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시아 주요지역의 여행업정책을 조사하러 간 일이 있다. 그 중 홍콩관광협회(당시 HKTA)의 홍보이사와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는데, 홍콩이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있게 이렇게 대답했다. “홍콩의 관광여건이 좋지 못하다는 판단을 내리면, 홍콩 전체의 관광요금을 하루만에 낮출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내릴 수 있지만, 요즘 사스로 인한 아시아관광의 쇠락 속에서 각국이 보이는 복구프로그램이 이와 유사하다 보니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났던 거다.

우리 여행시장도 비슷하게 대응하고 있는 듯 싶다. 10만원대 해외 여행상품이 벌써부터 판을 치고 있고, 각 항공사와 호텔들의 덤핑공세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제주를 비롯한 국내 일부 지역만이 사스로 인한 해외여행 대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멀리는 9.11테러로부터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북핵위기, 국내 경기위축에 이어 사스까지 겹쳐, 거의 빈사상태에 빠진 관광업계에 덤핑문제를 언급하기에 민망하기는 하다.

어쨌든 제3세계는 물론이고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조차 카리브해 여행이 30불이라는 얘기도 들리는 형편이고 보면 여행업계에서 덤핑은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하다. 덤핑의 복잡성과 해결의 어려움은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가지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통상적으로 덤핑을 업계에서는 초저가 상품이라고도 하고, 학계는 약탈적 가격(Predatory Price)으로, 법률적으로는 부당염매라 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덤핑은 시장경쟁이 심할수록 빈발하는 특성이 있고, 판매가격이 공급비용(원가)보다 낮으면서, 이러한 행위의 목적이 경쟁사를 배제시킬 의도나 자사의 다른 상품에 손실분 회복을 반영했느냐 하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렇게 요건이 까다롭다 보니 공정거래위원회에서조차 덤핑에 대한 확정심결은 사례가 별로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여행상품에서 덤핑판정은 불가능에 가깝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여행업체의 가격협상력이 항공사나 호텔 등 주요 공급업체와의 거래실적은 물론 인간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덤핑을 판정할 수 있을까? 수년 전부터 논의됐던 표준원가제가 도입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덤핑을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 자유화가 본격화된 ‘88년 이전 관광상품은 다양성도 훨씬 부족했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쌌다. 결국 경쟁과 덤핑을 통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가격부담도 줄어든 셈이다. 덤핑의 원인은 경쟁의 심화와 무자격자의 시장진입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지와의 가격협상력, 정보, 언어구사 등에서 소비자보다 당연히 우위에 있어야할 여행업체가 덤핑상품 판매능력만 갖추고 시장에 들어오면서 시장이 그야말로 개판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1000여개가 넘는 랜드업체와 소비자의 무지가 보태지면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그러나 덤핑의 본질적인 문제는 첫째 낮춘 가격만큼 마진이 줄어 업체의 경영악화와, 둘째 쇼핑이나 옵션강요를 통해 소비자의 피해나 불신을 키우고, 셋째 관광상품의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있다.

최근 문화관광부는 업계의 어려움과 협회의 요구에 따라 각종 지원책과 함께 여행업체 조사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업계의 상황과 정부의 고뇌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적절한 조치라 보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지원책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덤핑이 일반화되면서 발생할 부작용은 어쩔 셈인지 모르겠다. stkim@kct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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