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아직도 ‘대한민국’ 이라는 네글자에 심장박동이 빨라질 정도다. 국민 대단결의 감동과 함께 한국이 월드컵의 진정한 승자라는 해외 언론들의 찬사까지 들었다.

하지만 한국이 관광산업은 그 환호와 열광의 대열에 끼지 못한 채 월드컵 마무리에 들어갔다. 최소 52만명의 관광객이 올 것이라는 예상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던 꿈은 일장춘몽이었음이 드러났고 손익을 대충 맞춘 끝에 겨우 예년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관광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던 2002 한일 월드컵이 너무나도 ‘조용히’ 막을 내린 그 간의 사정과 인바운드 여행사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월드컵과 한국관광을 결산했다.

티켓 없는 경기

2002한일 월드컵은 장외 싸움으로 시작됐다.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티켓을 이용한 여행사 상품 판매가 말썽을 일으키자 올해 경기부터 FIFA는 티켓 실명제와 티켓을 이용한 패키지 상품화 불가방침을 적용했다.

주최국으로 티켓에 대해 상당한 이점을 볼 것이라던 예측이 빗나가자 각 여행사들은 일찌감치 티켓 확보를 위한 물밑작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실명제가 흐지부지되고 당초 예상보다 중국관광객이 줄어들자 무리하게 티켓을 확보한 여행사들은 오히려 남는 티켓을 처분하느라 곤란을 겪어야 했다.

문제는 여행사를 배제한 엄격한 티켓 정책이 인바운드 여행사들의 활동을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티켓을 확보하지 못한 여행사들은 자체적인 유치 활동을 포기하고 중국 여행사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졌다.

팀워크, 패스가 약했다

월드컵을 맞아 여행사와 호텔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월드컵공식 숙박사업단인 바이롬에게 최대 70%까지 객실 블록을 제공했던 대부분의 특급 호텔들은 바이롬이 4월말에 최종적으로 블록을 해지할 때까지 여행사 블록 배정 불가 방침을 고수했었다. 가격상승을 주도하는 호텔들의 ‘혼자만 실속 차리기’에 대한 여행사들의 반감은 ‘배신감’을 넘어 체념에 가까워졌다.

단체 요금을 받지 못해 체재비가 배 이상 상승하자 여행사들은 가격을 맞추기 위해 외각 지역이나 관광호텔 위주로 객실을 확보했고 행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중국 단체 중에는 숙박시설에 대한 불만으로 공항에서 시위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국가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스타 플레이어가 없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한국관광산업은 스타가 없는 설움을 톡톡히당했다. 대형 팀을 미끼로 여러 여행사에 접근해 오는 해외 바이어들을 잡기 위해 출혈경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고, 영세한 규모 때문에 주도권을 잡지도 못했다. 결국 접대비만 쏟아 붓고도 단체는 저가 여행사에 넘어가는 경우가 흔했다.

관계자는 “나름대로 일정을 짜서 견적을 넣어도 그 견적을 다 무시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너희들이 뭔데 우리들의 여행을 결정하느냐’는 태도였다. 여행사끼리 논의를 통해 가격하락에 대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라도 정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막상 해외에서 단체를 보내려 해도 신용와 지명도가 높은 한국 여행사를 구별할 수 없어 랜드나 아웃바운드 여행사를 통해 몇 단계를 거쳐 문의가 들어오는 등 혼선이 많았다.

자살골이 웬말인가?

중국의 경우 유치 인원이 예상보다 적자 막바지에는 처음 견적의 50%까지 가격이 내려같을 정도로 상호 경쟁이 심했다. 중국여행사의 킥백(kickback·뒷돈) 요구가 확산될 만큼 시장상황은 혼탁해졌다. 게다가 실적 중심으로 움직이는 지자체들이 각국 대표팀의 전지캠프 유치를 위해 무료 숙박을 제공 하는 등 관치행정의 전형적인 면모를 드러낸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여행사 관계자는 “어차피 국내에서 체제를 해야 하는 팀들에게 무리한 할인이나 지나친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었다”고 비난했다. 정해진 파이를 갈라먹으려는 지나친 경쟁은 득점기회를 오히려 자살골로 연결한 실축이었다.

고른 선수기용 아쉬워

일본, 중국에 대한 인바운드 시장 편중의 심각성이 이번 대회에서처럼 극명하게 드러난 경우도 드물다. 한국에서 중국이 경기를 갖게 되자 중국 특수를 예상하고 각종 시설 투자와 이벤트 등이 이루어졌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의 절반밖에 미치지 못했다. 공사 관계자는 “방한 여행을 제한하려는 중국 내부정부의 방침과 높아진 여행경비” 등을 원인으로 들었다.

일본 인바운드는 참담한 6월을 보냈다. 예년의 30~40% 수준으로 예약이 뚝 떨어졌다. 전반적인 여행 경비가 상승하자 평소 저가여행을 즐기던 일본인들의 여행심리가 급속히 냉각됐다. 예상했던 사태였지만 일본 인바운드 여행사들은 직원들에게 무급 휴가를 권장할 만큼 경영에 압박을 느껴야만 했다.

유럽이나 남미 등 장거리 팀이 상대적으로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일본 인바운드의 빈자리는 너무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장거리 팀의 경우 여행경비나 숙박시설 등을 고려해 방콕, 홍콩 등 동남아 국가를 여행하고 한국에서는 꼭 필요한 기간만 체제하는 식으로 일정을 짜기도 했다.

전시행정은 이제 그만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기보다는 모두들 포스트 월드컵만 이야기하고 있다. 정부는 월드컵 후광효과가 해외교역과 관광 분야에서 막대한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업계의 예측은 밝지 않다. 유럽 인바운드를 하는 한 여행사 관계자는 “한국의 문화와 관광 이미지를 구체적인 방한 수효로 끌어내는 고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관공 컨텐츠를 제대로 홍보하고 알리는 채널 자체가 막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열악한 여행사들이 월드컵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각 지자체이 내놓는 포스트 월드컵 대책은 한심한 수준이다. 대부분 경기장내에 월드컵 기념관을 설치하고 기념 도로와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천편일률적인 계획만을 양산하고 있다. 올림픽 기념관과 올림픽 공원을 조성했지만 관광과는 무관한 시설이 된 경험을 잊어버린 듯 하다.

한껏 높아진 국가이미지를 현실에 접목시킬 수 있는 지속적인 정책과 실천방안들이 아쉬운 시점이다.

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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