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해한 그림들과 친해지다

말라가와 안달루시아 지방이 피카소 회화의 원천을 더듬어 보게 만든다면 그 흔적들을 직접 비교하고 확인해볼 수 있는 곳은 스페인 지중해의 중심 항구도시 ‘바르셀로나(Barcelona)’다.

스페인 제2의 도시이지만 오히려 마드리드보다도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와 가족들이 1895년에 북쪽 라코루냐에서 이주해오면서 본격적으로 화가의 꿈을 키우고 첫 전시회를 열면서 작품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던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1900년 열아홉살의 나이에 친구와 함께 파리로 떠나기까지 피카소는 바르셀로나에 머물며 천재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했고 카페를 운영하며 예술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구시가지 고딕지구에는 피카소만을 위해 만든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이 대가가 된 피카소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이라면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은 그가 10살 무렵 그린 스케치와 드로잉부터 청색시대라고 불리는 고뇌에 찬 청년기에 그린 그림들과 입체주의로 벨라스케스를 재해석하고 응용한 ‘라스 메니나스’의 연작, 만년의 입체파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피카소 미술관을 찾아가는 동안 바르셀로나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라스 람블라스 거리와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거치게 된다. 고풍스러움을 자랑하는 이 지구에서 좁은 골목길 안에 피카소 미술관이 숨어있다.

이미 골목 초입부터 피카소와 관련된 기념품을 파는 숍과 카페, 화랑 등이 즐비하고 삼삼오오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끊이지 않아 금방 피카소 미술관이 있는 곳임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육중한 대리석 건물이 세월의 덧깨를 말해주는 이곳에 20세기 현대 미술을 연 피카소의 작품들을 영구히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흥미롭다.

미술관은 1~2층에 걸쳐 모두 40여개의 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책으로 그의 입체주의적인 작품들만 봐왔던 이들에게 전시실 앞쪽에 전시된 소년 피카소의 작품들은 신선한 충격이다. 화가였던 아버지의 붓을 꺾게 만들었다는 에피소드를 남길 만큼 소년 시절 피카소의 그림들은 그의 천재성을 실감하게 만든다.

나무판자에 그린 소박한 그림들 속에는 남부 스페인의 풍광을, 사람들을, 생활을 훔쳐볼 수 있었고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붓터치와 여러 콘테스트 등에서 입상한 작품 등은 10대 사춘기 소년이 그린 그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재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이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남긴 수많은 드로잉과 스케치, 연습작들을 보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진부한 격언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번득이는 그의 재치와 창조성에는 쉽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게르니카’와 마찬가지로 벨라스케스의 원작과 비교하며 ‘라스 메니나스’를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한가득 웃음을 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면 전시실 아래 위치한 기념품 숍에 오래 머물며 그의 그림 등을 해설한 책들을 뒤적이게 된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난해하게만 보이던 그의 입체주의 그림들이 충분히 이해되지는 않더라도 너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피카소의 연인들을 만나다

지리적인 잇점을 안고 있는 파리는 스페인 여행을 위한 경유지였다. 밤기차로 바르셀로나에서 파리의 오스탈리츠 역에 도착한 후 주저할 것 없이 ‘피카소 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은 명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의외의 역사적인 유적이 즐비해 파리 매니아들에게 인기있는 프랑 부르주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까르나발레 박물관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다 마주치는 피카소 미술관(Musee Pacasso)’ 은 전세계 피카소 미술관 중 피카소의 대표작들이 가장 많이 소장된 곳으로 꼽힌다.

이곳에는 피카소 회화 250여점과 160여점의 조각 및 200여점의 꼴라쥬, 부조 작품, 1,200여점의 스케치 등이 전시돼 있다. 사실 굳이 스페인을 가지 않고 이곳만 둘러봐도 피카소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청색시대라고 불리는 피카소의 청년기 작품에서부터 말년의 입체파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군이 전시실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대 미국의 양민학살을 고발한 ‘한국에서의 전쟁’이라는 작품도 있다. 피카소 작품 뿐만 아니라 세잔, 꼬로, 쿠르베, 마띠스 등 피카소가 직접 수집한 작품들도 함께 전시돼 있으며 피카소의 모습을 담은 사진, 편지, 원고 등이 함께 전시돼 피카소를 이해하는데 많은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푸른색으로 혼동스러운 세계를 표현했던 청색시대의 작품들과 입체파 및 초현실주의를 나타내기 전의 작품들도 눈길을 끌지만 가장 인상적인 점은 뭐니 뭐니해도-사생활을 훔쳐보는 재미까지 포함해- 피카소의 여인들을 그림으로 만나는 것이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있는 올가의 초상’에서는 결혼 이후 안락한 가정생활과 부유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시기를 대표하던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 러시아 무용수 올가를, ‘도라 마르의 초상’ 등에서는 전쟁의 아픔과 공포를 대변하는 ‘우는 여인’의 모델이 됐던 지적인 까만 눈동자가 인상적인 사진가이자 화가이자, 피카소의 애인이기도 했던 도라 마르를, ‘마리 테레즈의 초상’, ‘여인의 머리’, ‘책읽는 여인’ 등에서는 쉬흔을 앞두고 만난 열일곱의 소녀이자 앞짱구와 광대뼈가 솟은 독특한 외모로 인물에 대해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던 마리 테레즈를 만날 수 있다. ‘베개를 베고 있는 여자’에서는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 자끌린이 모델로 등장한다.

전혀 닮지 않은 것도 같지만 바로 그 사람임을 떠오르게 만드는 피카소만의 독특한 세계를 감상하는 동안 2시간이 훌쩍 넘어간 줄 모른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서는 회화 뿐만 아니라 피카소의 조각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 주변에는 멋진 카페와 화랑, 팬시 상품점, 소규모 공방 등이 많아 또 다른 여행 재미를 안겨준다. 미술관 관람 후 카푸치노 한잔과 애플 파이 한조각에 묵직한 다리를 쉬어가는 그 기분, 그리고 쉼없는 노력과 번득이는 영감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피카소를 통해 억지없이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그 기분. 새로운 활력이 가슴 속에 들어앉았다.

스페인 파리 글·사진=김남경 기자
nkkim@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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