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렇게 출렁이는 파도 너머로 옛 신라인의 아스라한 꿈이 피어오른다. 드넓게 펼쳐진 바닷길을 따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호걸의 웃음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듯 하다.

해상왕 장보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무적함대를 이끌고 동양 3국의 해상권을 장악한 위인으로 알려진 장보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사실 극히 적다. 단지 완도 출생으로 당나라에서 무관 벼슬을 지낸 뒤, 고국에 돌아와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신라인을 납치해 노예로 파는 해적무리를 소탕했다는 정도. 이 와중에 삼국사기 등에서는 자신의 딸을 왕비로 세우려다 실패하자 반역을 꾀해 암살됐다는 사료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보고에 대한 재조명의 움직임이 부지런히 일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청해진이 있었던 전남 완도의 장보고 유적지에 복원공사가 한창 벌어졌던가 하면, 올초에는 KBS에서 신년특집 ‘최인호의 다큐로망 해신’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각적인 관점에서 장보고의 삶을 추적해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장보고에 대한 역사적 고증 및 평가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구체적인 사료와 유적들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서인지, 이국에서 만나는 장보고의 옛 흔적은 더욱 의미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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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를 사로잡던 희대의 카리스마

♠ 천년을 거슬러가는 장보고의 흔적

산둥성 영성시의 석도진 적산 기슭에 자리한 적산법화원. 먼 옛날 온통 붉은 기운으로 뒤덮인 적산에는, 이 곳에 사는 적산신이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가져다 준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공을 드린 곳이라 한다. 당조 시기, 산동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불교 사원이었던 이 곳은 당시 신라인 장보고가 지은 것으로 많은 스님을 모셔와 ‘법화경’을 읽어 ‘적산법화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곳에서 열린 법회는 모두 신라인들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한다. 승려와 참석자 모두 신라인들이었을 뿐 아니라 신라의 언어와 방식이 그대로 적용됐다. 어떻게 보면 이 법화원은 당시 당나라에 거주하고 있던 신라 교민들을 한데로 결속시키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는 또 당나라 신라 교민 사회에서 장보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법화원 내 관음전에는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으며 북쪽 벽으로 장우성 화백이 그린 장보고 대사의 화상이 모셔져 있다. 장보고는 신라 흥덕왕 3년에 귀국해 청해진을 창설하고 대사를 봉해 받았다. 이 때부터 한·중·일간 해상무역권을 독점하며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해 해상무역왕으로 불리웠다고 전해진다.

장 화백의 그림을 보고 상상하건대, 아마도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을 굳은 의지와 위풍당당한 카리스마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천년의 세월을 어딘가에 감춰둔 듯, 지금은 적막한 고요만이 감도는 적산법화원 경내는 그저 고즈넉한 멋을 풍기는 여느 사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경내 가운데 놓인 커다란 향로에서는 연신 묘한 향이 피어오르고, 그 향에 취해 지그시 눈을 감아 본다. 마치 역사의 시간을 넘어서 ‘그’와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얻으려는 듯.


♠ 후대에 빛나는 장보고의 업적

장보고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중국에서 더 후하다. 지난해 말 중국 영성시에서는 법화사 본전 건너편에 ‘장보고 기념관’을 짓기 위한 기공식을 성대하게 진행했다. 중국의 한 수산기업체에서 약 24여 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올 5월 경 준공을 목표로 대규모의 기념관을 건립키로 한 것이다.

새로 건립될 기념관은 5400여 평의 대지에 6동의 기념관과 정자 2동의 규모. 또 4m 높이의 화강석 좌대 위에 청동으로 제작된 약 8m의 ‘장보고 장군 동상’도 함께 세워질 계획이다. 현재 이 곳에는 기념관 건립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고국이 아닌, 타국에서의 기념관 건립이 못내 아쉽지만 그나마 한민족의 정기가 서린 곳이라는데 위안을 얻는다.

법화원 북쪽에는 1991년 세계한민족연합회 회장인 성신여대 최민자 교수가 장보고 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장보고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독특한 탑의 설계와 한·중 양국의 친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더욱 의미가 깊다. 탑에는 ‘장보고기념탑’이라는 김영삼 전대통령의 친필휘호가 새겨져 있다.

기념탑이 세워진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바다는 그 옛날 장보고가 활약했던 바로 그 곳이건만, 지금은 그러한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시대 장보고가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판 포세이돈인 장보고, 개척자이자 세계인으로서의 장보고를 중국에서 만나고 왔다.

중국 석도 글·사진=정은주 기자 eunjury@traveltimes.co.kr
취재협조=대룡훼리 02)51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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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교민사회의 집합소 적산법화원
‘장보고 기념관’ 건립도 한창 진행중

화반채석 - 독특한 무늬와 색의 이암석

중국 대륙해안에 유일한 해식기둥, 해식무늬, 해식돌인 화반채석은 돌연 바다에서 떠오른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약 35m, 폭 20m, 높이 9m의 기괴하고 독특한 색을 지닌 이암석이다. 주로 적, 황, 백, 세가지 색깔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양 하나하나가 마치 그림같다. 희귀한 무늬가 어우러져 하나의 암석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 어디에서나 볼 수 없는 특이한 장관을 이룬다.

고차박물관- 유구한 중국 차량의 역사

이 곳은 중국에서 첫째로 꼽히는 차마유적과 문물이 함께 전시된 박물관이다. 중국 10대 고고학적 발견의 하나인 춘추시대의 전차 10량과 말 32필이 매장된 곳이다. 말들이 고스란히 묻혀 나란히 늘어선 모습이 눈에 띈다. 이외 고차 박물관에는 중국 차량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여러 전시품들을 진열해 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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