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마카오 하면 홍콩 옆에 있는 작은 카지노 도시를, 혹 카톨릭 신자라면 김대건 신부 정도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마카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단편적 지식과 이미지를 넘어서 동서양의 문화가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마카오는 동양에서 처음으로 카톨릭을 받아들였으며, 포르투갈 령으로서의 긴 세월동안 유럽문물의 자연스런 유입이 이뤄진 곳이지만 중국 고유의 문화 또한 고집스럽게 묵묵히 지켜온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카오에는 마카오만의 독특한 향기와 멋이 배어있다.

광동 지방을 중심으로 한 중국문화와 포르투갈식 남유럽문화가 400년 이상의 긴 시간을 한 공간에서 공존하면서 마카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서문화가 뒤섞인 흔적은 오늘날에도 여행자들에게 다른 곳에서는 누리기 힘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바로크 풍의 성당, 포르투갈 요새, 유럽식 이름의 거리, 식민지 풍의 빌라와 이웃하여, 중국풍의 사원과 공원이 공존하고, 흔히 접하기 어려운 포르투갈 음식과 광동요리를 맛볼 수 있고 저자거리에서는 중국, 포르투갈 사이의 혼혈인을 만날 수 있다.

빛깔이 다른 두 도시, 홍콩과 마카오

마카오는 흔히 이웃도시 홍콩과 비교된다. 그 이유는, 두 도시가 아주 가깝게 이웃해 있으면서 중국 남부의 작은 어촌이었다가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 개발된 후 오랜 기간 무역항으로 번영했고 최근 중국으로 반환된 역사적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도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국과 마카오 간에 전세 직항 항공편이 운영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마카오로 가려면 대개 홍콩을 경유하게 되는데, 여행자가 마카오에 들어서면 두 도시의 차이를 금방 느낄 수 있다.

홍콩의 이미지가 시내를 누비는 2층 버스와 복잡한 지하철, 마천루, 쇼핑으로 대표되는 도시적 화려함, 번화함에 있다면, 배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마카오의 특징은 바로크식 성당을 바라보며 중세유럽의 작은 도시의 골목을 걷는 듯한 차분함과 한가로운 여유에 있다.

홍콩이 대략 서울과 비슷한 면적과 인구를 가진 거대도시인 반면, 마카오는 이보다 훨씬 작은 서울의 한 구(區)만한 아담한 크기의 소도시다. 마카오는 홍콩에 비해 번화하지는 않아도 긴 식민역사를 바탕으로 한 포르투갈식 남유럽의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중국적인 것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카오와 포르투갈의 첫 만남

마카오와 포르투갈의 인연은 멀리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지중해 항로를 봉쇄하자, 동방과의 교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유럽 열강들은 새로운 항로를 찾아 나섰다.

가장 앞장 선 나라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 두 나라는 15, 16세기에 서로 경쟁하며 세계의 바다를 호령, 이른바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된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발견, 마젤란의 세계일주, 바스코 다가마의 희망봉과 인도양 항로의 발견도 이 당시의 일이다.

포르투갈의 식민지 가운데 본국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건설된 마카오는 대중국, 대일본 무역항으로 번성하기 시작했다. 마카오의 번영을 탐낸 다른 유럽 국가들이 마카오를 뺏고자 포르투갈과 몇 차례 전쟁을 일으킨 적도 있었으나, 마카오는 포르투갈과의 첫 만남 이후 1999년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무려 450년 이상을 줄곧 포르투갈의 영향 하에 있었다.

심지어 모국인 포르투갈이 17세기에 근 60년 동안 외국의 지배를 받을 때조차도 그들은 포르투갈의 깃발을 내걸었다. 그래서 포르투갈이 다시 독립하였을 때 마카오는 ‘신의 이름의 도시 마카오, 더이상 충성스러울 수 없는 곳’이라는 공식적인 칭호를 받기도 했다.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화북지방이 중국의 정치적 중심이라면, 마카오가 위치한 광동성(廣東省)은 수천년 동안 중국의 남쪽 변방의 땅이었다. 최근 해남도(海南島·Hai Nan)가 하나의 성(省)으로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광동성은 중국에서 행정구역상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성이었고 오늘날에도 남중국을 대표하는 지방이며, 인근 복건성(福建省, Fu Jian)과 함께 수천만 동남아 화교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의 외모는 남방계로서, 중국 중북부 사람들보다 키가 작고 호리호리하다.

동남아 화교들의 고향, 광동성

마카오의 공용어는 북경어와 포르투갈어이지만 서민들의 일상 언어는 홍콩과 마찬가지로 광동어(Cantonese)이다.
또 중국 본토에서는 간체자 한자를 사용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직까지도 한국인에게 익숙한 번체자를 주로 사용한다.
아열대의 기후와 풍부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하는 광동요리는 중국 4대 요리 중에서도 가장 국제화된 요리다.

날아가는 것 중에서는 비행기, 땅에 있는 것 중에서는 의자를 빼고는 모두 음식의 재료가 된다고 할 정도로 종류가 많고 북경요리나 상해요리에 비해 신선한 재료를 바탕으로 기름에 튀기지 않고 데치는 방식의 요리법이 발달하여 느끼하지 않아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마카오는 광동성을 가로지르는 주강(珠江·Pearl river)이 남중국해와 만나는, 주강 삼각주에 위치하며 홍콩과 마주보고 있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로 이어지는 중화권에서도 마카오는 가장 덩치가 작은 막내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카오의 반환을 계기로 중국은 지난 날의 굴욕적인 식민지 역사를 마무리 짓고 21세기 새로운 대중화(大中華) 시대를 열려고 하고 있다.

중국에서 느끼는 포르투칼

최근 많은 한국인들이 유럽을 방문하고 있으나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자는 그리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포르투갈이 유럽의 한쪽 구석에 위치하여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한때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던 해양대국. 남유럽 특유의 낭만과 여유를 밑바탕으로 하는 포르투갈의 문화는 격정과 뜨거움보다는, 그들의 전통음악 파두(Fado)에서 느껴지듯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서정을 특징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1999년 중국으로 반환된 후에도 중국정부는 포르투갈의 문화유산을 청산하지 않고, 관광 진흥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국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남중국과 남유럽의 역사적 만남과 아름다운 어울림을 보여주는 땅, 마카오가 특별한 이유다.

마카오 글·사진=오종배 객원기자 holoholo@snu.md
취재협조=마카오관광청 02-778-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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