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축제가 시작되었다.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매일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줄을 이으며 축제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문화 월드컵의 기치 아래 각종 공연과 전시회가 펼쳐지고 있다. 소문만 들어도 배가 부르다. 문화란 한 민족의 총체적 삶의 양식이라 한다. 우리의 의·식·주, 말과 행동, 역사와 비전이 모두 문화이고 가공 포장 여부에 따라 그 모든 것이 다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흔히 문화이벤트라고 하면 가장 한국적인 것을 내놓는 것만이 세계를 향한 우리의 문화행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일 사물놀이를 하고 판소리나 부채춤으로 손님을 대접했다. 다행히 월드컵을 계기로 뮤지컬 난타와 창극 등 다양한 공연물이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모았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우리 문화를 담았다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동남아산 제품이 더 자주 눈에 띄는 인사동 선물가게에 갈 때마다 '이토록 상상력이 빈약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역 앞에 있는 월드컵 기념품 판매장을 가보라. 상품의 조악함과 단순한 상품구색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램이다. 그런 바램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전문가들은 인프라 확충, 소프트웨어 개발, 국민의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꼭 필요한 얘기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아마도 우리 문화에 대한 상상력과 컨텐츠의 결여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도 그것을 상품화하는 전략이 부족했다.

최근 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칸은 어떤 곳인가? 누가 그 한적한 바닷가 시골과 대규모 국제 영화제가 어울린다고 생각했겠는가. 영화의 불모지였던 부산은 어떻게 성공적으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게 되었을까? 누군가 상상력을 가지고 그런 행사를 만드니까 칸과 부산이 영화의 도시가 된 것이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관광산업이 활성화되고 관광객들이 다시 찾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관광지를 하나 더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문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컨텐츠를 풍부하게 가꾸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내 CD롬 타이틀이 외국제품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은 프로그래밍 능력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이 분야의 승부는 단순한 프로그램 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문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창조력을 망라한 기획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그래서 첨단 정보매체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시되면서 컨텐츠웨어(contents ware)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최근 문화기술(CT; Cultural Technology)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화기술의 핵심도 따지고 보면 컨텐츠를 모으기(gathering)보다는 어떻게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만들어내는(producing)가에 달려 있다. 관광지 개발과 관광상품,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관광엽서나 기념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얼마나 기발한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된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21세기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은 창의력과 상상력, 도전정신이 핵심이라고 했다. 정책당국과 관광업계, 전문가들은 스스로 틀에 박힌 사고를 깨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분위기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월드컵의 열기를 이어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느냐 못하느냐는 독창성과 상상력, 그리고 꿈으로 가득찬 컨텐츠가 쏟아져 나올 수 있는 토대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채견구센터 연구원 serieco@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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