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텔담의 스키폴 공항을 출발한 버스는 두어시간을 달린끝에 소리소문도 없이 국경을 넘어 벨기에(Belgium)로 들어왔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Benelux) 3국에 속하는 벨기에는 네덜란드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밖에 되지 않는 나라다.

수도 브뤼셀(Brussels) 외곽에 위치한 작은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새 칠흙같은 어둠이 내리고 객실마다 샤워소리, 짐푸는 소리가 가득 들어찬다. 긴 비행에 피곤한 몸은 스르르 침대와 하나가 되나 싶더니 아무래도 8시간의 시차를 쉬이 이겨내지 못한다.

새벽부터 부스럭대던 사람들은 레스토랑이 열자마자 들어가 만찬 못지 않은 조찬을 오래도록 즐긴다. 지긋이 연세가 드신 가이드는 레인코트에 모자, 우산까지 필수장비를 갖추었지만 미쳐 우산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일행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흐린 하늘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투어를 나선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움 브뤼셀

원자의 결정구조를 형상화한 건축물 아토미움(Atomium)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시민유원지 브뤼파크(Bruparck)에 도착했다. 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가 에펠탑을 남겼다면 1958년 브뤼셀 만국박람회는 아토미움을 탄생시켰다.

아토미움의 각 부분은 서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물질의 최소단위답게 견고하게 지어진 높이 102m, 무게 2400톤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철거논의도 있었지만 수리보수로 방향이 정해져 여기에 소요될 페인트만 해도 5톤 가량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영화관, 엘리베이터, 전망대 등의 시설이 있다지만 단체 관광객이 항상 그렇듯 멀리서 기념촬영만 하고 돌아선다. 아토미움이 위치한 브뤼파크는 아이맥스 영화관, 워터파크, 각종 레스토랑, 300여개 이상의 미니어처가 있는 미니 유럽 등 다양한 어트렉션을 갖춘 종합유원지다.

에피타이저를 끝내고 메인요리를 시식할 차례. 중앙역에서 하차해 5분 정도 걸어가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그랑플라스(Grand Place)’와 벨기에의 상징이 되어버린 ‘오줌싸개 동상(Mannekin Pis)’을 만날 수 있다.

벨기에는 서유럽의 수도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하루 관광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은 그랑플라스를 포함한 반나절 관광으로 벨기에 여행을 마치곤 한다. 중앙역에서 그랑플라스로 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을 맞아 주는 것은 위풍당당한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 그리고 그 바로 맞은편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동상이다. 돈키호테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우울함의 이유라고 가이드가 덧붙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그랑플라스

벨기에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먹거리라는 와플가게를 지나 바닥에 작은 돌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직사각형의 광장 그랑플라스로 들어갔다. 때마침 답사를 나온 보이스카웃 꼬마들과 개와 함께 산책을 나온 시민들, 그리고 쉴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이 비에 아량곳 없이 활기차게 움직인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고풍스런 건물들은 그 역사가 중세로 거슬러올라가는 시청사와 왕의 사택과 길드 하우스 등이다.

가장 웅장한 외관을 자랑하는 100여미터 높이의 시청사 벽면에는 조각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시청사를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서 있는 길드 하우스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양식이 총집합된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다. 다시 시계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시청사를 마주보고 있는 건물은 빵공장에서 왕의 사저로 일약 신분상승을 했다. 그 옆의 건물에는 일찍이 벨기에를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던 빅토르 위고가 대표작 ‘레미제라블’을 집필했던 방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북서유럽의 베니스 브뤼헤

브뤼셀을 떠나 북서유럽의 베니스로 통하는 브뤼헤(Brugge)로 이동한다. 도시가 가까워질수록 이 도시를 상징하는 세 건물의 꼭대기가 흐린 날씨속에 희미하게 드러난다. 이 곳은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지만 플랑드르 지방의 전략적 요충지로 9~13세기 사이에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다.

십자군 전쟁 이후로 도시 전체가 성으로 둘러싸였을 만큼 북서유럽의 경제적 수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원래 브뤼헤는 바다에서 불과 12k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운하를 통해 배가 들어올 수 있는 상업도시였지만 이후 퇴적작용으로 뱃길이 막히면서 상권이 점점 소멸되어 갔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융성했던 전성기의 흔적들이 잘 남아 있다.

브뤼헤의 상징 중 하나인 백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운하를 지나 중심가로 들어간다. 첫 번째 방문지는 노틀담 성담으로 미켈란젤로의 ‘마리아’상이 있는 곳이다. 주교좌성당인 구원의 성당의 보물은 유럽을 집권한 기사들이 중요한 회의를 하던 의자와 그림들이다. 계란을 이용한 16세기의 그림과 새로운 물감을 사용했던 17세기의 그림들이 그냥 보기에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 제대 뒤편으로 귀족들의 납골당이 둘러쳐져 있어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나지만 항상 순례자들로 가득하다.

가장 높이 솟은 건물인 종각은 1285년에 완성된 곳으로 한자동맹이 있었다. 시청 1층의 볼룸에는 길드 조합들을 상징하는 휘장들이 천장에 걸려 있다. 지금은 작아 보이지만 당시만해도 규모가 큰 연회장이었다. 성혈성당에는 예술의 피가 묻은 양털이 크리스탈 관에 보관되어 있다. 여러개의 성당이 모여 있지만 특별히 이 곳은 침묵으로 묵상하는 순례객들이 많다. 그 바로 옆 바실리크는 목동들이 건설한 성당으로 마리아상과 예수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작은 성당이다.

성당 순례를 마쳤지만 여전히 비가 그칠 줄을 모른다. 마르크트 광장 주변으로 포근해 보이는 까페와 레스토랑이 추위에 지친 여행객들을 부른다. 따뜻한 커피나 커다란 비이커에 담아주는 이 지역의 맥주를 시음해 볼 만 하다.

벨기에 글·사진=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KLM네덜란드항공 02-733-7878

몸집보다 큰 명성 오줌싸개동상

벨기에의 상징 오줌싸개 동상을 찾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플랭카드를 따라가다 항상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 발길을 멈추면 되지만 막상 실물을 보게 되면 ‘설마’하는 의혹이 생긴다. 별다른 장식도 없이 골목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오줌싸개 동상은 작고 볼품이 없다.

끊어질 듯 가는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소년의 은밀한 부분은 제복(각국에서 보내 온 전통의상과 제복이 수천벌이나 된다고 한다)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다. 가이드는 이 작은 동상이 벨기에라는 작은 나라가 게르만족과 라틴족의 화합속에 EC(유럽공동체) 본부국의 명예까지 누리며 번성할 수 있는 정신적인 유산이라며 의미를 부여하지만 배낭여행족 사이에 이 동상이 유럽의 ‘3대 썰렁’ 혹은 ‘3대 실망’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가 작은 동상하나로 온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노하우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다. 동상의 기원과 관련된 많은 전설이 있지만 한 꼬마가 화재를 오줌으로 진압한 것을 기념했다는 설과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농부라고도 하고 귀족이라고도 한다)가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퍼져있다."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