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를 축으로 하는 대표적인 두 곳의 관광지 하롱베이와 닌빈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스에 대한 걱정보다는 줄어든 관광객으로 인해 힘들어진 주머니 사정을 염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의 그 빼어난 풍광은 인생사의 사소한 걱정 따위는 훌훌 털어버리고 더 큰 가슴으로 자신을 안아보라고 하는 듯 하다.

큰 가슴으로 대자연을 안아라


● 하롱베이

기어가듯 느릿느릿 물을 가르던 배가 멈추고 일행은 첫번째 목적지인 석회동굴로 들어선다. 처음 들어간 곳은 티엔 쿵 그로토 (Thien Cung grotto)라는 곳으로 ‘천상의 궁전 (Heavenly Palace)’ 이란 뜻인데 다우 고 (Dau Go)섬의 북쪽에서 93년에 발견되었으며 할롱베이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석회동굴로 평가받고 있는 곳이다.

거대한 종유석들이 기묘한 모양으로 서 있는 것이 장관이다. 중국 측에서 몇 년 전 내부에 조명을 설치해 놓았는데 녹색, 노란색, 빨간색 까지 갖은 색상으로 치장을 해서 싸구려 화장을 한 느낌이다. 수억 년을 버텨왔을 자연의 무게앞에 도전한 인간의 조급함과 천박함이 동굴 전체를 뒤덮고 있어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로토를 나와 300여미터 떨어져 있는 다우 고 동굴 (Dau Go Cave)로 향한다. 1962년 호치민이 이 곳을 방문하여 ‘모든 이가 방문하여 이 아름다운 경치를 눈으로 직접 봐야만 한다’고 했다는 곳이다. 티엔 쿵 그로토와 같은 요란한 조명은 없지만, 발견된지 오래된 탓인 듯 이곳 저곳 낙서가 가득하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규모나 속도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곳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어떻게 올라갔을까 싶은 높은 곳까지 낙서로 훼손되어 있다.

배로 돌아와 다시 길을 나선다. 잠시후 멀리서부터 흐릿한 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병풍처럼 겹쳐지는 수많은 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산 정상에서 다른 산들을 굽어보듯, 도대체 몇 겹인지 모를 섬들이 옆으로 뒤로 퍼져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다른 경치요, 오른쪽으로 돌리면 또 다른 경치다. 제대로 된 수묵화의 한 장면이다. 카메라로는 절대 잡아낼 수 없는 느낌이라 그냥 눈으로 보고 머리에 찍어두기로 한다.

각각의 섬들은 산의 봉우리들 같이 생겼다. 원래 산맥이었던 곳에 대홍수가 일어나 물이차고 봉우리들만 물 밖에 머리를 내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한 섬의 능선이 끝나 물속으로 들어가면 그 선이 다시금 수면으로 올라오겠거니 하는 곳쯤엔 어김없이 다른 섬이 자리잡고 있다.

갑판에 올라 맥주 한 캔을 집어든다. 날이 워낙 흐려 먼 곳에 있는 섬들은 윤곽만 희미할 뿐이지만 가까이 갈 때마다 뚜렷한 자취를 드러내는 섬을 볼 때 마다 불쑥 선계에 한 발 들여놓는 느낌이다. 물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주변환경과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한 적막감. 술에 취해 산 사이를 노저어 가는 신선의 느낌이 이럴까, 아니면 집단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대홍수의 아련한 기억일까.

배의 속도는 원래 느린 편이지만 좌우로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배는 부러 속력을 늦추어 거의 정지하다시피 하므로 고개를 둘러 주변을 살펴보기 쉽다.
좌측으로는 능선이 거의 붙은 듯한 두개의 섬 사이로 뒤의 수많은 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오른편에는 둥그렇게 생긴 섬 위에 소나무며 바위가 드문드문 박혀있는 모습이 하나의 조각작품 같다. 생긴 모습에 따라 이름을 갖고 있는 섬만도 1,600개가 되며 이름 없는 섬까지 합치면 한 달을 둘러봐도 모자르다는데 단 이틀의 겉핥기로 지나자니 아쉽기 이를데 없는 곳이다.

● 닌 빈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불리는 닌빈은 관광지로서의 무게감이나 풍경의 뛰어남 만으로 따지자면 하롱베이에 비견할 만한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둘러보면서 갖게되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하롱베이가 거칠 것 없는 바다위에 널려있는 섬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면, 닌빈은 쪽배를 타고 각각의 기암들과 근접조우 하면서 완상하는 좀 더 여유로운 관광이 가능한 곳이다.

닌빈으로 가는 도로를 달리다 보니 베트남 전통 모자인 고깔 모양의 넝을 쓰고 모를 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삼모작이 가능한 날씨 탓에 연중 모를 심고 추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닌빈에 도착해서는 말끔한 방조제가 우선 눈에 띈다.
최근 보수작업을 한 결과라는데 깔끔하긴 했지만 주변의 경관과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뒤에 서서 노를 젓는 뱃사공과 함께 작은 배에 앉아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지 십여분, 양 옆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나면서 닌빈으로의 입성을 알린다. 강은 직선이 없이 계속 완만한 호를 그리면서 꺽어지기 때문에 한 굽이를 돌면 앞의 경치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다. 물길이 닫혔다 열리고, 한굽이 돌면 다른 굽이가 반기고, 둥글둥글 솟아있는 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러싸면서 수십개의 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멀리서 보면 이어져 있는 것 같은 닌빈의 기암들은 가까이서 보면 원추형의 길쭉한 밥공기를 엎어 놓은 듯한 독립적인 암석들이다. 각각의 암석은 오랜 풍화작용의 결과로 밑둥이 몇 미터씩 깎여 나갔는데, 마치 레고블럭이 제자리에 완전히 꽂히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위를 누르면 땅 밑으로 몇 미터는 쑥 미끄러져 들어갈 것 같다.

두 시간여의 투어중에 두 곳의 동굴을 지나게 되는데 수십미터 위로 솟아있는 절벽 밑에 난 이 삼미터 높이의 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색다르다. 밝게 빛나는 굴의 반대편에는 김용의 무협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별세계가 나타날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이 들 정도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면 출발할 때 현지인들이 쫓아오면서 찍은 사진들을 현상해서 판다. 안사도 그만이긴 하지만 협상만 잘 하면 싼 값에 살 수 있으므로 기념으로 몇 장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롱베이/닌빈 글·사진=
김승범 객원기자 kismet8004@orgio.net
취재협조=베트남항공 02-757-8011


+++ 플러스 α +++

하롱베이와 닌빈을 보기 위해서는 하노이 직항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현재는 대한항공(주 4회)과 베트남항공(주 3회)이 직항편을 운행하고 있는데 최근 그룹 항공권 가격이 20만원까지 내려가면서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연계하는 3박 5일 패키지가 7월 중순까지 39만9,000원 선에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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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항공 판매대리점(PSA)
호성투어 : 02-319-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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