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신문 코리아 헤럴드(Korea Herald) 사회부 초년병기자 시절인 1973년 7월10일 제 7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위한 3박4일간의 평양취재 기회가 주어졌다.

여권 없이 판문점에서 인물대조만 하고서 평양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신원조회는 정말 까다로웠다. 서울에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7월9일 북한산에 올라가 돌아오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심리적 준비까지 끝내고, 7월10일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평양행 버스를 타고 판문점을 거쳐 약 세시간을 달려 평양 보통강려관에 도착했다.

도착 후 잠시 동안의 자유시간이 주어져 평양의 이발소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안내원에게 이발소 위치를 물었다. 사실 아침에 급히 나오느라 면도도 제대로 못했었다. 지하1층이라는 그의 말에 무턱대고 지하1층으로 내려갔다. 물어물어 찾아간 이발소에는 세 사람의 이발사가 세 개의 의자 앞에 서 있었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고 면도칼이 가까이 오는 것을 느꼈을 때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 세계가 남북적십자회담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는 느긋한 표정을 지으려 애를 썼다. 이북 이발사들이 오히려 더 놀라면서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내게는 당황하지 않고 놀란 표정을 짓지 않는 습관이 몸에 익숙해졌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삼십여 분 동안 같이 간 남한 측 수행원들은 이리저리 나를 찾아다니느라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30대 초반의 장가도 가지 않은 혈기왕성한 시절이었다. 한참 후에야 낮의 이발소 상황에 식은땀이 나는 것이 아닌가.

위기관리와 관련하여 ‘놀란 표정을 짓지 말라(Don’t display panic)’는 원칙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PR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위기시의 원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가슴 속은 떨고 있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태연함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위기발생시 최고경영자가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해 성공적인 위기관리가 되지 못한 많은 사례를 접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필자는 평양 지하이발소 얘기를 해주곤 한다.

기자라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새로운 정보를 찾아다니는 왕성한 호기심과 모험심이 있어야 한다. 특종(scoop)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특종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너무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현 국회의원인 모 기자가 재벌 회장들의 중요한 모임을 취재하기 위해 병풍 사이에 몸을 비비고 들어가 특종을 한 사례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삼선개헌과 관련된 특종을 위해 기자들이 몸을 던져 취재활동을 한 얘기들은 지금까지도 기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로이터 통신 종군 기자는 특종을 위해 위험한 곳까지 취재하다 폭발사고를 당해 목발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기자는 특종과 목숨을 맞바꿀 각오가 돼 있었던 것이다. 기자와 위기관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제는 기업경영과 위기관리는 더 농도가 진한 불가분의 관계라는 생각을 갖게 되며, 우리관광 업계도 폭넓게 위기에 대비하는 전략을 수립해야겠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대표 kyonghae@comm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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