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만한 호를 그리며 뻗어있는 해변, 그 끝자락엔 오랜 세월의 흔적을 차곡차곡 쌓아온 낮은 절벽이 자리한다. 가늘고 고운 모래, 적당한 높이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인간의 손길로 마지막 손질을 한 멀리 언덕위의 아름다운 별장들에 이르기까지 본다이 비치는 클래식한 해변의 전형을 보여준다.

시드니 중심에서 동쪽으로 불과 8km 거리에 위치해 시드니 주변의 여러 해변 중에서도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이 곳은, 서프보드를 옆구리에 낀 채 활보하는 젊은이들로 일년 내내 붐비는 곳이다.

첨단기술이나 효율성, 혹은 시간관리와 같은 단어들에 시달린 탓일까. 현대인들은 여행을 하면서 조차 그토록 바라던 느긋함이나 여유로움 대신 끊임없이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린다. 그러나 적어도 이 곳에서는 일정에 대한 고민 따위는 잠시 접어두고 바다가 주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자유로움을 맘껏 즐겨보도록 하자. 마음 내키는 대로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이 곳에서의 시간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시드니라는 도시 전체가 그렇지만, 본다이비치 역시 사진만 몇 장 찍어서는 제대로 다녀왔다고 하기 어렵다. 이왕 이 곳까지 왔다면 구릿빛 피부를 한 젊은이들 틈에 섞여 다가오는 파도에 몸이라도 맡겨볼 일이다. 파도가 좀 높지만 바다수영의 재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파도타기가 아니던가.

영화 ‘폭풍속으로’의 마지막 장면에서 패트릭 스웨이지에게 달려들던 집채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주먹을 불끈쥐고 파도에 뛰어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변에서의 느긋한 휴식을 원한다면 노천에 늘어선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칵테일 한잔을 마시며 해변의 경치와 파도소리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젊음의 열기로 넘쳐나는 본다이 비치의 경치와 파도소리로 분위기가 한 껏 고조되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해변 초입 언덕에 자리한 휴고스(Hugo’s) 레스토랑을 찾아가 보자.

96년 영업을 시작한 이래 수차례 우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이곳은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에서 첫 눈에 품격이 느껴지는 곳이다. 창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거칠 것 없는 해변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위치상으로도 가장 뛰어난 편에 속한다. 거기에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편안하게 흘러나오는 R&B 와 어덜트 컨템포러리 계열의 탁월한 음악선곡은 식사의 즐거움을 한층 배가시킨다.

하지만 레스토랑의 본질적인 경쟁력은 결국 음식의 맛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휴고스는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한다는 것은 바로 가장 완벽하고 멋진 시드니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 이라는 평가에 전혀 손색없는 곳이다.

하루종일 제공되는 아침식사 메뉴는 10에서 15호주달러 선으로, 프렌치 토스트나 베이컨 등의 기본 메뉴도 좋지만 콘 또띠야 위에 살사크림, 아보카도, 콩, 계란 등을 얹어 만든 후에보스 랜처러스 (Huevos Rancherous) 같은 새로운 음식도 시도해 볼 만하다.

저녁이 되면 테이블마다 놓여진 수제 촛대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으로 좀 더 세련된 분위기를 만드는 이 곳에서의 저녁식사는 한층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주인이자 요리사이기도 한 피터 에반스씨가 계절마다 특색있는 메뉴를 제공하므로 방문하는 시기에 따라 요리의 종류는 조금씩 달라진다. 메인요리가 35호주달러 선이며, 대체로 신선한 해산물 중심의 요리들을 많이 선보이는 편이다.

단순히 해변을 걷거나 레스토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이상의 노력을 해 볼 용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본다이 비치는 부끄럽게 감춰두었던 속살을 못이기는 척 드러내 보인다. 해변의 모습이 세련되고 정돈된 익숙한 아름다움이라면, 본다이에서 클리프 비치에 이르는 4km의 산책로는 덜 다듬어 졌지만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역동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시드니 근교에서 가장 멋진 산책로 중 하나로 꼽히는 ‘본다이-브론테 절벽 산책로’는 본다이 비치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으며, 해변을 따라 숨막힐 듯한 경치가 모양을 바꿔가며 계속 펼쳐지는 곳이다. 보통은 본다이에서 남쪽 브론테 비치쪽으로 걸어가지만, 이른 시간이라면 거꾸로 브론테비치에서 걷기 시작하여 오는 길에 일출을 본 뒤 본다이 비치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도 좋다.

도심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쉽다면, 오는 길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자. 더들리 페이지, 사우스헤드 근처의 갭 파크, 왓슨스 베이 등은 본다이 비치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시드니의 색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더들리 페이지는 본다이 비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공원으로 그 자체로는 볼 것이 없지만,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리지를 포함한 도심의 전경이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곳이어서 잠깐 들러 사진찍기에 좋다. 갭 파크 역시 사우스헤드 근처의 언덕에 위치한 조그만 공원으로 사우스헤드를 포함한 독특한 해안 절벽지형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들르는 왓슨스 베이에서는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며 느긋하게 주변 풍경을 즐기는 것이 제격이다. 사우스헤드로 이어진 산책로를 걷다가 항구와 멋진 해변의 경치에 빠져 한없이 여유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시계를 잠시 벗어두고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겨보자.

인상적인 볼거리들과 개인적인 느낌사이의 좁은 틈으로 조금씩 스며들어 결국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되는 여행의 참맛은, 지나는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 까닭이다.

호주 본다이비치 글=김승범 객원기자 kismet8004@orgio.net
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취재협조=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관광청(www.tourism.nsw.gov.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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