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있는 피카소를 만나러 가는 길

내리쬐는 햇볕의 각도에 따라 같은 건물이라도
다른 모습을 그려내는 변화무쌍한 이 지방의 모습은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다채로운 영감을
불어넣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글거리는 붉은 땅은
초록의 올리브 나무, 울긋불긋한 바위, 옥빛의 지중해 바다,
뭉게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푸른 하늘과
어울려 감성을 자극한다.

그림을 잘 모른다. 피카소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이 여행을 떠나기 전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에 대해 알고 있었던 점은 ‘현대 미술의 대가이며 입체주의의 창시자’ 등의 지극히 교과서적인 내용 뿐이었다. 책에서 그의 그림을 마주할 때면 시험용으로 외우는 정도였지 속으로는 ‘어린 아이 그림 같다’거나 ‘비틀어지고, 왜곡되고, 이해하기 어렵고, 아름답지도 않은 그림’ 정도로 치부해 버렸다. 때문에 여행을 즐기던 중에 미술관을 방문하더라도 추상주의나 입체주의보다는 인상주의 등 보기에 좀더 아름답고 편안한 그림들에 눈길이 쏠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여행도 사실 피카소를 알기 위해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휴식이 필요해 떠난 여행길에서 가이드 북에 적힌 대로, 귀에 익은 관념대로 유명한 관광지와 박물관 등을 방문하다보니 어느새 피카소와 친해져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다 종국에는 일부러 피카소의 흔적을 찾게 됐다.

피카소가 스페인 출신이라는 점도 이 여행을 통해 알았을 정도로 피카소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무지했다고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하고 싶다.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 열렬한 피카소 팬이 된 것도 미리 선언하며 글을 풀어나가고 싶다. 앞으로 누군가 내가 갔던 길을 여행하게 된다면 나처럼 피카소를 눈여겨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한 예술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여행했던 목적지인 스페인 또한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아, 게르니카’ 천재성보다 큰 노력

처음 피카소를 만난 것은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2번째 미술관으로 꼽히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였다. 예술의 도시로도 널리 알려진 마드리드에서 프라도 다음으로 꼽히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스페인 20세기 미술을 알리는 대표적인 곳으로 손꼽힌다. 피카소 외에도 달리, 미로의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아방가르드와 초현실주의, 현대조각, 팝아트, 표현주의, 추상주의 등 20세기 미술계를 이끌었던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두루 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레이나 소피아가 이방인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뭐니 뭐니해도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와 이를 위한 습작들이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를 알리는 몇 개의 그림들을 인상깊게 보고 지나갈 즈음 제 6전시실에서 게르니카를 만났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바스크 마을에서 일어났던 독일군의 무차별 폭격을 고발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방비 상태에서 폭격을 당한 이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피폐함과 무너진 인간의 존엄성, 인류애 등을 표현하고자 했다.

미쳐 날뛰는 소와 말의 광폭함 앞에 사람들 눈이 튀어나오고 혀를 깨물고 절규하며 쓰러지고 있는 모습이 349.3×776.6㎝의 캔버스 안에 녹아있다. 마치 흑백 무성 영화처럼 소리는 없더라도 그림은 전시장을 압도하며 화가의 메시지를 충분히 발산하고 있었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들고 유럽 전역을 찾아다니며 난민들을 위한 기금 모금을 하기도 했으며 스페인의 독재가 종식되기 전까지 이 그림이 스페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을 만큼 20세기 ‘가장 정치적인 그림’으로도 꼽힌다. ‘게르니카’ 앞에는 명성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피카소를 모르는 범인의 눈에는 해당 작품보다도 이 작품의 주변에 가득 전시돼 있는 피카소의 습작들이다. 그것들을 통해 ‘천재’ 피카소가 만들어지기 까지는 그의 타고난 재능에 많은 노력이 숨어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마드리드는 또한 1897년 피카소가 잠시 머물며 프라도 미술관의 벨라스케스와 고야 등의 걸작을 접하며 회화의 기본을 닦고 왕립 아카데미에서 천재성을 검증받기도 한 곳이다. 후에 피카소가 재해석한 벨라스케스의 걸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가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프라도에서 이 작품을 눈여겨둔다면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의 ‘라스 메니나스’와의 만남이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말라가와 안달루시아
천재, 붉은 햇살, 푸른 지중해와 조우

스페인에서 피카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스페인 남부의 해안도시 말라가(Malaga)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 피카소는 1881년 10월 이곳에서 태어나 1891년 북부 도시로 이주하기까지 말라가에서 보냈다. 말라가는 ‘태양의 해안(Costa Del Sol)’이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지중해와 마주하고 있는 300km에 이르는 해안 지방의 중심도시다.

코스타 델 솔은 연중 내리쬐는 햇빛과 푸른 바다, 흰색 건물과 붉은 지붕이 어우러진 낭만으로 넘실거리는 스페인 최대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연간 쾌청한 날이 320일이나 되며 평균 기온이 20℃가 넘어 연중 일광욕을 즐길 수도 있다. 현대적인 리조트가 즐비한 유럽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힌다. 피카소가 유년기에 그린 그림에는 작은 항구도시이기도 한 이곳의 풍경들이 곳곳에 녹아있다.

내리쬐는 햇볕의 각도에 따라 같은 건물이라도 다른 모습을 그려내는 변화무쌍한 이 지방의 모습은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다채로운 영감을 불어넣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글거리는 붉은 땅은 초록의 올리브 나무, 울긋불긋한 바위, 옥빛의 지중해 바다, 뭉게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푸른 하늘과 어울려 감성을 자극한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과거 이슬람의 스페인 지배 시절 중심 지역으로 이슬람 문화와 중세 기독교 문화가 혼재돼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곳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그라나다, 이슬람의 체취가 가장 짙게 남아있는 도시이자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무대가 된 세비아, 메즈키타 이슬람 사원이 유명한 코르도바 등은 안달루시아에서 가볼만한 핵심 도시이다.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안달루시아의 풍경 속에서 피카소의 그림 ‘아비뇽의 처녀들’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스페인 글·사진=김남경 기자 nkkim@traveltimes.co.kr
취재협조=내일여행 02-77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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