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절의 꿈 융프라우요흐 정상에 서서

첫 느낌을 기억하는지? 설레임 가득한 오랜 준비 기간과 목적지에 이르는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다다른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냄새, 다른 사람들, 생경한 언어…, 누구에게는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너무나도 눈에 익은 생활의 터전이 다른 누구에게는 그저 평범한 사람, 건물, 공기 냄새 하나까지 경이롭게 다가오는 추억의 장소가 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오후 2시 5분 인천발 프랑크푸르트행 루프트한자 여객기에 몸을 실으면서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요흐’ 가 있는 스위스까지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한국 시각 새벽 1시 반, 현지 시각 오후 6시 정도까지 계속되는 11시간 여의 비행은 가도 가도 해가 지지 않아 잠을 청하기보다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편지를 쓰기에 좋다. 루프트한자의 기내 서비스는 한국인 탑승객을 고려한 듯 세심하다. 한국 영화, 최신곡과 인기곡 위주로 선곡된 한국 음악 채널, 김치가 제공되는 기내식, 간식으로 제공되는 컵라면 등이 긴 비행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2시간 정도의 대기 시간을 거쳐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취리히로 향하는 스위스 항공의 앙증맞은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먼 타향에서의 해 질 무렵 풍경은 묘한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서울의 해 질 무렵 어둠이 깔리는 도시에 서면 애틋하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비행기가 뜨는가 싶으면 그제서야 잠이 드는 승객들. 하지만 긴 여정에 지친 몸은 장난감 모형처럼 예쁜 비행기들과 동화 같은 야경으로 스위스의 느낌을 물씬 전해주는 취리히 공항에 도착할 무렵 설레임으로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 조용한 분위기 ‘빙하마을’

취리히 공항은 프랑크푸르트 공항보다 훨씬 아기자기한 맛을 풍긴다. 세계 최고의 관광국답게 공항 직원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부드럽고 온화하다. 취리히 공항의 특징은 각 도시를 구석구석 연결하는 철도역이 공항에 함께 위치하고 있다는 점. 원할 경우 짐을 열차에 싣는 대신 직접 부칠 수도 있지만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취리히 공항에서 융프라우로 가려면 우선 융프라우행 산악 열차를 탈 수 있는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순서다. 보다 많은 볼거리, 상대적으로 저렴한 숙박비를 고려한다면 2개의 호수 사이에 자리한 휴양 도시 `인터라켄’ 을 권한다. 인터라켄에는 2개의 역이 있는데 융프라우 철도는 그 중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서 출발한다. 만일 좀 더 고즈넉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해발 1067m 높이에 위치한 빙하 마을 `그린델발트’ 가 제격이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뜰 수 있고 숙소만 신경 써서 정하면 일어나자마자 발코니에 나가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근사한 산악 마을의 경치를 둘러볼 수도 있다.

유럽의 지붕이라는 융프라우요흐에 직접 발을 딛고 눈 덮인 산맥과 빙하로 이루어진 계곡을 살펴보려면 해발 3454m의 역까지 올라가는 융프라우 철도를 이용하면 된다. 3000m가 넘는 높은 산을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기분이 어떨지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힘든 법. 출국하기 전 융프라우 철도 한국 총판을 맡고 있는 동신항운(www.jungfrau. co.kr)에서 미리 왕복 티켓을 구입하면 30% 할인된 요금으로 이 진귀한 경험에 동참할 수 있다.

기차는 푸른 초원 위로 평화로워 보이는 목조 주택이 자리한 낭만적인 언덕에서부터 그 여행을 시작한다. 사람들이 사는 목가적인 풍경이 잠시 펼쳐지는가 싶더니 기차는 이내 눈덮인 설산 사이를 유유히 달리고 있다. 하지만 본래의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는 설계자의 의도대로 기차가 2시간 내내 야외 풍경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클라이네 샤이덱 역에서 융프라우 정상까지 오르는 12km 구간 동안 초반 2km 가량은 산악 지역을, 그 이후에는 암반을 뚫은 터널 속을 운행한다.

● ‘유럽의 지붕’이 하는말

해발 2865m에 위치한 아이거반트(Eigerwand) 역 및 3160m에 위치한 아이스미어(Eismeer) 역 두 군데에 기차가 잠시 정차하면 통유리가 설치된 전망대 사이로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과 꿈결처럼 펼쳐지는 끝을 알 수 없는 암벽을 감상할 수 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20분처럼 느껴지는 2시간을 보내고 나면 드디어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요흐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유산 중 하나라는 융프라우와 알프스 최장의 알레취 빙하가 바로 발 밑에 펼쳐지는 장관은 볼거리가 많은 유럽, 그 중에서도 ‘유럽의 지붕’ 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긴 여정의 가치를 충분히 제공해 주는 듯 하다. ‘세계의 지붕’ 이라 불리우는 히말라야가 던져주는 신성과 신비로움과는 무언가 다른, 온건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매력이 있는 알프스의 풍취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산에 선로를 놓고, 기차를 운행하고,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서 스키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알프스와 융프라우 봉우리가 그네들에게 주는 의미를 조금은 이해해 볼 수 있다. 융프라우 정상에 서니, 자연의 위압감보다는 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그네들의 모습에 정겨움이 느껴졌다.

융프라우에서 느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색다른 즐거움. 바로 얼음 궁전이다. 알레취 빙하의 바로 20m 아래에 길을 뚫어 다양한 얼음 조각들을 전시해 놓았다. 그다지 큰 볼거리는 없지만 매년 약 50cm씩 움직여 정기적으로 지붕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과 바닥, 천장, 얼음 조각 할 것 없이 천연 얼음으로만 내부가 이루어져 있음을 눈여겨본다면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그들의 노력에서 소박하지만 위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융프라우 전망대에는 가격대가 다양한 5개의 레스토랑이 있어 취향과 예산에 맞게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융프라우 계곡으로 개미처럼 미끄러져 내려오는 스키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상을 밟는 동안 꿈결 같던 기분이 비로소 현실로 돌아와 느긋한 마음으로 융프라우의 장관을 조망할 수 있게 된다.

● 전망대 위 ‘여유로운 식사’

다시 열차에 올라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낯익은 목조 건물과 풀밭, 정겨운 산악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곳에 올라갔다 왔기 때문일까? 각종 안내문에 적힌 편도 2시간이라는 숫자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꿈이라도 꾼 듯 한나절을 보내고 난 후 다시 밟은 지상의 기차역은 10년쯤 산 고향처럼 푸근하게만 느껴졌고, 다른 어떤 하루보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위스=정스잔 객원기자
olive0408@yahoo.co.kr
취재협조=동신항운 (02) 756-7560/1
루프트한자 독일항공 (02) 342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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