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시티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이 땅에 그 옛날 아즈텍과 마야의 문명이 꽃피웠던 찬란한 시절이 있었음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 위기의 여파로 치안까지 불안하다는 이곳에서 과거의 영화는 너무도 먼 역사가 돼버린 탓이다.

때문에 멕시코에도 피라밋이 있다고 했을 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머릿속에 기억돼 있는 피라밋이라는 단어는 이집트의 것이었고 모든 피라밋은 모래사막 위에 서있어야 걸맞을 듯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멕시코 고원에 세워진 신들의 도시

‘신들의 도시’라는 뜻의 떼오띠우아칸(Teotiuacan)은 멕시코 시티를 벗어나 차로 50여 분(북동쪽으로 50km 가량)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멕시코 고전기 문명의 하나다. 기원전 200년 경부터 900년 사이에 번창했다고 하니 1000년이 넘는 시간을 멕시코 고원에서 무리지어 문명을 이룬 셈이다.

‘께짤꼬아뜰(Quetzalcoatl)’이라고 하는 깃털 달린 뱀을 지극한 신앙의 대상으로 섬긴 떼오띠우아칸은 지금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의문 투성이의 문명이다. 기원전 2세기의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호사스런 생활의 한편에서는 산 사람의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는 잔인한 제사도 서슴치 않았다.

마야인과도 물물교환을 할 정도로 상업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그들 문명이 가장 번성했던 350년에서 650년 사이에는 인구가 20만명에 달할 만큼 화려하고 웅장했다. 당시 유럽 대도시의 인구가 평균 2만∼3만명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그 거대한 문명이 이처럼 말끔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떼오띠우아칸 문명을 실감할 수 있는 유적지는 해의 피라밋과 달의 피라밋 그리고 께살꼬아틀 신전이다. 떼오띠우아칸 문명이 폐허가 된 후 이곳을 찾은 아즈테카인들조차 신들의 고향이라고 여길 만큼의 장엄함은 지금도 관광객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태양의 신을 모신 세계 3대 피라밋

멕시코의 피라밋은 이집트의 피라밋과 달리 왕의 무덤이 아닌 제단의 성격이 크다. 제단이라고는 하지만 태양의 피라밋은 높이 65m에 밑변의 길이가 224m에 이르고 달의 피라밋은 높이 43m에 밑변의 길이가 120m와 150m에 달한다. 이집트와 피라밋 원조 논쟁을 벌여도 손객이 없을 듯하다.

이중 태양의 피라밋은 전세계에서 3번째 크기의 피라밋으로 기록될 정도로 웅장하고 끝없는 사다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게 건축돼 있다. 태양의 피라밋보다 후에 세워진 달의 피라밋도 높이는 43m로 태양의 피라밋에 비해 작지만 약간 높은 지형에 세워져 정상의 높이는 크게 차이가 없도록 설계됐다. 께살꼬아뜰 신전의 피라밋 또한 크기는 작지만 한 변이 400m나 되는 정사각형 성벽이 피라밋을 둘러싸고 있어 규모면에서 빠지지 않는다.

이 거대한 피라밋과 신전은 ‘사자(死者)의 길’이라 불리는 총 길이 4km 가량의 거리를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세워져 있다. 달의 피라밋이 길의 북쪽 방향 끝에 있으며 길 동쪽으로 태양의 피라밋과 신전이 위치해 있다. 이밖에 당시 각종 제사와 의식을 주관하던 신관의 숙소와 작은 사원들의 흔적이 거리 곳곳에 남아있다.

시원스럽게 도시를 관통하는 길에 ‘죽은 자의 길’이라는 으시시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길을 통해 수많은 꽃다운 영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전에서는 당시의 주요 사안들에 대한 회의가 이뤄졌으며 인신 공양의 구체적인 행위는 태양의 피라밋과 달의 피라밋을 오가며 이뤄졌다는 것이 오늘날의 추측이다.

관광객에 점령당한 화려한 시절

그로부터 1100년이 지난 지금도 태양의 피라밋과 달의 피라밋에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기다시피 올라가는 사람들을 따라 끝까지 피라밋을 오르면 꼭대기는 의외로 평평하다.

그 옛날 제물을 바치기에 앞서 치뤄진 엄숙한 종교 의식에 적당할 만큼의 평지를 지니고 있는 피라밋에는 이제 태양의 정기를 받겠다는 21세기의 관광객만이 줄을 서 있다. 정상에서 숨을 고르고 나면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시간이다. 태양의 피라밋에서 내려보는 떼오띠우아칸 문명의 잔해는 아찔할 만큼 선명하다.

의식을 마친 후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한 어린 처녀가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바치기 위해 걸었을 사자의 길로 나서면 이내 달의 피라밋이다. 광장 규모로 봤을 때 태양의 피라밋보다 중요한 행사들이 이뤄졌을 달의 피라밋에서는 태양의 정기를 마신 소녀의 펄떡이는 심장이 꺼내졌다. 그러나 강산이 100번도 넘게 바뀌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달의 피라밋의 위엄도 사진 속 배경 화면으로 전락했다.

떼오띠우아칸에는 멕시코의 화려했던 역사와 오늘날의 모습이 공존한다. 성스러운 기운을 품고 쉽사리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던 해와 달의 피라밋은 이미 외국 관광객에게 점령당한 채 아무런 말없이 멕시코 고원 계곡을 내려보고 있을 뿐이다.

떼오띠우아칸 글·사진=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취재협조=아시아나항공 02-669-5380
멕시카나 항공 02-775-0463
전미주투어스 02-736-2126

상담포인트
■피라밋은 생각 보다 경사가 급하므로 서두르지 말고 차곡차곡 오르자. 치마는 절대 금물.
■2000m 이상의 고원에서 2시간 이상 관광이 진행되고 걷는 시간도 많기 때문에 모자와 썬그라스, 썬 크림 등은 필수. 고지대에 태양이 뜨거우니까 무리하지 말고 약간이라도 이상하다 싶을 때는 피라밋에 오르지 말자.
■피라밋 근처에는 각가지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들이 즐비하지만 대부분 모조품이므로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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