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자’ 세상의 중심을 꿈꾼다


몽골이라는 말은 ‘세상의 중심’ 혹은 ‘용감한 자’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음역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은 ‘무지하고 어리석다’는 뜻의 ‘몽고(?古)’라는 한자어를 사용해 바꿔 불렀다. 몽골에서는 수교 10주년을 넘어선 우리나라에 ‘몽골’이라는 국호 사용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큰 역사, 작은 유목민의 나라

징키스칸과 그의 손자 쿠빌라이칸의 시절 동구유럽을 비롯해 러시아, 남쪽의 모든 나라에서 조공을 받은 대영토 제국 몽골은 현재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어 있다. 내몽골은 중국 자치구 중 하나로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해있고, 외몽골은 ‘몽골인민공화국’으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몽골이라고 하면 통상 관광화가 먼저 진행된 내몽골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외몽골 관광 상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향후 외몽골에 대한 인지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몽골제국이 외몽골과 내몽골로 나뉜 것은 50년이 막 넘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자치구로 남아있는 몽골은 일본과 소련의 세력다툼속에서 두개로 쪼개진다. 일본은 패전때까지 내몽고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중국 역시 대일본 전쟁을 위해 외몽고를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전쟁이 끝난 후 모택동은 일본의 점령지였던 내몽골에 대해 자치구 인정을 약속, 1947년 내몽고는 중국의 첫 번째 자치구가 됐다. 그러나 외몽고는 사회주의 종주국이던 소련의 영향속에서 몽골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중국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외몽골에는 옛 역사의 영광을 느끼게 해주는 유물과 유적지가 남아있다. 그러나 유라시아 제국의 건설이라는 큰 역사에 비해 남아있는 자취는 그닥 많지 않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은 채 아직도 옛 조상들의 생활인 ‘유목’을 고수하고 있는 이들은 역사의 많은 흔적들을 시간속에 무심히 흘려보낸 듯 하다.

몽골 제1의 도시 울란바토르

■ 간등사원

몽골에서의 라마교는 번성할 당시 777개에 달했으나 1930년대 탄압시기를 거치면서 현재 11개 사원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간등사원은 이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라마사원이다. 1778년 울란바토르가 수도가 되면서 걸립됐는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26m의 입불이 자리한 곳으로 더 이름이 나 있다. 이 입불 주변으로 크고작은 불상들이 제각각의 표정을 지으며 수도 없이 모셔져 있다.

현재 100명 이상의 라마승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으며, 기도를 드리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연일 붐빈다. 입장료는 내국인의 경우 무료나 외국인은 1달러. 불상이 모셔진 사원 내부의 사진촬영은 금지다.

■ 자연사 박물관
역사박물관

몽골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동식물이 전시된 박물관. 수만종의 새와 동물의 박재가 관광객들을 맞는다. 2층에는 공룡과 관련한 전시실로 맘모스 화석을 비롯해 쥬라기 공원을 연상시키는 각종 공룡뼈와 공룡알들을 복원해놓았다. 중앙에 위치한 14m의 공룡뼈는 70만년전에 생존했다는 티라노사우러스의 것이라 한다. 옆의 카멜 전시관은 현재 공사중이다.

알타이산맥 끝자락에 자리한 사막과 초원지대를 갖고 있는 몽골에는 너무나 다양한 동식물이 자생한다. 고비사막에 사는 큰 새 욜링암은 살아있는 것을 먹지 않는 수염수리과 동물. 그 크기와 생김새는 박제지만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산악지대에 사는 순록 한드가이나 낙타, 나비 종류의 개수도 상상을 넘는다.

박물관의 입장료는 2,000투그릭이며 학생은 50% 할인된다. 단 사진을 찍을때는 입장료와는 별도로 5,000투그릭을 내야하고 비디오는 1만 투그릭을 내야 한다. 각 전시실마다 비용을 지불하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각각의 전시실마다 배치돼 있는 직원들은 박물과 안내 및 몰래 카메라족들을 막는다. 여름에는 오후 5시30분까지, 겨울에는 4시30분까지 연다.

초기정착시절부터 몽골의 유물과 유품들을 정리해놓은 역사박물관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연사박물관에 비해 규모가 적다. 유목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생활토기와 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개인 관광객의 입장료는 2달러다.

■ 자이승 승전탑
이태준선생 기념공원

몽골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일본으로부터 독립했다. 자이승 승전탑은 1942년부터 45년 8월까지 치러졌던 소련과 일본의 전쟁에 대한 승전 기념탑. 270여개의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탑 위에서는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편 초원의 한가로움과 앞쪽 시내의 빼곡한 빌딩숲이 둥글게 눈에 들어온다. 역사적인 장소로도 의미가 있지만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하다.

승전탑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반가운 이름을 만난다. 우리나라의 대암 이태준 선생의 기념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 이태준 선생은 독립운동가였던 김규식 선생의 1914년 몽골 후레지역에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 현지 화류병 퇴치에 큰 공을 세운다. 몽골의 마지막 황제였던 보고타한의 주치의 1919년에는 몽골로부터 ‘에르데닌치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태준 의사는 38살이었던 1921년 러시아군에 의해 피살된다. 시신은 공원 앞으로 펼쳐진 버그트산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공원내에는 기념탑과 기념비가 의사의 뜻을 기리고 있다.

몽골 글·사진=박은경 기자 eunkyung@traveltimes.co.kr
취재협조=대한항공 02-1588-2001
디도여행사 02-725-0723




두음의 신기루 ‘허밍’

몽골에 갔다면 반드시 접해야 할 문화가 있다. 바로 이들의 전통공연이다. 통상 그 나라의 전통공연은 시대와 맞지 않아 점차 쇠락의 길을 걷거나 지루한 명백잇기가 일쑤지만 몽골의 전통공연은 다르다. 20여명으로 구성된 오페라 전통 공연단은 유명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는 듯 웅장하고 힘차다.

몽골의 전통 악기는 말머리의 모양을 한 현악기 ‘마두금’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모링호르’라고 불리는 이 마두금은 서양의 바이올린처럼 다양한 음색을 가진 악기다. 그 연주에 피아노와 플룻등을 더해 몽골의 음악을 표현한다. 첼로와 드럼 등을 닮은 악기들도 있는데 모두 전통악기 중 하나라고 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허밍’이라고 불리는 노랫가락이다. 공연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한 사람이 나와 휘파람 불 듯 목소리를 내는데 고음과 저음이 한 사람에게서 울려나와 경이로움을 준다. 허밍은 몽골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다.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