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문가이드 ***입니다”
최근 짧은 일정으로 일본관광을 하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리니 한국인 가이드가 버스에 올라 공식으로 본인소개를 하면서 ‘일본전문가이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듣고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21세기는 바야흐로 전문가의 시대이고 여행업도 이제 이런 흐름에 충실해 전문가이드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영문과 학과장이었던 미국인 브르닉(Breuning)신부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영자신문을 발간하던 나는 그때 대학교 2학년. 아직 세상도 모르고 자기 주장만 강하게 내세우던 철부지였다. 특히 사설에 대해서는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으로 가득찬 것만을 밤새워 준비하곤 했지만 브르닉 신부님은 너무 비판적이라서 도저히 실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건설적인 비판이 언론의 기능이라고 반박하면서 그 사설이 실리지 못하면 더 이상 신문 제작을 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버텼다. 결국 밤 12시가 넘도록 브르닉 신부님의 3층 연구실에서 얘기하다 출입문이 모두 닫혀서 1층 유리창으로 신부님과 함께 힘들게 빠져 나왔었다. 나는 그때 만해도 마른 몸매라 괜찮았지만 브르닉 신부님은 연로하신데다 뚱뚱해서 무척이나 힘들게 나오셨다.

감옥(?)탈출 후 신부님과 나는 서로 멍하니 얼굴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때 신부님이 오래도록 잊지 못할 말씀을 하셨다. “핏속에 인쇄잉크(Printer’s ink in your blood)가 없으면 훌륭한 언론인이 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씀을 밤 12시가 넘은 서강대학교의 교정을 거닐면서 하셨다.

코리아헤럴드기자, 로이터통신 주한특파원, 비즈니스코리아의 발행인 및 편집인으로서, 또 PR전문대행사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운영하면서 PR실무자로서 항상 핏속에 생생하게 남아 흐르는 신부님의 명언이다. 나는 신부님이 말씀하신 ‘인쇄잉크(printer’s ink)를 전문성, 정의감, 사명감, 용감성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서울교외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혀 계시는 신부님을 생각하면 철없이 고집만 피우던 그 시절이 무척 후회스럽다. 한번은 기사내용에 대해 신부님과 타협하지 못하고 평행선만 달리고 있었다. 그때 신부님은 “우리 모든 것을 덮어두고 용산에 있는 미군 극장이나 가서 영화 한편 보고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마지못해 따라가 내용도 잘 이해 못하고 그저 웃기만 하면서 코미디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돌아왔다. 그때 비로소 입장은 달라도 함께 협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됐다. 나는 이렇듯 인생을 살아오면서 큰 지침이 되어온 신부님께 감사하고 있다. 천당에서 내려다보실 신부님의 웃음을 생각하면 언제나 넉넉하다.

일본에서 짧은 기간을 머물하면서 우리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Professionalism in your blood’ 즉 “핏속에 전문성’이 흐르고 있을 때 여행객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역사와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깊이 있게 공부한 흔적을 느낄 수 있어 여행객들이 짧은 기간동안 고생한 가이드와 운전기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조그마한 성의를 모아 박수를 치면서 차안에서 전달했다. 여행상품개발, 가이드, 고객관리, 홈페이지관리 등 모든 면에서 이제 ‘전문성’으로 승부를 걸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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