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며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깐 동안 들뜬 분위기가 느껴진다. 창 밖의 날씨와 다르게 포근함마저 느껴지는 기차 안에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다. 기차 만큼 가족이 함께 여행하기 편한 운송 수단이 또 있을까. 따로 운전하지 않아도 되겠다, 서로 마주보며 여유롭게 갈 수 있겠다, 이동하는 동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충분하니 장시간 여행에 익숙치 않은 어린 자녀를 동행한 부모들의 시름까지 덜어 준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니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도시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났다. 약간은 스산해 보이는 넓은 들판이 시원하다. 2년전 대학 동창과 단촐하게 떠난 지리산 여행이 기억난다. 그 때도 구례역까지 열차에 몸을 맡겼다. 밤기차에 오른 탓에 온통 시커먼 공간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유리창 너머로 지나치는 시골 풍경이 따스하게 마음속에 스며든다.

역시 기차 여행의 묘미는 차창에 있다. 텁텁한 도시는 이미 온데 간데 없다. 시시각각 변화는 자연의 파노라마는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최고의 명화이다. 그 동안 가슴 속에 막혀 있던 무언가가 후련하게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니 또한 최선의 명약이다.

책과 음악 삼매경에 빠져도 보고

청량리에서 일요일 아침 8시 10분 출발. 한참 단잠을 꾸고 있을 시간이니 잠이 아니 쏟아질 수 없다. 제 한 몸 뉘이기 충분한 공간에 따뜻한 기운마저 가득해 어느새 솔솔 졸음이 몰려온다. 어린 아이들만 물을 만난 물고기마냥 여기 저기 오가며 신났다.

열차 카페칸에는 도서 300여권이 비치돼 오며 가며 빌려다 읽을 수 있다. 벌써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눈에 띈다. 창 밖을 향해 놓여진 의자와 간이 테이블에서 가볍게 맥주 한 캔 마시는 기분도 싱그럽다. 하얀 눈 덮힌 풍경이 운치를 더한다. 약간은 소란스럽게 느껴지는,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가 물씬한 카페칸에서 들뜬 마음을 한껏 발산한다.

자칫 지루해 질 수도 있겠다 하는 우려를 뒤로, 갑자기 객실칸 내 분위기가 생생해진다. 10시부터 시작된 ‘사연이 담긴 노래’ 이벤트 때문이다. 카페칸에 마련된 DJ 박스에서는 열차 안 사람들의 갖가지 이야기들과 노래들을 소개해주기 바쁘다.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는 자녀들의 고백(?)이 열차 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뒤이어 아빠가 제일 좋아한다며 신청한 이기찬의 ‘감기’. 열차는 노래를 싣고, 또 사랑을 싣고 태백으로 달린다.

비닐 한조각 타고 눈썰매 즐기며

태백역에 내리니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겨울철 태백산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칫하다간 점심 먹을 자리도 없을 것 같아 발걸음을 서두른다. 한 음식점에 겨우 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토종닭 백숙이 상에 올랐다. 공기 청정한 곳의 산나물은 어떤 무침을 해도 맛난다. 푸짐한 상차림에 누런 동동주 한 사발이 딱이다. 오가피주도 한 모금, 이내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는다.

지난 폭설이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인 도시와는 달리 산은 하얀 눈 덮힌 그대로다. 산 아래 꽁꽁 언 얼음 위에서는 앉은뱅이 썰매를 지치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 가면서도 열심히 두 팔을 놀려가며 신나게 달린다. 비록 둔하게 생겼지만 쇠지치기를 단 썰매는 아주 잘도 나간다. 신기한 놀이 기구에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 하고 부모들은 어릴 적 추억에 잠긴다.

약간 비탈진 언덕위에서는 비닐 한 조각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간이 눈썰매를 즐긴다. 태백산에는 자연 눈썰매장이 있어 가족들 나들이에도 그만이다. 꼬마 아이들이 부모를 이끌고 먼저 눈썰매장으로 내딛는다.

12일 일요일, 태백산은 눈꽃 축제 준비에 한창이다. 아직 조각품으로 완성되지 못한 눈뭉치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다. 이 날은 햇살이 따스해 혹시 눈이 녹아버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지난 14일부터 강원도 일대에 큰 눈이 내렸으니 아마 지금이면 눈꽃 가득한 태백산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겠지.

태백산 도립공원 내에는 태백석탄박물관이 있다. 1970~80년대 최대의 호황기를 누린 태백 탄광촌의 모습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다. 8개의 전시실로 나뉜 박물관에는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각종 전시물들이 즐비하다. 지질시대 석탄의 생성과정부터 우리나라의 광산 산업의 발전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태백산에 오면 한번쯤 들러야 할 교육의 공간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 즐거운 이벤트·공연

돌아오는 열차 안 풍경은 더 이채롭다. 나눠준 도시락을 먹고 나니 어느새 차창 밖엔 짙은 어둠이 깔렸다. 7시를 넘어가는 시간, 이날 카페칸에는 특별 이벤트가 준비됐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기차 한 칸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발 디딛을 틈이 없다.

‘가방을 둘러 맨, 그 어깨가 아름다워~’. 흥겨운 노래에 맞춰 서로 어깨동무 하는 사람들. 처음 보았을 얼굴들이지만 마치 오래된 친구마냥 친근하기만 하다. 레크레이션 강사를 따라 옆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하고, 팀 응원도 해가며 놀이에 흠뻑 빠져들다보니 모인 사람들간에 정겨움이 가득하다. 가족끼리의 정도 따라서 돈독해진다.

하이라이트 시간. 사람들 모두 숨죽인 가운데 섹스폰 선율만이 조용히 마음속을 파고든다. 때로는 호소력 짙게, 때로는 잔잔하게 스며드는 섹스폰 소리가 하루의 여행을 차분히 정리한다. 섹스폰 연주에 맞춰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합창하는 사람들 마음 마음마다 무지개빛 아름다운 추억을 곱게 채워 넣는다.
까만 어둠을 헤치며 열차는 노래를 싣고, 또 사랑을 싣고 서울로 달린다.

‘태백산 … 열차’는 요

‘태백산 눈꽃, 눈썰매, 석탄박물관 관광열차’를 타면 여행의 즐거움을 두배로 누릴 수 있다. 관광열차 내에 마련된 카페칸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도서가 비치돼 무료로 대여해 읽을 수 있다. 또 저녁에는 전문 강사와 함께 하는 레크레이션 및 이벤트 등이 마련돼 특별한 시간을 선사해준다. 홍익 여행사 이석우 사장은 “앞으로 비치 도서를 더욱 늘려나갈 예정”이라며 “작가 사인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중”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이 사장은 자연친화적이고 건전한 여행 문화 정착을 위한 ‘Hi 그린 투어리즘’도 본격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오는 27일까지, 2월4일~16일 기간 매일운행. 당일 일정이며 열차료, 연계버스, 입장료, 석식 포함 3만9,700원~4만4,700원.

태백 글·사진=정은주 기자 eunjury@traveltimes.co.kr
취재협조=홍익여행사 02-7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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