려 1,200마일(1,920km)에 이르니 그저 팍팍하달 수밖에.

자연이라는 이름의 징검다리

하루 평균 예닐곱 시간 씩 이어지는 버스 이동시간이 애초 겁먹은 만큼 지겹거나 고되지는 않다. 자신 밖 외부의 세상을 그저 물끄러미 관망하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다하는 방관자의 허락된 게으름이리라. 그렇지만 파노라마 영상처럼 펼쳐지는 차창 밖 매혹적인 풍경은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때로는 호쾌하고, 때로는 아기자기한 그 산이며 바다며 호수가 주는 감흥은 각다분한 일상의 틀에 쌓인 묵은 더께를 걷어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 기다림의 끝자락에 찾아올 대자연의 향연도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드니 지루함이나 고됨은 더욱 더 먼발치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여행은 하면할수록 사람마다 각기다른 기호를 갖게한다.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곳을 편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어떻게든 현대문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시애틀∼포틀랜드∼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지는 ‘환상의 시애틀 코스트’는 양측 모두에게 상당한 공통분모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다.

시끌벅적, 휘황찬란한 미국 서부의 주요 4대 도시를 두루 아우르면서 동시에 인간에겐 그저 경이로울 수밖에 없는 대자연의 품에도 깊숙하게 파고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와 자연, 그 사이에 내가 설 수 있는 것이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징검다리는 바로 산과 바다와 호수다. 그 수많은 징검다리 하나 하나가 가슴속으로 알알이 파고들지만, 그 중에서도 올림픽 국립공원, 오리건 코스트, 레드우드 국립공원이 주는감동의 스펙트럼은 다채롭고 화려하다.

올림픽 산맥, 알프스를 닮았다!

유람선 뒤로 아득히 멀어져 가는 시애틀을 바라보면서 느낀 아쉬움을 제일 먼저 달래주는 것은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이다.

올림픽 국립공원은 워싱턴주의 서부 태평양 연안을 지긋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올림픽 산맥 줄기에 들어서 있으며, 그 안에는 울창한 우림과 드넓은 호수,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고봉들이 들어서 있다. 운이 좋으면 사슴 등 야생동물들도 목격할 수도 있다.

최고봉인 올림푸스산(2,428m)의 정상에는 ‘허리케인 릿지’라는 전망대가 있는데 관광객들은 이곳에 들러 눈으로 뒤덮인 순백의 숲은 물론 저 멀리 아스라하게 펼쳐지는 짙푸른 태평양과 오밀조밀한 인근의 도시들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흡사 알프스 봉우리 중 하나에 오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시야가 맑고 넓다.

순백의 눈꽃들이 퉁겨내는 햇빛에 눈이 부신 것도 비슷하다. 정상까지 이르는 길목 또한 길옆으로 주르륵 늘어선 고깔 모양의 전나무들이 호위하듯 이방인을 반겨 주니 그 감동이 정상에서의 경관 못지 않게 싱그럽다.

오리건 코스트, 거침없이 질주한다!

올림픽 공원에 이어 감동의 프리즘에 색 띠 하나를 보태는 것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해안도로다. 미국의 101번 고속도로는 오리건 주에 이르러서는 주로 해안가를 따라서 질주하는데 바다와 바로 인접하고 있어 그야말로 절경이다. ‘오리건 코스트(Oregon Coast)’라는 고유명사까지 탄생시켰을 정도다.

왕복 2차선 해안도로는 탁 트인 태평양보다 더 후련하게 뚫려 막힘이라곤 전혀 없고, 수도 없이 마주치는 아찔한 절벽과 기암괴석들, 금빛해변, 한가로이 떠 있는 외딴 섬과 한갓진 어촌마을들이 흐리멍덩한 마음 속 탁류를 말끔하게 여과시킨다.

오리건 코스트의 하이라이트는 링컨시티(Lincoln City)에서 쿠스배이(Coos Bay)까지로, 별다른 장애물 없이 해안도로 질주의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다. 곳곳에 뷰포인트도 마련돼 있어 한 숨 돌리고 기념 촬영하기에도 제격이다. 또 수 천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살고 있는 자연 동굴(Sea Lion Caves)도 만날 수 있는데 지하 62m(208ft.)까지 내려가는 암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감상할 수 있다.

레드우드 국립공원, 태고의 신비가 숨쉰다!

해안도로의 바통을 이어 받는 것은 굵고 높은 삼나무 병정들의 열병식이다. 바로 지난 1980년에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레드우드 국립공원(Redwood National Park)이다. 이곳에는 추정수령이 무려 수천년에 이르는 삼나무에서부터 세계 최고 높이의 ‘빅 트리(Big Tree, 92.6m)’, 950년 전부터 대홍수와 벼락, 화재에도 꿋꿋이 버틴 ‘불멸의 나무(The Immortal Tree)’, 어른 열댓 명이 손을 이어 잡아도 모자랄 정도로 굵은 삼나무들을 무더기로 만날 수 있다.

마치 삼나무들의 열병식에라도 참석한 듯 하다. 곳곳에 마련된 산책로에 들어가 보면 마치 거인국에라도 들어 온 듯 삼나무의 높이와 굵기, 거대함에 압도당하고 만다. 어떤 나무들은 자동차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미국의 유명 작가인 빌 브라이슨이 그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 도전기를 담은 ‘나를 부르는 숲’에서 표현한 대자연에 대한 감탄과 경외감에도 쉽게 공감하게 된다. 수 천년 전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삼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잃어버린 줄 알았던 태고의 신비가 스스로 몸 속을 파고든다.

미국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취재협조=하나투어 02-212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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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경험, 샌듄!

모래벼랑 끝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멈춰 선다. 아슬아슬하다. 20인승 대형 지프에 탄 일행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 숨을 토해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듯한 표정들이다. 여기서 털끝만큼이라도 앞으로 나간다면 곧바로 벼랑 밑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이다. 나이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금발 구레나룻을 덥수룩하게 기른 젊은 운전사는 힐끔 뒤를 쳐다본다. 입가엔 다소 비열한 느낌의 미소가 가득하다.

뭔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분위기다. 아니나 다를까 꽉 잡으라는 말을 내뱉으며 주저 없이 허공을 향해 돌진한다. “으∼악” 여기저기서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툭툭 터져 나온다. 겁만 주려는 줄 알았는데 그냥 벼랑으로 곤두박질 치다니 장난이 아니다.
여정 도중 이런 저런 재미를 만날 수 있지만 해안도로 질주 끝 무렵에 즐기는 ‘샌듄 프론티어(Sand Dune Frontier)’는 매우 생소한 만큼이나 즐겁다. 샌듄은 바람과 해수의 영향으로 형성된 해안가의 드넓은 사구 지대를 전용차량을 이용해 즐기는 코스다.

1인승, 5인승, 20인승 차량에 몸을 맡기고 크고 작은 모래 언덕을 오르내리거나, 해변의 사막을 거침없이 질주하다보면 놀이공원에라도 온 듯 심신이 가뿐해진다.

모래언덕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전남 신안군의 우이섬에도 이와 비슷한 사구가 있기는 하지만 규모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바다 내음 가득한 모래바람에 모자가 날아가기도 하고 눈에 모래가루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연신 터지는 경쾌한 비명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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