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태국의 아란야프라텟. 국경도시답게 유동인구가 상당한 이 도시는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굴하지 않는다는 듯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활기차다.

정글 속의 은둔자, 앙코르로 향하기 위해 캄보디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국경도시로 향한다. 비자 발급 등 캄보디아로 입국하기 위해 출입국사무소로, 혹은 그늘집으로 삼삼오오 모여든 여행객들은 태국 국경과 맞닿아 있는 캄보디아 국경도시 포페이를 부럽게 넘어본다.

출입국을 위해 여행객(주로 배낭여행객)이 한데 몰려 있는 태국의 아란야프라텟에서 바라볼 때 캄보디아의 국경도시 포페이는 비교적 한가로워 보인다. 오후 5시면 국경의 문이 닫히는 탓에 국경을 오가는 두 국가주민의 발걸음이 더욱 바빠진다.

태국에서 캄보디아까지를 육로로 이동하는 경우 포페이에서 앙코르의 관문 씨엠립까지는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현재 캄보디아는 도로정비사업이 한창으로 올 겨울 무렵에는 이 시간이 2시간 내외로 단축될 것이라고 한다. 비포장도로가 많은 편이지만 그다지 생경하지는 않다. 비포장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기분은 어린 시절 첩첩산중 시골길을 걸었던 그 느낌이랑 별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건조한 주위 풍경을 지나 확 트인 시내,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시야에 들어오고 입성 좋은 아이들을 보면서 씨엠립에 도착했음을 실감한다. 이 곳은 캄보디아 국경도시 포페이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씨엠립은 프놈펜, 바탕통에 이어 세 번 째로 큰 도시며, 인구 8만의 큰 도시로 앙코르의 관문이다. 또한 최근에는 신호등이 생기고 관광용 대형버스에 대한 시내 통행 규제도 사라지는 등 앙코르 관광정책에 대한 탄력적 분위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앙코르의 관문, 씨엠립

씨엠립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태국을 물리치다’라는 의미가 주로 통용된다. 이 이름은 크메르 왕조의 수도였던 씨엠립에서 태국과의 격전이 많았던 역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앙코르로 들어가는 관문 씨엠립은 최근 이전이냐 확충이냐를 논의 중인 씨엠립 국제 공항이 위치해 있는 등 세계적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관광도시로서의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씨엠립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자다. 자야바르만 7세. 앙코르 톰을 건설한 크메르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앙코르 톰을 건설했지만 치세를 이룬 왕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대규모 역사(役事)를 시행하면서 국력을 많이 손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씨엠립과 앙코르 와트에서 그의 존재감은 뚜렷해 보인다. 그의 이름을 딴 어린이 자선병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의 두상은 관광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 밖에도 씨엠립 근처의 밀림인 나포돔은 안젤리나 졸리가 찍은 블록버스터 영화 ‘툼 레이더’ 촬영 현장이 있는 등 관광도시로서도 잘 알려져 있어 최근들어 새로운 관광코스로 추가되고 있다.

앙코르 와트

앙코르 와트는 앙코르 지역에 있는 여러 사원을 통칭하는 말로 지칭된다. 정확하게는 앙코르 혹은 앙코르 유적지가 바른 표기가 된다.

앙코르는 10세기경 이 지역에서 번성했던 크메르 왕조의 수도였다. 크메르 왕조는 5세기 반에 걸쳐 동남아시아 최대의 국가를 형성하며 수도인 앙코르에는 100만명이 거주하는 등 크게 번성했었으나 15세기경 태국의 침공 이후 밀림 속에 숨겨져 세속인들의 눈에 잊혀졌었다.

앙코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뜻이며, 동시에 이 지역의 옛 이름이다. 와트는 사원을 의미한다. 앙코르 유적지는 몇 개의 유적지로 나뉜다. 유명한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이 대표적인 유적지.

앙코르 와트가 건축될 당시 캄보디아는 힌두교 국가로 앙코르 와트는 힌두교의 주요 신 가운데 하나인 비슈뉴에게 바쳐진 사원으로 축조된 건물이다. 이처럼 힌두교의 여러 상징들이 앙코르 유적지에 내포돼 있다. 앙코르 와트는 다른 건축물과는 달리 유일하게 서쪽을 향해 있어 앙코르 와트가 왕의 무덤일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에 비해 규모 면에서 앙코르 와트의 그것을 넘어서는 앙코르 톰은 유일한 불교사원이다.

앙코르 유적지 사원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데 건축물에 휘감고 있는 사상과 구성은 철저히 힌두이즘에 의거한다는 것이다. 건축물들은 천상계, 인간계, 미물계 3단으로 구성돼 있는 것 역시 힌두이즘에서 비롯된 것.

중앙사원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이 공간은 철저하게 신을 위한 공간이라는 설명을 들었던 까닭에 자칫 발을 헛딛게 되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듯한 가파른 계단에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한다. “신이라면 계단도 필요 없지 않는 것 아닌가.”

또한 크메르 왕조 시대 건축물의 특징으로는 중앙 사원을 중심으로 하며 그 다음은 왕궁이, 마지막 주변이 일반인들이 사는 곳으로 구성된다. 또한 앙코르 와트 주변은 연못에 둘러싸여 있는데 적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일본의 여러 성과 비슷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앙코르의 건축양식은 10세기 전후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건축 주재료는 나무. 열대지방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적갈색토인 라테라이트, 사암. 전반기에는 벽돌을 주재료로 한 전탑이 대중을 이루며, 이후에는 사암으로 돌을 그대로 쌓아올려 좀더 견고한 건축양식을 보인다.

앙코르 와트 내부의 여러 회랑들에서는 당시 크메르인들의 미술, 건축 등의 예술양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고대 인도 서사시인 ‘라마야나’를 차용한 부조가 감상 포인트.

이미 12세기 때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는 등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던 크메르 왕조가 역사 뒷켠으로 밀려난 것은 15세기 태국 침공 때문이었다. 이후 밀림에서 잠자고 있던 앙코르가 다시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세기 프랑스 인들에 의해서다. 1858년 발간된 <인도 차이나 여행>에서 저자인 샤를 에밀 부유보는 앙코르를 이렇게 표현했다.

“옛 도시 어디를 가나 폐허였다. 내가 앙코르에 와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은 캄보디아가 한 때 부강한 문명국이었으며, 또 지금보다 사람이 더 많이 살았던 제국이었단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국부는 사라졌고, 문명도 따라서 소명했다. 한때 장엄과 영광이 깃들였던 위대한 유적이 지금은 밀림 속에 버려져 황폐하게 된 광경을 보는 것처럼, 여행객에게 동경과 피곤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는 것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글·사진 = 임송희 기자 saesongi@traveltimes.co.kr
취재협조 = 오리엔트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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