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망망하다. 너른 바다가 도시에 찌들렸던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지난 10월 말, 평택항에선 스타크루즈의 올해 마지막 운항인 ‘한국-중국 크루즈(평택-대련-청도-평택 4박5일)’를 위해 제미니가 출항했다. 겨울 동안은 제미니도 동남아노선에 투입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한국도 크루즈 관광 시대에 돌입되었다는 판단 아래 스타크루즈는 내년 3월, 봄이 되면 더 큰 유람선을 한국-중국 노선에 투입할 예정이라 한다.

여행 문화의 마지막이라고 하는 크루즈의 매력은 숙박, 식사, 이동을 한꺼번에, 그것도 고급스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밤새 잠을 자고 일어나거나 실컷 즐기고 나면 어느덧 새로운 곳에 닿는다. 사실 여행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마다 풀었던 짐을 다시 싼다는 것은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크루즈는 나라를 옮기면서도 짐을 다시 싸지 않아도 돼 편하다.

오늘날 크루즈의 유람선은 수만톤은 보통이고 10만톤이 넘는 것들이 있다. 10여 층 이상의 거대한 호텔이 떠다니는 격이다. 배 안에는 호화 식당이 여럿 있어 세계 각국의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고, 수영장, 휘트니스 센터, 골프 연습장 등 다양하게 구비된 스포츠 시설에서 운동을 맘껏 즐긴다.

각종 바와 카페, 디스코텍에선 생음악이 연주되고 가라오케와 노래방에선 너도나도 스타가 된다. 오락시설만 있는 게 아니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독서를 할 수도 있고 위성을 통해 인터넷으로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여러 개의 회의실에선 세미나, 설명회 등을 열 수도 있다. 유람선은 떠다니는 호텔을 넘어 떠다니는 거대한 리조트이다.

크루즈는 국제 사회의 축소판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구조를 보여준다. 예로 스타크루즈의 승무원들은 20여개국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선주는 말레이시아인이라지만 19척의 유람선을 갖고 있는 화교다. 근로 조건에 있어 최고의 대우를 받는 운항 쪽 승무원들은 선장 이하 테크니션들이 모두 스웨덴, 노르웨이, 핀랜드 등, 스칸디나비아 출신이다.

총지배인 이하 호텔 운영 쪽 간부들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인이고, 쇼맨이나 무용수는 대부분 백인 중 개런티가 싼 러시아인이다. 음악은 음악성은 뛰어나되 역시 개런티가 헐한 필리핀 뮤지션들이다. 그 외 몸을 쓰는 서비스나 단순노동은 필리핀인, 본토 중국인, 인도네시아인이 한다. 승객은 아시아 노선이므로 일본인, 한국인, 돈 많은 중국인이다.

한국 승객이 끼어있다 보니 스타크루즈의 승무원들은 한국말을 조금씩 할 줄 안다. 음식도 중국 요리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감안해 김치, 깍두기, 된장국 등이 섞여 있다. 포크, 나이프와 더불어 숟갈과 젓갈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 분위기에 맞춰 한국 승객들도 크루즈 관광을 세련되게 즐기고 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부산과 평택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는 본격적인 한국인의 크루즈 관광 시대를 열었다. 옛날에는 수로를 이용한 이동이 육로보다 용이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중국, 일본을 바닷길로 다녔다. 황해나 현해탄 크루즈는 이미 우리 조상들이 다녔던 항로이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의 고달픈 시절을 벗어나 크루즈를 즐길 수 있는 승객 대열에 끼어 삶을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magnif@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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