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100년만의 살인적인 태풍 ‘봉선화’가 남태평양의 낙원 괌(Guam)을 강타하였다. 정전, 단수, 해일 등으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는 일이 발생했으나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은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

미국의 피마(FEMA) 즉 연방정부 위기 관리청의 전문적인 대응과 훈련된 정부, 단체, 그리고 주민들이 있었기에 지옥과 같은 천재지변을 맞고도 대형 인명 피해를 막았다고 하니 우리도 지금 당장이라도 ‘피마’를 벤치마킹하여 단단한 국가적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대구지하철참사를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평상시 위기에 대비한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최상의 대응책이라는 것이다. 미국 위기관리훈련전문가인 비버리 실버벅이 상정한 가상 위기시나리오는 위기관리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담고 있다. 그 시나리오를 보자.

국제 평화를 위한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 교황, 미국 대통령, 빌리 그래햄(Billy Graham)목사, 수행기자 한명이 특별기를 타고 간다. 그때 엔진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비행기에는 낙하산이 4개밖에 실려있지 않다는 기장의 다급한 방송이 나온다.

미국 대통령은 즉시 교황에게 “교황께서는 전세계 종교인들을 위해 반드시 생존하셔야 하니 낙하산을 타십시오” 라고 말하자, 교황도 대통령에게 “미 대통령 또한 서방자유세계의 지도자로서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하니 낙하하세요”라고 말했다.

이들 두명이 낙하하자 수행기자는 이러한 사실을 전세계에 빨리 보도해야 한다고 말하고 서둘러 이들 뒤를 따라 낙하한다. 그러자 빌리 그래햄 목사는 기장에게 “나는 은혜롭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만족스러운 인생을 충분히 살아 왔는 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당신이 남은 한 개의 낙하산을 이용하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장은 “목사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행기자가 제 가방을 낙하산으로 잘못 알고 급히 뛰어 내려서 지금 낙하산이 두 개 남아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이 시나리오하에서 실버벅의 위기대비 훈련은 시작된다. 물론 위기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시나리오지만 여기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은 5명이 탑승한 비행기에 4개의 낙하산을 준비했다는 사실 자체가 위기에 대한 준비가 결여되어 위기악화를 촉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 일본을 보라.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안전한 지하철 안전시스템을 갖고 있으면서도 끊임없는 위기대처 훈련을 하고 있다. 이번 대구 참사에 즈음에서도 마치 그것이 일본땅에서 일어난 것처럼 신속히 지하철 일제안전 점검을 실시하는 등 더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이미 많은 대형참사를 경험했으면서도 그 경험들을 통해 아무런 교훈도 찾지 못한 우리들이야말로 정말 무책임한 사람들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으로 마음이 아파온다.

삼풍백화점 사고때도 국가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들끊는 여론이 있었지만 그때 뿐이었다. 그간 여러 번에 걸쳐 외국의 성공적인 위기관리 사례를 접해오면서 느끼게 된 것은 위기에 대한 대비는 ‘부단한 훈련’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상시나리오를 작성하여 모의훈련(simulation)을 반복실시하면 위기시 각자의 역할과 재난 탈출 방법을 숙지하게 된다. 이번 참사에서 인명피해가 컸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통제본부와 기관사 사이의 원활치 못했던 커뮤니케이션도 부단한 훈련만 있었더라면 어렵지 않게 극복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인간으로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완벽하게 준비하더라도 인간의 영역을 넘는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위기관리에 ‘대강’이나 ‘어느 정도’가 통하지 않는다. ‘철저’와 ‘완벽’한 준비만이 효과적인 위기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그간 우리들은 다른 국가나 기관 및 민간 기업이 대형참사를 보고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우리에게 그런 일이 닥쳐오지 않았다는 정신적 안도감만 맛 본 데 대한 너무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kyonghae@comm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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