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좋아 다산(茶山)이라 호를 지은 정약용은 “차를 마시지 않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즐겨 마시는 민족은 흥한다”며 차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전통차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차 농원을 찾는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농원이 산책과 다도체험 뿐 아니라, 직접 찻잎을 따 볼 수 있는 새로운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라남도 보성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바다와 가깝고, 기온이 온화하면서 일교차와 습도 등이 차가 자라는데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곳이다. 18번 국도를 타고 율포쪽으로 10여km 달리다보면 몽중산다원, 대한다원, 꽃동산다원 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대한다업관광농원은 이곳에 있는 차밭 중에서도 단연 인기다. 보성읍 봉산리 일대에 자리잡은 농원은 무려 30여만평의 드넓은 평원을 형성하고 있다. 차 재배를 시작한 것이 1957년이었다고 하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지이기도 하다. 규모면에서도 제주를 제외하고는 내륙에서 가장 크고 차의 품질 또한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밭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어른 키의 네 배는 족히 넘을 듯한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영화 ‘선물’에서 이정재와 이영애가 걷던 삼나무 숲길이란다. 시원한 그늘막과 신선한 공기는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삼나무가 건네주는 고마운 선물인 듯하다. 061-852-2593

야외 다도 시연회장은 삼나무 숲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나온다. 정자모양을 한 외관이 멋스럽다. 5월부터 10월까지 주말마다 농원을 찾는 이들에게 다도 시범을 불 수 있도록 해놓았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정성스럽게 차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차 한 잔에도 예와 정신을 중요시하는 선인들의 다도관을 새삼 느낄 수가 있다.

차밭의 탁 트인 평원을 가득메운 싱그러운 녹색빛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맑아지고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다. 남도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 매끄럽게 윤기가 도는 찻잎의 싱싱함에, 그윽한 향기에 취할 지경이다.

위쪽으로 오르는 길가에 심어진 차나무들은 기계로 잎을 따서 그 모양이 가지런한데, 이때 손상된 잎은 티백을 만들거나 녹차탕, 혹은 녹돈에 쓰인다고 한다. 녹돈은 녹차를 먹여서 키운 돼지고기로 담백하고 기름기가 적어 누구나 맛을 보면 평소보다 배 이상의 양을 먹게 되는 보성의 명물이다.

밭고랑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높이 올라 아래를 굽어보면 더욱 장관이다. 거대한 연두빛 물결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끝도 없이 출렁대는 것 같다. 이곳만의 특별한 경치는 이미 영화와 광고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한 바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수녀와 비구니의 모습이 인상적인 모 이동통신 CF도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녹차시음장에 들러 우전차(1인당 1천원) 한 잔을 마셔보는 것도 좋다. 차의 품질은 찻잎을 따는 시기와 여리고 센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곡우와 입하 사이는 세작, 5월 초순 부터 6월 중순까지는 중작, 중작보다 더 굳은 잎을 따서 만든 차를 대작이라 한다. 우전차는 곡우(양력 4월 20~21일) 이전에 새순을 따서 만든 녹차로 이곳에서도 최고급으로 꼽힌다.

녹차 특유의 씁쓸함은 덜하고, 구수하면서 깊은 뒷맛이 과연 으뜸일 만하다. 찻집 한 켠에는 녹차 외에도 녹차과자, 녹차환, 녹차미수가루 등 녹차를 이용해 만든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어 원하는 사람은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율포 해수욕장은 다원에서 차로 이십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율포관광단지 내에는 해수 녹차탕(061-853-4566)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지하 120m 암반층에서 끌어올린 해수에 전국 제일의 녹차를 우려낸 물로 건강목욕을 즐길 수 있다.

녹차는 몸 안의 노폐물을 배출시켜주고 혈압이나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미용에도 좋고 은은한 녹차의 향으로 인한 아로마 테라피의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남해안의 수려한 경관을 바라보면서 따뜻한 녹차탕에 몸을 담그면 여행 중에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풀린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여타의 민속촌과는 달리 성벽안에 108세대주민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는 순천의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머리를 마주댄 초가지붕에는 박이 자라고, 마당에 널린 고추와 옹기종기 놓인 장독대가 시골 고향집을 연상시켜 누구에게나 정감어린 느낌을 갖게 한다.

찻잎이 천천히 퍼지면서 은은한 빛깔과 향기를 남기는 녹차처럼 보성은 알면 알수록 은근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오는 가을의 여정을 녹차 향기 가득한 보성에서 차분히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보성=손미영 객원기자 blackmail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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