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6월에 발생한 필리핀 피나투보(Pinatubo) 화산의 폭발은 세계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대자연에 대한 외경의 마음에서도 그랬지만 인근 지역의 피해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약 4만채의 가옥이 무너져 내렸고 25만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900여명의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갔다.

수빅(Subic) 지역도 화산 폭발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동차로 1시간 넘게 떨어진 곳이었지만 일주일동안 화산재가 계속해서 쌓였고, 화산재 무게를 이기지 못한 다리와 지붕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곳에 주둔해있던 미국 해군기지는 철수를 단행해야 했을 정도다.

‘동양의 캘리포니아’ 수빅

두터운 연무와 회색빛 화산재가 뒤덮었던 그 재해의 현장이 이제는 필리핀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비상하고 있다. 더 이상 재해의 상흔은 없다. 화산재가 걷힌 자리에는 열대 남국의 싱그러움이 둥지를 틀었다.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수빅은 아담한 항구도시이자 관세자유 지역이다.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고 미 해군이 철수한 이후 재해 복구와 지방 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방정부와 주민들의 노력 끝에 이제는 생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단골 취재지역이 됐을 정도로 화산 폭발 이전의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되찾았다. 피나투보 화산은 전세계 생태 관광객들의 인기 코스로 모습을 바꿨다. 미군 주둔지였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수빅 지역의 안전성을 강화해주는 계기가 됐다.

1995년 수빅에서 아·태 정상회의(APEC)가 열린 뒤에는 ‘동양의 캘리포니아’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새로운 시설과 관광프로그램들도 속속 들어섰다. 당시 이곳 지역의 행정 책임자였던 이가 이후 필리핀 관광장관이 되었다는 점도 유명 휴양지를 향한 수빅의 행보를 빠르게 했다.

지역 전체가 거대한 리조트

수빅은 지역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휴양 리조트로 파악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다채로운 즐거움과 매력이 깃들여 있다.
새파란 하늘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 먼지를 훌훌 날려보낸다. 왠지 아쉽다 싶으면 ‘씨플래인(Seaplane)’이라는 4인용 수상 경비행기를 이용해 그 하늘로 직접 솟아올라 아찔아찔 짜릿짜릿한 피나투보 화산 경비행기 투어에 나설 수 있다. 1시간30분 정도에 100달러라는 경비가 여의치 않더라도 괘념할 일은 못된다. 레저활동의 천국, 수빅의 지상이 기다리고 있다.

필리핀 정부의 전략적 차원에서 관광휴양지로 육성되고 있는 만큼 수빅의 땅 위에서 누릴 수 있는 재미와 체험거리는 실로 다양하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즐길 수 있는 미니 자동차 경주장을 비롯해 미니 동물원, 박쥐동굴, 원주민 문화체험 프로그램 등이 있다.

역동적인 체험을 원한다면 호주에서 실제 경주마로 뛰었던 힘 넘치는 말을 타고 수빅의 숲 속을 누비면 된다. 골퍼라면 부언의 여지없이 18홀 코스의 골프장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곳 수빅베이골프장(Subic Bay Golf C.C.)은 특히 여성의 몸을 형성화한 7번홀 ‘필리피나스’로 유명하다. 또 수빅 지역 전체가 면세지역인 만큼 숱한 면세점에서의 쇼핑도 정해진 일정을 한없이 짧게만 만든다.

특히 ‘마운틴 사맛 추모십자가(Mt. Samat Shrine)’와 ‘JEST 캠프(Jungle Environmental Survival Training Camp)’는 각각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 색다른 경험은 물론 교육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교육효과 만점!

마운틴 사맛 추모십자가는 1941년 12월8일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쫓기면서 항쟁하다가 결국 현재 추모 십자가가 세워진 마운틴 사맛 지역에서 최후를 맞았던 미군과 필리핀 연합군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68년 세워졌다. 높이 95미터인 추모 십자가는 해발고도 560여 미터의 사맛 산 정상에 들어서 있어 그 웅장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십자가의 양쪽 날개는 전망실로 꾸며져 있어 멀리 마닐라 시내를 포함해 주위의 호쾌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따로 마련된 전쟁기념관에는 당시 사용된 무기와 관련 사진 및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63년에 개설된 ‘JEST 캠프’는 베트남전에 참전할 미군들에게 정글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마련됐다. 당시 이곳 원주민인 아에타(Ayta)족들이 정글에서 살아가는 생존방식에 감탄한 미군들이 그들을 교관으로 채용하면서 훈련소가 개설됐다고 한다.

약 20만명의 미군들이 이 코스를 거쳐나갔는데 현재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색 관광상품이 됐다. 2시간 정도 정글을 탐험하거나 아예 캠핑하면서 정글 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데 안내원 아에타 족이 보여주는 정글 속 생존 방법에 연신 감탄하게 된다. 대나무 하나로 숟가락과 포크, 밥솥, 컵, 접시 등 생활도구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나중에는 대나무 마찰력을 이용해 단 몇 초만에 불을 피워낸다. 열대나무 줄기와 뿌리를 이용해 식수를 충당하고 방충제와 비누까지도 만들어낸다. 정글 트렉킹 자체도 이색경험이지만 아에타 족들이 보여주는 정글 속 생존방식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왜 미군이 이들을 교관으로 채용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필리핀 수빅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취재협조=세부퍼시픽항공 02-3708-8530,
IRC 랜드서비스 02-779-0456

‘60%의 관광, 40%의 휴양’제2의 세부 도약 기대

수빅은 그동안 항공 직항로가 없어 마닐라에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육로나 페리를 이용해야만 했다. 때문에 수빅이 머금고 있는 풍부한 관광자원에 걸맞은 명성을 얻지 못한 측면이 다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02년 12월26일부터 세부퍼시픽항공(www.cebupacificair.co.kr)이 인천-수빅 노선에 매주 목·일요일 주2회 스케줄로 취항하면서 필리핀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급부상했다. 이색적인 관광 프로그램들이 많은 데다가 한국에서 불과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여행지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수빅에서의 일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60%의 관광, 40%의 휴양’이다. 자칫 휴양 일색으로 꾸며지거나 기껏해야 해양 스포츠가 전부가 되는 일반적인 동남아 여행과 달리 바다와 육지와 하늘에 걸쳐 다채로운 놀거리와 볼거리까지 갖추고 있어 휴양과 관광 지향형 여행객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

1월23일까지 현대드림투어가 총 9회에 걸쳐 단독전세기를 운항하고 있으며, 일반 패키지여행을 비롯해 허니문, 가족여행, 골프투어에 초점을 맞춘 3종류의 상품이 구성돼 있다. 현지 진행 업체인 ‘IRC 랜드 서비스’는 수빅을 ‘제2의 세부’로 육성한다는 목표로 4년에 걸친 장기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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