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호 타고 일본으로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향해 다가오던 8월말,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항을 오가는 16톤급 페리인 성희호에 올랐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6시간이 걸렸지만 부산에서 일본까지는 겨우 3시간이 걸린다. 성희호는 부산항을 출발해 공해상에서 밤을 보내고 일본세관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항구에 들어간다. 당일 시모노세키항에 제일 먼저 입항하는 배인 셈이다.

성희호는 객실, 샤워실, 세탁실, 식당, 바까지 갖춘 제법 규모가 있는 배다. 배에서 목욕이라니…. 학교다닐 때 제주도에서 목포까지 소금끼 서린 바닷바람을 맞으며 탔던 그 페리호와는 차원이 달랐다.

태풍 루사 때문에 모든 배가 결항된 가운데 성희호는 5m가 넘는 파도를 가르며 일본을 향해 출항했다. 일본인 승객 400명, 한국인 승객 90명 가량이 탑승한 채였다. 다음날 아침, 하늘이 다소 흐린 시모노세키항에 성희호는 무사히 입항했고 은근히 조마조마하던 가슴에는 안도감이 퍼졌다.

아기자기한 대형 쇼핑센터 캐널시티 하카타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하자마다 처음 향한 곳은 쇼핑몰이 밀집한 후쿠오카 시내의 캐널시티 하카다다. 다섯개의 건물을 연결한 운하 때문에 캐널시티(Canal City)라고 불리는데 도랑만한 개울위에 건물과 건물을 아치와 다리로 연결해 거대한 복합건물을 이루고 있다.

캐널시티 안에는 서점, 약국, 캐릭터숍, 옷가게, 100엔숍, 레코드숍, 식당가 등이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8개 라면 전문점이 모여있는 라면스타디움이 유명하다는데 아쉽게 그곳을 찾지 못했다. 입구에서 한국어로 된 안내도를 찾아 들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다섯 개의 건물 구조를 익힐 수 없었던 탓이다.

이럴 때는 발길 닿는 대로 헤메는게 제일이다 싶은 생각에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곳은 옷가게였다. 한 부대쯤 되어보이는 마네킹이 동대문시장의 가게 서너칸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늘어서 있다. 또다른 가게의 쇼윈도우에는 교실이 그대로 재현돼 있었다. 100점을 맞은 아이가 시험지를 뒤로 감추고 0점을 맞은 친구를 위로하고 있는 귀여운 전시물은 한참 동안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잡았다.

거리의 악사들이 노는 사원

후쿠오카 다자이후에는 학문의 신이라는 미쯔자네를 기리는 사원 다자이후텐만구가 있다. 텐만구 신사의 총본산이기도 한 이곳은 유배를 당한 미쯔자네를 따라 날아왔다는 매화가 뿌리를 내려 봄이면 매화가 장관을 이룬다고 하고 그를 태우고 왔다는 소의 동상이 사원 입구를 지키며 서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이 사원에 참배객들 만큼 많은 것이 떠돌이 악사들이다.

사원 본전 앞마당을 제외한 곳곳에서 공연을 펼치는 이들의 음악소리가 서로 섞이어 우리가 ‘사원’하면 연상하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관광객을 위해 공연하고 돈을 버는 이 거리의 악사들은 신을 생활속의 일부로 생각하는 일본만이 지닐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다.

신사 입구까지 뻗은 길에는 우리나라 등산로 입구에서 볼 수 있는 기념품 상가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파는 명물 가운데 하나가 합격과 우수한 성적을 기원한다는 찹쌀떡이다. 시험 때 찹쌀떡을 사주는 우리의 문화도 이 사원입구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7층 꼭대기에 노천탕이

사가는 도자기마을로 임진왜란 때 조선인 도공들이 잡혀와 정착한 곳이라고 한다. 일본 어디를 가도 온천이 빠지지 않듯 그곳에도 온천이 있다. 보통 우리나라의 온천목욕탕이 지하나 1층, 2층 정도에 있는 것과 비교해 일행이 찾은 온천은 7층에 위치해 있었다. 꼭대기 층이니 누가 볼리 없다는 듯 노천탕이 베란다에 설치돼 있다.

탕은 모두 작은 편이어서 한가족이 들어가면 꽉차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온천을 즐기는 이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규모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뜨끈뜨끈한 온천 특유의 시원함이 없는 것도 아쉬웠다. 800엔 이라는 가격도 일본 물가를 고려해 눈감았지만 온천이 많은 일본인들이 굳이 한국으로 온천관광을 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네덜란드 범선으로 즐기는 구주쿠시마

하우스텐보스가 위치한 나가사키에는 구주쿠시마라고 불리는 군도가 있다. 우리나라의 다도해쯤 되는 일본의 해상국립공원으로 25km안에 99개의 섬이 펼쳐진 곳이다. 네덜란드 범선을 흉내냈다는 유람선 펄퀸(Peal Queen)호를 타고 섬일대를 한바퀴 도는데는 약 50분이 걸린다.

아름답고 희한한 섬 모양을 보노라면 50분이 짧다. 관광지이면서 진주양식장이기도 한 섬 주변에는 진주양식을 위해 띄어놓은 부표들이 펼쳐져 있다. 생업과 관광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 좋다.

섬일주와 패키지 상품으로 묶인 수족관은 전시 어족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관람객이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불가사리, 해삼 등이 있어 아이들이 즐길만하다. 이 수족관을 향하는 길에는 화장실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인어모양으로 되어 있다. 바다관광지다운 귀여운 아이템이 웃음을 자아낸다.

장사꾼은 손님을 알아본다?

일본을 조금 안다는 사람들에게서 일본사람을 두고 상반된 두 가지 평을 듣곤 한다. 하나는 너무나 싹싹한 사람들이라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너무나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일본을 여행하는 2박3일 동안 그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하우스텐보스에서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청년은 무뚝뚝함의 상징 같았다. 관광지에서 서비스하는 사람치고는 너무하지 않나 싶게 말이 없을 뿐더러 웃음도 없었다. 더욱이 손님에게 자전거열쇠만 달랑 내주고는 자전거가 어느 쪽에 있다고 알려주지도, 자전거를 꺼내주지도 않았다. 결국 손님이 자전거를 꺼내고 안장을 낮추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한편 우리 일행이 묵게 된 사세보시티호텔에서는 환영의 예가 하도 극진해서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예순은 되어 보이는 노무용수의 전통 춤공연, 젊은 직원들의 한국노래와 춤, 늙은 호텔보이의 노란샤쓰입은 사나이를 보고 들으며 그들이 손님을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물건을 사줄 큰 고객에게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 마음을 휘어잡는다. 아마도 그 자전거 대여점에도 대형 여행사가 단체로 자전거를 빌리는 등 큰 거래를 했다면 그렇게 무뚝뚝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일본 나가사키현 글·사진=송옥진 객원기자 oakjin@hanmail.net
취재협조=여행박사 02-730-6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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