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의 여행은 끝났다.
베트남 사이공에서 하롱베이까지 남과 북을 길게 이은 여정. 아쉽고 또 아쉽다. 그곳에 들르고 내려 기막힌 사람과 풍경을 눈과 사진에 담았어야 했다. 한국 사람을 닮은 베트남 사람을, 한국의 그것과 닮은 베트남의 논과 바다를.
‘그럼 내려 볼 것이지’하고 반문하신다면 고개를 숙일 따름이고 넓은 아량으로 변명할 기회를 주신다면 지금부터 시작하겠다.


시간을 거듭해 배를 움직여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섬, 섬, 섬. 사방의 섬이 점에 불과하다는 것은 전망대에 올라서 깨달았다. 하롱베이를 모두 보려는 것은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짓이리라! 한국보다 크고, 과거의 흔적도 선명한 어떤 곳을 여행하며 한국을 여행하는 경비만큼만 쓴다면 남는 장사가 아닌가.


베트남이 한국보다 좋은 세 가지 이유

남에서 북으로 베트남을 훑는 일주일의 기간은 너무나 짧다. 관광지라 명명해 놓은 곳의 벽만 찍고 돌아오기에도 짧은데 감동적이고 또 감동적인 그곳의 생활상을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나이트라이프는 반드시 즐겨야 하므로 갈라진 달걀 눈으로 버스 창을 통해 스치는 풍경을 보는 데 만족해야 한다. 베트남을 여행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버스에서 절대 졸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 전의 체력 훈련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베트남이 아오자이와 논, 씨클로의 나라인 이유를 알았다. 아오자이를 입은 몸매 좋은 여자들과 논(주로 나무로 엮은 삼각뿔 형태의 모자)을 쓴 상인과 농부, 오토바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씨클로를 빼면 그곳에는 ‘조금 더 큰 한국’ 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풍경이 그러하거니와 사람들의 피부색도 그러하다.

한국인의 근성을 닮았는지 어느 더운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봤다. 그들의 친절하고 수줍은 미소 또한 한국인을 닮았다. 거리에는 대우 차가 활보하고, 단종된 프라이드 베타는 택시로 둔갑해 손님들을 맞았다.

그렇다면 베트남 여행을 하느니 국내여행을 하는 게 낫다는 뜻인가.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물론 그 반대도 아니다. 허나 지금은 베트남 여행기를 쓰는 마당. 주제를 살리는 의미에서 ‘베트남이 한국보다 좋은 세 가지 이유’를 대겠다.


■ 한국보다 ‘조금 더 큰’

다낭에서 후에로 가는 두 시간과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가는 세 시간은 꼼짝없이 버스에 가둬야 한다. 비행기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뛰어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간 활용을 칼 같이 하는 분이라면 잠을 보충할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나, 이 구간 졸음은 금물이다.

한국보다 ‘조금 더 큰’ 베트남의 매력은 여기에 숨어 있다. 평온한 시골의 풍경을 맛보러 금산을 찾고 광활한 평야를 보러 김제를 방문하며, 이방인의 기분을 느끼려 시커먼 소금창고와 염전이 있는 부안 곰소에 들르곤 했다.

모두 제 색 뚜렷한 멋이 있는 곳들이다. 베트남의 길 위에는 그곳과 닮았으나 면적만 다른 논과 밭, 염전이 펼쳐져 있다. 다만 입 쩍 벌리고 멋지다, 좋다, 외치기를 반복한 것은 광활함이 주는 배를 더한 감동이었고, 논을 쓴 농부와 물소가 더해져 꾸미는 풍경은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이었다.

감탄할 풍경이 줄을 잇는 5번 국도를 따라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하롱베이를 몇 번 다녀간 일행이 “여수 분들은 이곳에 오면 이게 뭐당가,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다. 실제 하얀 포말을 지닌 물살을 빼면 하롱베이는 다도해의 생김 그대로다.
문제는 역시 크기였다. 시간을 거듭해 배를 움직여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섬, 섬, 섬. 사방의 섬이 점에 불과하다는 것은 전망대에 올라서 깨달았다. 하롱베이를 모두 보려는 것은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짓이리라! 안남미(安南米) 향기 가득한 전통 소주를 놓고 뱃머리에 술판을 차린 것은 이러한 깨달음의 산물이었다.


■ 과거의 흔적

베트남은 공산당이 유일 정당인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다. 정식 명칭 역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이러한 명칭을 얻기까지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전쟁과 인도차이나 전쟁 등 지리한 전쟁이 이어졌다.

사이공의 번화가에는 과거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필수 여행 코스인 노틀담 성당과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중앙우체국은 모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모습을 담은 건물이다. 인민위원회 옆에 자리한 렉스호텔은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장교가 이용하던 클럽이라 한다.

다낭에서 후에를 지날 때 들르는 하이반 고개에는 전쟁 당시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 편으로 펼쳐지는 장엄한 바다와 희부연 안개가 감싸던 하이반 고개. 아이들은 총탄 선명한 건물 언저리에서 공놀이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식민지, 독립, 남과 북의 전쟁 등 역사마저도 한국과 닮은 베트남. 헌데 베트남 사람들은 동정의 시선으로 이렇게 말을 한다고 했다. ‘우리가 그런 것처럼 너네들도 통일하길 바란다’.


■ 여행경비

스타는 언제나 마지막에 출현하듯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이며 대단원의 막을 장식할 ‘베트남이 한국보다 좋은 마지막 이유’의 시간이 돌아왔다.

이유는 간단하고도 간단하지만 여행자에게는 그보다 중요할 수 없는 ‘여행경비’에 있다. 한국보다 크고, 과거의 흔적도 선명한 어떤 곳을 여행하며 한국을 여행하는 경비만큼만 쓴다면 남는 장사가 아닌가.

한국의 과거를 보고 느낄 몽환의 여행을 어서 준비하시길 바란다. 모두 놓치지 말고 담을 마음의 준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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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하노이는 사스(SARS)의 공포에서 벗어난 듯하다. 더 이상 감염자가 나오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모두 유쾌해 보였다. 그곳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것조차 창피함을 무릅쓰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글·사진=이진경 객원기자 jingy21@hanmail.net
취재협조=우리에이젠시 02-775-7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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